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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고구리 정통 계승한 대조영의 발해는 어디였을까

강단사학 주장과 달리 하남성·산동성 사이에 위치한 발해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5-16 23:37:48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한서지리지>에서 유주(幽州)에 속하는 발해(渤海)군은 고구리의 요동(遼東)군과 요서(遼西)군, 한사군으로 알려진 낙랑(樂浪)군과 현토(玄菟)군 등과 함께 우리 역사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 발해군 땅에서 고구리의 정통성을 계승한 대진(大震)국이 세워진 게 그 이유다.
 
대진국은 당나라에서 발해라고 불렸다. 713년 당 현종이 대조영을 ‘좌효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左驍衛大將軍 渤海郡王 忽汗州都督)’으로 봉한 이후다. 대조영의 나라 대진국의 땅이 바로 발해군이라는 얘기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군을 다스리는 제후를 왕이라고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발해에 대해 알아보자. 발해는 <사기 조선열전>에 전쟁의 주 무대였던 패수와 함께 언급돼 있어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한다. <대청광여도>에 그려진 대로 발해(渤海)는 산동성과 하북성과 요녕성으로 둘러싸인 현재 중국의 내해고 발해군은 산동성 발해변에 있었다는 것이 중국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강단사학계는 일제식민사학의 이론대로 정혜·정효 두 공주의 무덤이 동만주에서 발견됐다는 이유만으로 대조영의 발해는 동만주 돈화에서 건국됐고, 국호는 당시 발해로 불렸던 경박호(鏡泊湖)에서 가져왔다는 이상한 주장을 펼쳤다. 중국과 한국의 발해가 다르다고 하는데 이 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서지리지>에 기록된 발해군에 속한 현들이 이웃 군에 언급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차(安次)현은 탁(𣵠)군과 역수(易水)에, 문안(文安)현은 대(代)군과 조지(趙地)에, 장무(章武)현은 위(魏)군과 금성(金城)군과 조지에 언급돼 있다. 이들을 <수경주>에서 찾아보면 발해군은 현재 중국의 내해가 아니라 산서·하남·하북 3성이 만나는 지역 부근에 있었다.
 
(勃海郡 발해군) 高帝置。莽曰迎河。属幽州。户二十五万六千三百七十七,口九十万五千一百一十九。县二十六:浮阳,莽曰浮城。阳信,东光,有胡苏亭。阜城(후성),莽曰吾城。千童,重合,南皮(남피),莽曰迎河亭。定,侯国。章武(장무),有盐官。莽曰桓章。中邑,莽曰检阴,高成,都尉治也。高乐,莽曰为乡。参户,侯国。成平,虖池河,民曰徒骇河。莽曰泽亭。柳,侯国。临乐,侯国。莽曰乐亭。东平舒(동평서),重平,安次(안차),脩市,侯国。莽曰居宁。文安(문안),景成,侯国。束州,建成,章乡,侯国。蒲领。侯国。
 
▲ 대청광여도에 그려진 발해군은 산동성 제남시 북쪽. [사진=필자 제공]
 
발해는 대야택·거야택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발해(渤海)를 검색하면 대야택(大野澤) 또는 거야택(巨野澤)이 나타나는데 둘 다 같은 곳을 말한다.
 
(번역) 대야택 : 거야 또는 거야택은 고대의 저명한 호수다. <상서> <주례> 등 고서적의 기재에 따르면 대야택 옛 유지는 현재 산동성 거야택의 북쪽으로 고대에는 제수와 사수가 서로 연결돼 접해 있었다. 당나라 때 거야택은 수면이 남북 300리 동서 약 100리이며 대야택이라고도 불렸다. 송나라 때 거야택의 남부가 마르고 땅이 굳어져 평지로 됐으며 북부는 양산박의 일부가 됐다. 그 가운데 수초가 많이 살고 물고기와 벌레가 아주 많다.
 
(원문) (大野澤) : “钜野”又称钜野泽,是古代著名的水泊,《尚书》、《周礼》等古籍中均有记载。大野泽的故址在今山东省钜野县北,在古代是与济水、泗水相连接的。唐代的钜野泽,水面南北长三百里,东西宽百余里,号称大野泽。宋代时,钜野泽的南部干涸为平地,北部成为梁山泊的一部分,其中水草丛生,鱼虫很多。
 
(번역) 거야 : 원래는 거야로 거야택으로 인해 이름을 얻었다. 대야택이라 불리는 호수늪지대다. 대야택은 현 산동성 거야택의 북면으로 당나라 때 남북 300리 동서 100리의 호수였다. 오대시대 이후 호수가 말라 평지가 됐는데 바로 거야, 가상, 운성, 양산의 지면이다. (참고로 천자문의 ‘택유거야(澤有鉅野)’란 4자성어가 바로 대야택이다.)
 
(원문) 巨野,原为鉅野,因鉅野泽而得名。鉅野泽,又名大野泽,是古代有名的湖泊沼泽地。古时候童子启蒙读物《千字文》(天地玄黄,宇宙洪荒),其中有一句“泽有鉅野”,就是指大野泽。大野泽在现在山东巨野的北面,到唐朝时,湖面南北长三百余里,东西宽百余里。五代以后,湖面自南向北逐渐干涸,中南部成为平地,也就是现在巨野、嘉祥、郓城、梁山的地面,其北部就成为梁山泊。
 
▲ 산동성의 동평, 남양, 독산, 미산호는 발해의 잔재. [사진=필자 제공]
 
그렇다면 위 대야택·거야택은 발해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대야택(거야택)과 발해가 같다고 설명한 자료는 산해경(山海經)을 새롭게 탐구했다는 하유기의 <해경신탐(海經新探)>이다.
 
(번역) 발해는 거야택의 옛 이름으로 이 이름은 한나라 초까지 계속 사용됐다.
<전국책 조나라책>에 설명된 ‘제가 발해를 건너다’의 발해는 바로 거야택이다. <한서 무제기>의 원광 3년 봄 하수(황하)가 범람해 언덕에서 꺾여 동남류해서 발해로 들어간다는 발해는 거야택이다. 그리고 거야는 동해라고 불렀다. <사기 항우본기>에서 “항우가 이미 서쪽에서 와 동해로 정했다”는 동해는 거야를 가르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진서.지도기>를 인용한 <수경주>에서 전하기를 “름구란 자는 춘추시대의 제나라 도읍인 동해 사람임이 밝혀졌다. 땅은 현재 범현 경내에 있다. 멀리 한나라와 위나라의 동해군이고 발해군 도읍은 동아에 비해 아주 멀다. 위·진 시대의 거야택은 사람들에 의해 동해로 불렸다. 거야가 바다(해)라는 이름으로 불린 건 2000년이 지속됐다,
 
(원문) 勃海是钜野泽的古名。这个古名一直袭用到汉初。
《战国策·赵策》中苏秦说:“秦攻赵则韩军宜阳,楚军武关,魏军河外,齐涉勃海,燕出锐师以佐之。”这个勃海就是钜野泽。
《史记·河渠书》云:“今天子元光之中而河决于瓠子,东南注钜野,通于淮泗。”
《汉书·武帝记》说是“元光三年春,河水徙从顿丘,东南流,入勃海。”两文对照,可知这个勃海还是钜野。又,钜野因此也称东海。
《史记·项羽本纪》称,汉之四年,因为彭越攻东阿,杀楚将,项羽回师破走彭越,接着说:“项王已定东海,来西,与汉俱临广武而军。”东阿距勃海很远,这个东海无疑义是指钜野。
《水经注》引《晋书·地道记》云:“廪丘者,春秋之齐邑,实表东海者也。”地在今范县境内,距汉、魏的东海郡、渤海郡都比东阿更远,说明魏晋时的钜野还被人称为东海。钜野的海名持续了两千来年。
 
▲ 원래 발해는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에 있던 대야택. [사진=필자 제공]
 
위 설명에 따르면 발해는 바로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에 있었던 100리에 300리를 곱한 크기의 큰 내륙호수다. 그 북쪽이 발해군 땅이었으며 고구리 패망 후 대조영이 그곳에서 고구리의 정통성을 계승한 나라를 세웠던 셈이다. 이런 나라가 어찌 동만주에서 세워졌단 말인가. 한심한 식민강단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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