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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치우천왕릉은 산동성 양곡현에 있다

치우 시신 나뉘어 묻혔다는 기록, 역사왜곡에 불과

산서성 동남부, 배달국의 중심일 가능성 아주 높아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9-14 16:20:31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민족의 위대한 조상으로 황제헌원과 10년간 73회를 싸워 모두 이겼다는 만고의 영웅 치우천왕의 무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황람·묘총기(皇覽·墓塚記)>에 “치우총(蚩尤塚)은 산동성 동평(東平)군 수장(壽張)현 관향성(關鄕城) 가운데 있다. 높이가 7척이다. 주민들은 10월에 늘 여기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한줄기 붉은 띠 모양의 연기 같은 것이 뻗는데 치우기(蚩尤旗)라고 한다”고 기록돼 있다.
 
과거 동평군 수장현의 위치가 어디냐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치우천왕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치우학회의 발표에 의하면 ‘다시 살아날까봐 시체를 여러 토막으로 잘라 묻었다’는 전설과 함께 무덤도 여러 곳이 나타났다고 한다.
 
먼저 산동성 문상현 남왕진 서쪽 400m에 있는 무덤은 사지(四肢)를 묻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양곡현 수장진(陽谷縣 壽張鎭)과 하남성 대전현(臺煎縣)성 사이에 치우머리가 묻혀있다고 한다. 오대시기에 황하의 제방이 터져 호수가 평지로 변하면서 치우무덤도 땅에 묻혀버려 현지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원래 유적에 치우총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야현(巨野縣) 동북쪽에는 치우의 어깨를 묻은 견비총(肩脾塚)이 있는데 현재 마을 어귀에 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구능 위에 과거 태산의 산신을 모셨다는 집이 있다. 그에 따른 비도 세워져 있다. 높이는 과거 7장에 달했고 매년 10월 제사를 지냈지만 흙을 파서 인근 밭에 뿌리느라 지금은 3-4m로 낮아져있고 제사도 없다고 한다.
 
▲ 묘족 후예들이 찾아오지 않는 거야현 견비총. [사진=필자 제공]
 
한편 하북성 탁록 지역에도 4개의 무덤이 있다. 탁록중화삼조연구회에서는 동치우분의 2개 무덤은 가짜, 서치우분은 견비총으로 ‘치우의 병기와 치우족의 상징인 소머리’ 무덤으로 인정하고 남치우분을 진짜 무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이는 치우비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산동성 문상현정부에서는 여러 책에 기록돼 있는 동평군 수장현 감향성의 위치를 문상(汶上)현 남왕(南旺)진으로 보고 20억원을 들여 복원공사를 진행했다. 치우학회는 한국에서 모금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치우천왕의 사지가 과연 문상현에 묻혀있을까.
 
먼저 수장현에 대한 역사연혁이다. “수장(壽張)현 : 한 때 동군(東郡)에 속한 수량(壽良)현을 설치했는데, 지금의 동평(東平)현 내에 있다. 동한 광무제가 수량현에서 수장현으로 개명했고 동평국에 속했다. 남조 송 때 수창(壽昌)현으로 개명해 동평군에 속했다. 북위 때 수장현으로 다시 환원됐으며 치소가 지금의 양산(梁山)현 수장집(壽張集)으로 옮겨졌다. 수나라 때 제북(濟北)군에 속했으며 당나라 때 운주(鄆州)에 속했다.
 
송·금 때는 동평부에 속했고 1167년에 황하 범람으로 치소를 지금의 양곡(陽谷)현 이태(李台)진 죽구(竹口)촌으로 옮겼다. 1179년 옛 치소를 복원해 옮겼고, 원나라 때 동평로에 속했으며 1368년 황화가 범람해 치소를 동평부에 속한 남쪽 양산현 설둔(薛屯)으로 옮겼다. 1380년 치소를 오릉점(五陵店)에서 동평군 양곡현 수장진으로 옮겼다가 1385년에 연주부(兗州府)로 바뀌어 속했다. 1730년에 동평주에 속했다가 1735년 다시 연주부에 속했다.
 
▲ 문상현 남왕진에 조성된 치우총. [사진=필자 제공]
 
1912년 산동성 동림도(東臨道)에 속했다. 1949년 평원(平原)성 유성전구(聊城專區)로 바꿔 속했다가 1952년 산동성 유성전구에 속했다. 1958년 양곡현과 수장현이 합쳐졌다. 1964년 수장현 건제를 없애고 김제 이남지구는 하남성, 김제 이북지구는 산동성 양곡현으로 나뉘어졌다“
 
위 연혁에서 옛 동평군 수장현은 지금의 산동성 류성시 양곡현이다. 문상(汶上)현의 무덤은 큰 홍수 후 남왕진에서 ‘치우사(蚩尤祠)’와 ‘치우총(蚩尤塚)’이라는 비석이 발견돼 문상현정부에서 무덤을 조성했던 것으로 한마디로 가짜다. 치우의 묘족 후손들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은 이 무덤을 치우천왕의 진짜 무덤으로 여기고 있다.
 
다음은 중국신문에 보도된 내용이다. “2006년 10월, 문화부, 중국사회과학원, 북경대학, 귀주성 묘족학회, 귀주성 사회과학원, 광서장족자치구 사회과학원, 호남성 사회과학원, 산동대학, 난주대학 등 20개 단위가 넘는 전문역사학자들이 산동성 양곡현에 모여 치우문화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했다. 두 차례의 연구토의가 있었는데, 전문가들 모두 문헌기재와 고고학발굴과 민속유풍 등 다방면의 실증을 거쳐 치우의 머리무덤은 현재 양곡(陽谷)현 십오리원(十五里园)진 협가(叶街村)촌 동쪽 황고총(皇姑冢)으로 결론지었다”
 
▲ 양곡현 십오리원진 치우총에서 제를 올리고 있는 묘족 후예들. [사진=필자 제공]
 
그러면서 북경 서쪽에 있는 하북성 탁록현에 대해서는 “치우가 하북성 탁록에서 전사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천리 밖에 떨어진 산동성 양곡현에 장사지낼 수 있느냐”고 반박한 것을 보면 하북성 탁록현은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사기> 기록을 근거로 황제헌원이 치우를 잡아 죽여 신체를 토막내 여러 곳에 분산 매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서는 “우리 장수 가운데 치우비(蚩尤飛)라는 자가 있었는데 불행히도 공을 서두르다가 진중에서 죽게 됐다”고 <사기>의 오기를 지적하고 있다.
 
<사기>가 오기(誤記)인 이유는 한왕 유방(劉邦)이 전쟁에 나갈 때마다 풍패(豊沛)의 풍속에 따라 군신·무신인 치우에게 제를 올리고 한을 세운 후에도 동황태일(東皇太一)을 받들어 공경하고 치우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축관에게 명해 치우사당을 장안에 세우게 했다.
 
이렇듯 유방이 자기조상인 황제헌원이 아닌 이민족 치우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사실에서 마지막 탁록전투에서 누가 이겼는지가 자명해진다. 따라서 치우가 헌원에게 잡혀 시신이 토막 나 양곡현에 치우의 머리, 문상현에 몸, 거여현의 어깨 무덤이 조성됐다는 것은 잘못된 역사왜곡인 셈이다.
 
▲ 배달국의 중심은 황하변 산서성 동남부와 북부 하남성. [사진=필자 제공]
 
게다가 치우총의 위치로 배달국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가 밝혀진다. 대개 황제능은 그 나라 도성에서 가까운 곳에 조성하기 때문이다. 탁록현이 속해있는 상곡군과 산동성 수장현도 아주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산서성 동남부는 배달국의 중심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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