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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20명으로 시작한 작은 금융기관이 오늘의 하나금융그룹으로 커진 배경에는 이른바 ‘김승유 무한식욕’ 포석이 마치 날개라도 달린 듯이 승승장구를 거듭한데 있었다. 보람은행과 서울은행에 이어 외환은행까지 인수·합병한 하나은행은 현재 4대금융지주의 선순위 자리를 다투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수십년간 하나금융의 ‘성공 방정식’만을 지켜 봐온 국민들은 최근 깜짝 놀랄만한 뉴스를 접했다. 하나금융그룹 김정태 회장이 자진해서 급여 30%를 내놓은 것은 물론 최흥식 하나금융지주 사장(등기임원), 윤용로 외환은행장도 각각 20%의 급여를 반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들의 급여반납은 의미심장한 뜻을 갖는다. 그만큼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대외에 공표하면서 위기극복을 위해 조만간 임금이든 인력이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호하게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직간접 선포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는 탓이다.
하나은행은 실제로 지난 상반기 이익지표가 안 좋았다. 하나금융지주가 지난 19일 발표한 상반기 당기순이익 규모는 5566억원 규모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64%나 급락한 수치다. 물론 외환은행 인수효과로 인한 영향을 감안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금융이 현재의 상황을 위기로 인식했다는데 있다.
금융지주사들의 위기는 하나금융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걱정이 앞선다. 7대 금융지주사의 지난 2분기 순이익 전망치(에프앤가이드)가 총 1조6848억원에 그쳐 작년 같은 기간의 2조2799억원에 비해 35.3%나 즐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중 하나금융은 예상치 3000억원을 달성하지 못하는 2699억원을 보였다. 한마디로 은행권의 ‘어닝 쇼크’다.
18개로 확대한 국내 은행들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더욱 충격적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들 은행의 순이익이 1조원으로 잠정 집계돼 작년 같은 기간 2조1000억원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다. 1분기에도 1조7000억원에 그쳐 작년 동기 3조3000억원에 비해 역시 절반 가량에 그쳤었다.
수익성의 악화는 은행들의 내실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성으로 치닫고 있다. 수익성 지표의 근간이 되는 순이자마진(NIM) 또한 작년 1분기 2.19%에서 같은 해 4분기에는 2.00%로 떨어지더니 올 들어 1분기에는 1.95%로 또 떨어졌다. 금융당국은 NIM을 3~4% 선에서 유지토록 권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은행들의 내실 기반이 흔들릴 징후가 이미 드러났다고 하겠다.
부실채권 규모 역시 심각한 수준으로 급증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 4대금융지주사들의 1분기 부실채권 규모는 약 13조4000억원을 나타내 지난해 말의 12조2000억원에 비해 불과 3개월 사이에 약 1조2000억원이나 늘어났다.
은행들의 실적부진과 부실채권 동향 등이 심상치 않으면서 각 은행들은 점포수와 인력을 줄이는 선제적 대응을 통해 위기에 대비하겠다는 전략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은행 점포수는 지난 2009년 1분기 후 4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은행마다 적자점포를 과감히 없애고 중복점포를 통폐합하는 등 구조조정이 확산세다.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현금자동입출금기(ATM)마저 줄이는 허리띠 졸라매기를 본격화 하고 있다.
임원들의 급여반납이 하나금융에 이어 신한금융 등으로 확산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장·부사장 등의 임원 수 자체를 아예 없애는 ‘고위층 다이어트’까지 진행되고 있다. 임원들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는 정책이 번지면서 직원 구조조정의 대규모 칼바람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은행권을 싸늘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선제적이라는 은행권의 대응은 보기 민망할 정도의 ‘뒷북 대응’이다. 산업계가 극도의 어려움에 처할 때 ‘나 홀로 호황’을 구가해 온 은행들은 벌어들인 수익을 흥청망청 써 왔다. 특히 급여 수준에서는 한국 최고의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를 뛰어 넘었다.
작년 말 말 기준 국민·하나·신한·우리·외환은행 등의 임원을 제외한 연봉은 평균 7840만원에 달했다. 삼성전자의 경우는 같은 기간 약 7000만원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직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남자 직원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 주요 은행들의 연봉이 대부분이 억대를 전후했다는 것이다.
외환은행이 평균 1억2220만원으로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고 하나은행 1억400만원, 국민은행 1억원, 신한은행 9500만원, 우리은행 9100만원 등의 수준을 각각 보였다. 은행 임직원들은 연봉 외에도 각종 수당과 보너스 혜택이 풍부하고 대출이자 특혜를 다양하게 받기도 했다.
은행들의 이 같은 무차별 쓰임새가 지금의 은행위기를 불러오고 아울러 키워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경쟁력이 없는 국내 은행들의 안방시장 쇠퇴는 곧 위기로 연결되는 매우 불안한 영업환경 속에 있다는 점에서 우려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은행의 세계 순위를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총 자산 기준으로 국내은행의 가장 높은 글로벌 순위는 고작 79위(우리금융지주)에 불과하다. 기본자본을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68위(KB금융지주)에 그친다.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산업의 규모에 비해서 국내 은행들은 여전히 안방 호랑이 역할만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감독원은 결국 위기의 심각성을 직감하고 은행권을 향해 간섭을 하고 나섰다. 금감원은 금융지주·은행 등 임직원들의 성과급보수체계를 전면 점검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계에서는 사실상 인력이나 임금 구조조정에 나설 것을 강력히 주문하는 행위라고 보고 구조조정에 더욱 박차를 기할 움직임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때늦은 조율’도 늦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은행 창구에서는 이미 중소기업들의 목이 타 들어갈 정도로 대출기피 현상이나 대출 조기회수 움직임이 벌어져 왔다. 프로젝트 파이냉싱(PF)까지 대단히 인색해지면서 최근에는 증권사들이 PF 지급보증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을 정도다. 증권사 불황도 심각해지면서 자구책으로 증권사가 PF 보증 수수료 시장 영업에 적극 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칫 PF 부실시 금융권 전반을 위험으로 내모는 증상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실 은행들의 구조조정은 이미 예고돼 온 일이었다. 아니 진작부터 구조조정을 통한 생존전략을 더 앞서 모색했어야 했다. 위기대응 시점이 늦어진 것은 은행들이 눈앞의 이익에만 눈독을 들인데 있었다.
가장 큰 위기의 상황에서 은행들이 돈줄을 틀어쥐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과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위기일수록 돌아가야 하듯 은행은 지금이라도 더욱 강한 체질을 갖추기 위한 길로 우회해야 한다. 선진국형 금융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등 위기에 강해지려면 지금이 오히려 기회다. 고슴도처럼 가시만 내밀고 움추려 엎드리고만 있으려 하는 것은 위기를 가중시키는 하책임을 새김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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