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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한반도 부여기마족의 야마토 창업 과정

야마토 응신왕의 출자와 일본열도 정착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3-22 14:33:57

▲ 정재수 작가
일본천왕가의 15대 응신(應神-오오진)왕은 고대국가 야마토(大倭,大和)를 창업한 실질 시조이다. 일반적으로 이전 왕들은 가야계열로 보며 응신왕부터 백제계열로 본다. 응신왕은 일찍이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가 주창한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의 실제 주인공이다. 고대 일본의 대표 무덤양식인 거대한 전방후원분을 조성한 세력집단이다
.
<일본서기> 응신왕 즉위전 기록에 출생지가 나온다. 축자(筑紫)의 문전(蚊田)이다. 지금의 규슈(九州) 북쪽의 후쿠오카(福岡)이다. 특히 기록은‘처음 응신왕이 뱃속(腹中)에 있을 때 천신지기가 삼한 땅을 주었다.[初天皇在孕而天神地祇授三韓]’고 표현한다. 이는 응신왕이 일본열도로 건너오기 전에 한반도 삼한 땅을 지배한 사실을 부연한다. 후쿠오카는 응신왕의 출생지가 아니라 일본열도 최초 도착지이다.또한 <일본서기>는 응신왕이 3살 때 태자에 봉해진 점과 390년에 즉위한 사실도 추가한다. 응신왕은 누구일까.
 
‘신무동정기’의 일본열도 정착과정
 
응신왕은 한반도 부여기마족인 부여백제 여휘(餘暉)왕이다. 369년 칠지도를 제작하여 왜왕을 ‘후왕’에 책봉한 왕세자 기생(아명)이다. 390년 거발성(충남공주)에서아버지 여구(餘句)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여휘왕은 7년째가 되던 해인 396년 광개토왕의 ‘병신년 대원정’에서 처참히 깨져 일본열도로 급히 건너간다. 그리고 이듬해인 397년 부여백제가 후국(侯國)으로 삼은 일본열도 왜를 망명지로 선택한다. 그런데 응신왕의 최종 정착지는 혼슈(本州) 나라(奈良)현 일대이다. 최초 도착한 규슈(九州) 후쿠오카가 아닌 동쪽으로 수천 리 떨어진 나라현 지역까지 밀려서 정착한다. 무슨 사정일까.
 
여휘왕은 396년 3월경 충남 공주(거발성)를 출발한다. 3월은 <고구려사략>이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백제 아신왕이 행한 ‘노객 맹세’ 사건을 기록한 달이다. 또한 여휘왕이 규슈 후쿠오카에 도착한 시기는 8월경이다. 당시 일본열도에 도착한 여휘왕의 사정이 <일본서기>‘신무동정기(神武東征記)’에 나온다. 신무(神武-진무)왕은 일본의 건국시조인 초대 왕으로 일본학자들 조차 가공의 인물로 본다. 신무동정기는 신무왕의 규슈에서 혼슈 기나이(畿內)지역에 이르는 동정(東征-동쪽 정벌) 기록이다. 신무동정기는 응신왕의 동정기로 이해한다. 이를 근거로 여휘왕(응신왕)의 동정과정을 살펴보면 이렇다.
 
▲ 응신왕의 일본열도 동정기[출처=필자 제공]
 
396년 8월경 왜가 있는 규슈 후쿠오카에 도착한 여휘왕은 낙담한다. 당시 규슈지역은 여휘왕의 책봉문서 칠지도를 받아간 왜는 와해되고 여러 읍군과 촌장이 난립하며 서로 다투고 있다. 여휘왕은 이들을 제압할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충남 공주를 떠날 때 일부 인원만 데리고 급히 탈출했기 때문이다. 이때 한 노인(염토노옹)이 나타나 동쪽의 청산사주(靑山四周) 땅을 소개하며 요속일(饒速日) 집단이 그곳으로 갔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기나이(畿內) 아스카(飛鳥)지역이다. 여휘왕은 요속일을 뒤쫓아 동쪽으로 향한다. 시모노세끼해협을 지나 히로시마(廣島)를 거친 후 세토내해를 따라 이동하여 오사카 만에 다다른다. 그러나 요도가와(淀川) 급류로 인해 상륙하지 못하고 남쪽으로 우회한다.
 
이때 여휘왕은 선주(先住)세력인 장수언(長髓彦) 집단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친다. 일신명(日神命)과 대래목(大來目)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장수언 집단을 물리치고 천조대신(天照大神-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보내준 팔척조(八咫鳥-삼족오)의 안내를 받아 아스카에 도착한다. 그리고 397년 1월 나라현가시하라(橿原) 신궁에서 즉위하니 이가 곧 일본 고대국가 야마토의 신왕조 창업자 응신왕이다. <일본서기>가 예전(譽田-호무다)으로 기록한 부여백제 여휘왕이다. 후쿠오카를 출발한 지 6개월째이며, 충남 공주를 떠나온 지 11개월째이다. 390년 한반도에서 부여백제 왕으로 즉위한 여휘왕은 7년후인 397년 일본열도에서 야마토 응신왕으로 재탄생한다.
 
야마토 수도 이하레의 기원
 
당시 응신왕의 야마토 지배영역은 지금의 나라현 일대이다. 수도 이름은 이하레(いはれ)이다. <고사기>는 ‘이파례(伊波禮)’, <일본서기>는 ‘반여(磐余)’로 쓴다. 이하레는 우리말로 ‘이파르’이다. 이파르는 부여백제의 도성인 거발(居拔)과 같다. ‘居’의 훈독이 ‘이’이니, 거발은 ‘이발’ 또는 ‘이파르’가 된다(레드야드의 해석). 응신왕은 일본열도로 망명하면서 부여백제 수도 명칭도 함께 가져간다. 이하레의 <일본서기> 표기 ‘磐余’의 ‘余’는 ‘夫餘’의 ‘餘’와 같다. 이 역시 응신왕이 부여와 연관됨을 나타낸다. 또한 이하레는 백제의 초기수도 위례(慰禮),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 위나(慰那-위나암성)과 어원적으로 유사하다. 모두 우리말 ‘둘레’를 나타내는 도성의 다양한 표현이다.
 
특히<삼국사기>는 응신왕의 사망소식을 전한다. ‘12년(403년) 2월, 왜국에서 사신이 왔다. 왕이 이들을 환영하고 위로하였으며 특별히 대우하였다.[倭國使者至王迎勞之特厚]’ 때는 403년이다. 백제 아신왕은 야마토 사신단을 특별히 위로하고 대우한다. 야마토가 응신왕의 부고(訃告)를 알려 왔기 때문이다. 아마도 응신왕(여휘왕)은 야마토 궁궐에서 한반도 삼한 땅 쪽을 바라보며 쓸쓸히 눈을 감았을 것이다. 참고로 일본 오사카 일대에 조성된 전방후원분 무덤들의 방위는 각기 다르다. 응신왕릉은 서북쪽 방향인 한반도를 향하고 있다.
 
한반도 삼한 땅을 호령한 진정한 맹주 부여백제 여휘왕, 그리고 한반도를 평정한 고구려 광개토왕, 두 영웅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은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용광로 속으로 몰아넣으며 새로운 역사의 진화를 촉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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