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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안정준 경희대학교 연구교수(젊은역사학자모임 대표)

“자칭 민족주의 재야사학자는 사이비 학자들”

온갖 거짓 주장에 대응하고자 처음 뭉쳐…대중 상대 역사전문가 필요

이경엽기자(yeab123@skyedaily.com)

기사입력 2017-12-14 00: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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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준(39)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가 5일 오후 6시 경희대학교 정경대학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사무실에서 스카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사진 촬영하고 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일부 자칭 재야사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국내 역사학계는 우리 민족을 무시하지 않아요. 우리 조상의 모습을 진실에 가깝게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죠. 아전인수격으로 취사선택해 보고 싶은 역사만 골라서 보는 태도를 역사학이라고 볼 순 없어요.”
 
경희대 정경대학 건물 5층에 위치한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사무실에서 안정준(39) 젊은역사학자모임 대표를 만났다. 안정준 대표는 경희대 인문학연구원에서 연구교수직을 맡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해 사학과를 갔습니다. 마음이 가는대로 역사를 진로로 선택했습니다. 이에 연세대 사학과에 진학해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죠.”
 
안 교수는 학부 4학년 시절 광개토왕비에 대한 논문을 써서 담당 교수에게 칭찬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안 교수는 고구려를 세부 전공으로 삼았다. 박사 논문 주제도 고구려다.
 
“지난해 8월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그해 11월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채용됐어요. 박사논문 제목은 ‘고구려의 낙랑·대방 고지(故地·옛 땅) 영역화 과정과 지배방식’이에요. 보통 박사논문 주제가 학자의 전공 영역이죠. 이에 제 전공은 낙랑, 대방군 등을 포괄하는 고구려사입니다.”
 
안 교수는 박사논문에서 고구려가 평양에 있던 낙랑군과 황해도에 있던 대방군을 자기 영토로 편입해 통치하는 과정을 연구했다.
 
“고조선이 한나라에게 뺏겼던 우리 민족의 강역을 되찾아온 주인공이 고구려에요. 이에 고구려사 매력에 빠지게 됐죠.”
 
동북사역사지도 폐기 사건에 충격 받고 대응 시작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등 자칭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역사 파시스트 또는 사이비 역사학자입니다. 자기들 거짓 주장이 진실인양 오도하고 정치권과 국민을 속이고 있습니다. 파시스트와 비슷하죠. 역사와 비슷한 모습을 띄는 사이비이기도 하죠.”
 
그는 2015년 4월 동북아역사지도 폐기 사건을 계기로 사이비역사학에 주목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예산 47억 원을 들여 동북아역사 지도를 만들었다.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고대 역사를 왜곡했다는 이유로 해당 지도를 폐기했다.
 
“국회의원들이 이덕일 소장 같은 사이비 역사학자에게 속는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국회의원들을 속여 동북아역사 지도를 폐기하게 만든 이덕일 소장이 누군지 알아봤습니다. 이덕일 소장이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올린 강의 동영상도 봤죠.”
 
안 교수는 이덕일 소장 강의 동영상을 보고 놀랐다. 거짓말로 역사학계를 매도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했다. 또 역사학계가 사이비 역사학을 방치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역사 파시스트들이 역사학계 연구결과를 왜곡하는 동안 진짜 역사학계는 아무 대응하지 않았어요. 역사학계를 이른바 식민사학이라는 프레임에 씌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답답했습니다.”
 
민족주의 사학자의 주장은 얼핏 단순하고 명쾌하게 보인다. 낙랑군이 평양 일대에 있다는 주장을 하면 식민사학이고 요동 일대에 있었다고 주장하면 민족사학이다. 안 교수는 실제 역사는 이리 단순하거나 명쾌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역사학자 상당수가 이제부터라도 역사 파시스트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학자들이 모여 젊은역사학자모임을 만들었어요. 역사학자 30여명이 활동하고 있어요.”
 
젊은역사학자모임은 지난해 4월 첫 모임을 가졌다. 안 교수를 비롯해 기경량 가천대학교 강사 등 학자 3명은 논문집 ‘역사비평’에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을 주제로 각각 기고문을 실었다. 이 기고문에서 한국 고대사를 다루면서 국력과 영토 범위에 집착하는 일련의 연구를 사이비 역사학이라 비판하고 그 행태를 역사 파시즘으로 규정했다.
 
지난 3월 단행본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도 출판했다. 인터넷 라디오 방송채널을 통해서 방송도 한다. 안 교수는 “사이비 역사가 아닌 진짜 역사를 대중들에게 더 쉽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낙랑군, 토착민 대다수가 중국과 함께 지배
 
▲ 안정준 교수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안 교수의 박사학위 청구논문의 제목은 ‘고구려의 낙랑·대방 고지(故地·옛 땅) 영역화 과정과 지배방식’이다. 과거 고구려가 낙랑군과 대방군의 영토를 어떻게 통치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스카이데일리
 
안 교수에게 낙랑군의 위치 비정문제와 환단고기 진위여부에 대해 물었다.
 
“고조선이 기원전 108년 멸망하자 한나라는 낙랑군을 평양 일대에 세웠습니다. 낙랑군은 420년간 존속했습니다. 이게 역사학계 통설이에요. 근거가 풍부하게 나타나죠. 일제강점기 발굴된 고고학 유적부터 최근 북한에서 발굴되는 고고학유적까지 일관되게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1990년 7월 평양 정백동 나무곽무덤에서 발굴된 ‘초원4년 호구부 목독’이 대표 사례에요.”
 
한국 역사학계는 2007년에야 ‘초원4년 호구부 목독’에 대해 알았다. 북한이 2006년 관련 서적을 발간했기 때문이다. 이 호구부는 낙랑군 위치를 비롯해 낙랑군 25현 인구와 전년대비 증감치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군현의 행정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초원4년은 기원전 45년이다. 초원은 전한 황제 원제의 첫 번째 연호다.
 
“낙랑이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한다고 식민사학은 아니에요. 이 주장은 역사학계에 대한 모독이에요. 역사학계는 일본인 식민주의 사학자들이 남기고간 식민사학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어요. 일본인 학자들과 다른 시각에서 다양한 사료를 참고하고 북한에서 새로 발굴되는 고고학 유적들을 지속적으로 보충했죠.”
 
일제강점기 일본인 역사학자들은 낙랑군에 대해 연구하면서 지배층은 중국인이고 피지배계층은 고조선계 토착민이라는 이분법적 사관을 주장했다. 그 근거로 중국인 무덤은 목곽묘이고 토착민 무덤은 고인돌이라는 점을 들었다.
 
“역사학계 연구결과 고인돌은 낙랑군 설치 이전 유적이었어요. 우리 역사학계는 새로 발굴된 고고학 자료를 근거로 한걸음 더 나아간 사실을 밝혀냈어요. 낙랑군은 중국 한족이 고조선계 주민들을 일방적으로 통치했던 역사가 아니에요. 비록 외형은 중국 군현이고 극소수 중국 관리들이 파견됐지만 식민사학자들 주장처럼 중국이 한반도를 근대적 식민지처럼 지배했던 역사로 볼 수 없어요. 이를 통해 한국 역사학계는 한반도에 대한 외세의 지배, 즉 근대 식민통치를 정당화한 일본 학자 주장을 반박할 수 있었어요.”
 
안 교수는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규정했다.
 
“과학과 신앙을 혼동하는 이들이 있어요. 성경을 근거로 지구 역사가 6000년이라는 주장을 과학자들은 진지하게 듣지 않죠. 환단고기 신봉자들 인식은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역사라는 학문 영역과 정서적 믿음의 영역을 혼동하는 짓은 위험합니다.”
 
한편 안 교수는 진한시기 만리장성 동쪽 끝으로 알려진 갈석산은 요서 지역에 있었다고 단언했다.
 
“사이비역사학, 비주류 역사학 되고프면 논문 쓰면 돼”
 
▲안정준 교수가 경희대학교 정경대학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설명을 하고 있다. 안 교수의 사무실은 안 교수를 포함해 총 3명이 앉을 수 있도록 구성돼 있었다. ⓒ스카이데일리
 
이덕일 소장은 자칭 민족주의 사학자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역사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반면 안 교수는 이덕일 소장을 연구자로 인정하기를 꺼려했다.
 
“이덕일 소장을 역사 연구자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역사학 석사,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논문을 계속해서 쓰지 않았어요. 이덕일 소장에겐 자기 주장이 없어요. 그는 다른 곳에서 가져왔거나 역사학계를 비난하는 내용밖에 없죠.”
 
연구자에겐 논문이 중요하다. 연구 성과를 평가받는 기준이 논문의 양과 질이다. 학자는 연구 성과물을 담은 논문에 자기 주장을 밝히고 전문가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덕일 소장이 책은 많이 냈죠. 최근엔 저를 포함해 젊은역사학자모임 소속 연구자들을 실명으로 비난하는 책까지 내셨더라고요. 이 책들은 학술서 내지 학문서로서 가치가 없어요.”
 
학계는 연구 성과물을 통설과 소수의견으로 나눈다. 선대 학자들이 토론과 논쟁을 통해 통설을 세우면, 후대 학자들이 통설을 반박하는 소수설을 끊임없이 내놓는다. 소수설이 통설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고 대다수 학자가 받아들이면 소수설이 새 통설이 된다.
 
“역사 파시스트들이 자기 주장을 소수설로 인정받고 싶다면 논문을 써서 학자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역사 파시스트들이 비주류 학자가 아닌 사이비 학자인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역사학계를 설득하기보다 인신공격하면서 대중 상대로 여론전을 펼치고 있죠. 학자가 할 일이 아니죠.”
 
우리도 선진국처럼 대중적인 역사 전문가 필요해
 
안 교수는 역사학계가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시도하지 않아 대중들로부터 유리됐다고 주장한다.
 
“역사학자로 일하다보면 일거리가 없어서 늘 곤궁에 시달리죠. 또 직장을 얻은 뒤에도 논문을 꾸준히 써야하므로 대중과 소통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역사학계는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책을 쓰거나 강연하는 것을 등한시했어요. 역사 해설서는 논문이 아니라 연구 성과로 인정받지 못하죠.”
 
안 교수는 이런 분위기를 현대미술에 비유했다. 전근대 미술은 변화 속도가 느린 덕분에 대중이 따라가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인상주의와 모더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인식의 변화가 급속도로 빨라져 일반인이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미술 작품을 해설하는 직종인 평론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말과 글을 통해 대중은 작품을 이해했다. 이런 해설도 미술 사조의 흐름을 쉽게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결국 미술 관람자는 미술 교육을 받은 소수와 일반 대중으로 다시 나뉘었다.
 
“역사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역사 연구는 빠르게 변하지만 대중의 역사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어요. 이에 대중은 역사학계 연구결과를 보면서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죠. 역사 파시스트들은 바로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데 성공했습니다.”
 
“결국 현대미술 평론가처럼 역사도 설명자가 필요하게 됐죠. 설민석 단꿈교육 대표나 최진기 이투스 사회탐구 영역 대표강사가 대표적인 역사 설명가입니다.”
 
안 교수는 역사 설명가들이 역사를 깊게 공부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수능, 공무원 시험 등의 국사과목을 강의하기 위한 강사라서 국사교과서 이상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탓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는 양극단으로 갈라집니다. 역사를 깊게 공부하지만 대중과 접촉하지 않는 소수 역사학자들과 역사를 얕게 공부하지만 대중과 자주 접촉해 친숙한 대중 강연가들로 나뉘어졌죠.”
 
안 교수는 학자만큼 공부하고 대중과 적극적으로 접촉하는 강연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과학전문 기자, 의학전문 기자처럼 역사전문 기자가 있다.
 
“언론사에 역사전문 기자가 있다면 역사 파시스트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요. 역사 전문기자는 얼치기 주장을 금방 간파하죠. 이에 우리는 연구하면서 시간을 내 대중과 접촉을 늘리고자 합니다.”
 
[이경엽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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