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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언의 문화방담(放談)

조형예술의 코페르니쿠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1-22 21:40:40

 
▲이재언 미술평론가
/이용덕의 ‘음각조각’ 역발상으로 조형심리학 다시 쓰게 해
/감각적으로 재미와 흥을 준다고 트렌드로 치부해선 안 돼
/우리문화예술 콘텐츠 좋지만 포장을 잘 못하는 약점 지녀
/상업적 잭팟 넘어선 미술사적인 가치의 화두로 평가해줘야
 
꽤 오래 전 어느 유명한 아트페어 현장에서의 일이다. 부스의 벽에 걸린 부조작품이 있었다. 몇 미터쯤 거리를 두고 보았을 땐 분명히 여느 부조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독특한 색조의 분위기와 빼어난 모델링이 발휘된 그렇고 그런 작품이려니 하면서 대충 둘러보는 수준으로 지나치려 했을 때, 무언가 그냥 지나치기에는 석연치 않은 것 같이 시선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나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 속 인물상이 함께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순간적으로 받았다. 뭐지 싶어 다시 뒷걸음으로 역동작을 하니 그것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호기심으로 다가가 보니 갑자기 또 둔갑을 하듯 다른 모습을 보였다. 분명히 인물 부분이 도드라지게 표현된 부조였던 것이 반대로 거푸집처럼 오목한 음각의 역상(逆像)임이 확인되는 것이었다. 하도 신기하여 몇 번씩 내 몸을 좌우로, 앞뒤로 움직이면서 움직일 때마다 반응을 하는 것이었다.
 
▲이용덕 作 Working, 111081, 110x170x12cm, 2011. [사진제공=필자]
 
이게 뭔가? 이게 소위 유행을 타기 시작한 ‘인터액티브’라는 첨단 미디어가 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첨단 장치가 탑재된 오브제는 아니다. 평범하게 역상을 보여준 부조일 뿐이었는데, 필자는 잠시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 하나를 두고 소동이 있어난 부시맨’이 되고 말았다. 유쾌하고도 충격적인 이 순간의 경험이 오랜 조각의 역사적 모멘텀들이 주마등처럼 소환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음’과 ‘양’이 서로 순환되는 것임을 망각하고 영원히 고립된 것으로 고착화하려 했던 우리의 인식이나 세계관들이 도마 위에 올려지기 시작했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조형예술의 코페르니쿠스’를 우리는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충격적이고 매력적인 ‘역상조각’의 주인공이 바로 이용덕 교수(62·서울대)다. 어떤 대상의 상에 대한 우리의 오랜 지각적 관성과 의식의 지향성을 뒤집는 이 기발한 역발상(逆發想)이 돋보이는 그때의 인상이 두고두고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고정되어 있는 사물이나 도형이 특수한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을 ‘가현운동’(apparent movement)이라 한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여러 가지 사례들이 일반화되고 망라되어 조형 전공학생들에게 필수교과로 학습되고 있다.
 
▲ 조각가 이용덕 서울대 교수 [사진제공=필자]
 
그런데 그 어떤 조형심리학 교과서에서도 본 적이 없는 신비한 가현운동의 사례가 하나 새로 추가되고 있다. ‘음각조각’ 혹은 ‘역상조각’으로 불리는 이것이다. 보통의 양각부조에서 입체나 반입체를 캐스팅하기(만들기) 위해 있어야 하는 ‘거푸집’ 구조를 연상하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보는 사람이 움직일 때 함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혹은 볼록함이 오목함으로 전도되는 요술 같은 착시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역상의 조형이 단조로운 발상과 구조의 발명치고는 인터액션의 재미만이 아니라 ‘음양’의 세계관에 기반한 동양적 형이상학과 담론도 무리 없이 담아낼 수 있는 경이로운 발명이 아닐 수 없다.
 
그때의 경험이 너무 큰 충격인 것이, 세상에 그 많은 조각가들이 있었지만 이 현상을 아무도 깨닫거나 주목하지 못했던 것일까. 수많은 조각가들의 작업실에 많은 거푸집 조각들이 널려 있었을 텐데, 그것을 하나의 기능적 도구로만 보았을 뿐 목적 그 자체, 즉 작품의 원천으로 보았던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거푸집에서 탈리(脫離)된 볼록한 양각의 대상만을 주목했을 뿐, 음각은 버려지는 것이었다. 사물과 현상의 가치 및 가능성을 주목한 역발상의 아이디어는 우리 조형예술계에 너무도 신선한 충격이다. 존재에 대한 상투적 인식론까지도 다시금 짚어보게 하는 작가의 해석학적, 미술사적 쾌거와 의미가 감각적 참신함 정도로 머물 일은 아니다. 좀 과장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작가의 성취는 피카소나 뒤샹 급으로 띄울 수도 있는 사안이다.
 
▲이용덕 作 Wash_Up, 190x80x12cm, Mixed_Media, 2011. [사진제공=필자]
  
물론 이러한 창안에 기초한 그의 작업은 세계의 ‘있음’과 ‘없음’에 대한 진지한 사색을 함께 해보자고 말을 건넬 뿐 답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작품 앞에서 흥미를 갖고 생각 없이 움직이기만 하는 관객을 탓하려 하지도 않는다. 작가는 “내 작품은 의미전달을 위한 현수막이라기보다는 들에서 발견되는 꽃이나 들풀처럼, 나의 사유적 원인에 의해 존재되어진 것이고, 관객은 나의 생각과 무관하게 나의 작품을 통해 마치 들풀을 발견하고 그것을 꺾어 간직하거나 스스로 이름이나 꽃말을 붙여 주는 관계가 된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어떤 동기에서든 작가의 작품들은 우리 무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외국 무대에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수많은 유수의 세계적 아트페어와 경매는 말할 것도 없고, 각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들을 사들였고 지금도 구입하고 싶어 한다. 그야말로 시장에서의 상업적 인기로 치자면 아이돌 레벨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우리 선비들의 학구적 성향과 겸손함 때문에 폭발적인 상업적 반응을 경계하는 입장인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너무도 아쉬운 게 예술적 담론은 뒷전이고 상업적으로 부각되기만 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들떠 있을 때 그의 발상은 새 시대 조각의 아이콘으로 부상시켜야 마땅했던 바로 그때 제대로 조명을 못 받았다. 예술적 담론의 패권이 우리에게 쥐어져 있지 못한 시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라는 참혹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정신적 창조물들을 문화산업의 프레임으로만 가두려 했던 당시의 사회 환경이 너무도 아쉽다. 이제 조금이나마 문화적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이때, 그가 던졌던 화두를 새롭게 조명해야 할 것이다. 감각적으로 재미나 흥을 주는 발명, 혹은 한때의 트렌드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일이다. 우리 문화예술의 장점은 콘텐츠가 좋은 반면, 포장을 잘 못하는 약점이 있다. 포장까지는 아니어도 재조명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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