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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백등산에서 흉노선우에게 치마끈을 푼 여치

평성에서 흉노에게 포위당했던 한고조…탈출 위한 ‘진귀한 선물’의 비밀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9-30 20:50:14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아래 <한서지리지>에 기록된 설명으로도 유주(幽州)에 속했던 대군(代郡)은 북경 서쪽에 있던 행정구역이 아니라 산서성 동남부에서 하북성 서남부에 이르는 구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확실하게 입증해주는 지명이 있었으니 바로 대군에 속한 참합(參合)이라는 속현이다.
 
 
참합에 대한 중국 바이두(百度)백과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서한 때 설치돼 대군에 속했다가 동한 때 폐했다. <한서 고제기> 11년 장군 시무(柴武)가 한왕(韓王) 신(信)을 참한 곳으로 지금의 산서성 북부 대동(大同)시의 양고(陽高)현 동북쪽이다. 395년 5호16국 후기에 북위군이 참합피(參合陂)에서 후연군을 격파했다.”
 
위 바이두백과에 언급된 한왕 신(韓王 信)은 회음후(淮陰侯) 한신과는 동시대를 살았던 동명이인이었다. 훗말을 기약하며 시정잡배의 바짓가랑이를 기었고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를 물리쳐 개국공신으로 제왕(齊王)에 봉해졌다가 처형되면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유명한 말을 남긴 한신이 회음후 한신이다.
 
당시 흉노에서는 묵돌(冒頓) 선우(흉노의 군주를 일컫는 말)가 나타나 아버지 두만 선우를 죽이고 권력을 쟁취해 강력한 카리스마로 흉노를 하나로 통합시키고 그 세를 급속도로 확장시키고 있었다. 한고조 유방은 이러한 흉노의 침략을 견제하기 위해 측근인 한왕 신을 북방에 배치해 흉노 토벌을 명했다.
 
한왕 신이 북쪽 마읍(馬邑)으로 치소를 옮겨가자 흉노의 묵돌 선우가 친히 병력을 일으켜 마읍을 포위해버렸다. 한왕 신은 자신만의 힘으로는 흉노를 막아내기 어렵다고 보고 화친을 주도하기 위해 사신을 자주 보냈다가 한고조 유방에게 흉노와 내통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돼 두려운 나머지 흉노로 투항해버리고 말았다.
 
이후 한왕 신은 흉노의 장수로 변모해 한나라의 변방 태원을 공격해오자 이에 고조 유방이 친히 평성(平城)으로 출전했다가 졸지에 백등산(白登山)에서 7일간이나 포위를 당해 식량도 보급품도 전혀 지원받지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에 빠지게 됐다.
 
이때 유방을 수행했던 진평(陳平)이 묵돌의 부인 연지(閼氏)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 설득해보자는 계책을 냈다. 진평은 미인도를 함께 보내며 “한왕이 이 미인을 묵돌에게 바치려한다”고 말했다. 미인도의 여인에게 자신의 사랑을 빼앗길까 두려워했던 연지는 묵돌을 설득했다.
 
"양 군주가 서로를 곤궁한 지경에 몰아넣어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한나라 땅을 얻는다 해도 선우께서는 그곳에 사실 수도 없습니다. 또한 한왕은 하늘이 돕고 있으니 선우께서는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묵돌 선우는 유방이 탈출할 수 있도록 한쪽 포위망을 느슨하게 풀어줬고 한나라에서 지원군이 도착하자 묵돌 선우도 철수해버렸다. 이후 한나라와 흉노는 ①한 왕실의 여인을 선우의 연지로 바친다. ②한나라는 매년 흉노에게 솜, 비단, 술, 쌀 등을 바친다. ③한나라 왕과 흉노의 선우는 형제의 맹약을 맺어 화친한다는 불평등 조약을 맺었다.
 
훗날 한왕 신은 고조가 장수 시무을 통해 보낸 “투항하면 옛 칭호와 자리를 돌려주고 죽이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신에 자신의 3가지 죄를 열거하며 정중하게 거부하고는 장렬하게 싸우다가 참패해 참합에서 참수되고 만다.
 
▲ 산서성 양고현에 있는 시무가 한왕 신을 참수했다는 유적지. [사진=필자 제공]
 
그런데 당시 유방에게 진귀한 선물을 받은 흉노의 연지가 묵돌 선우를 설득해 포위망을 풀었다고 하는데 그 당사자가 아래 <고구리사초략>에 기록에 의해 바로 한고조 유방의 부인인 여치(呂雉)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고구리사초략>에 신명선제께서 붕어하자 한나라에서 사절이 와서 조문하는 자리에서 수성(遂成, 훗날 차대제)이 등후(鄧后 후한의 왕후)의 나이를 묻자 사신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답하니 수성이 이어서 “지난날 여후(呂后=여치)는 평성(平城)에서 허리띠를 풀고 묵특(묵돌)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너희들은 왜 등만이 내게 허리띠를 풀고 어육(魚肉)이 되게 하지 않는가. 호(후한 6세 공종)의 애미가 내게 첩 노릇을 하지 않으면 낙양은 잿더미가 될 것이다”고 했더니 사신들이 가만히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신라 김옥모 태후가 중천태왕에게 보낸 서신에 “주 왕실에는 서왕모가 (목왕을 위해) 아름다운 연못을 준비한 예법이 있었고 한 왕실에서는 여치와 묵특 사이에 법도가 있었습니다. 신첩도 마음속으로 원하는 바 있어서 제 딸을 후궁으로 보내드렸사옵니다. 원하건대 황자와 황녀들을 보시어 세세토록 장인과 사위로 지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하니 상이 크게 기뻐하며 남쪽을 향해 무릎 꿇고 절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에서는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유방이 죽고 아들 효혜왕이 즉위하니 묵돌이 여태후에게 보낸 서신에 “나도 독신이고 그대도 독신이니 잘해보자”는 내용이 씌어져 있었다. 이에 여태후는 크게 노해 흉노를 토벌코자 했지만 주변에서 모두 고조의 예를 들어 만류하는 바람에 토벌을 취소했다는 기록이 있다.
 
백등산에서 여치가 묵특에게 치마끈을 푼 것은 역사적 사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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