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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의 지배구조가 투명할수록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주주이익을 극대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ESG 경영’이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주주총회 모습. [스카이데일리DB]
[특별취재팀=임현범 부장|강주현·이창현·윤승준 기자] 전 세계적으로 ‘ESG 경영’이 기업들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업의 ‘지배구조(G)’는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필수 요소로 꼽힌다. 기업의 지배구조가 투명할수록 기업가치와 주주이익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세대교체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국내 재계에서도 건전한 지배구조 확립을 위한 분주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ESG 경영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해외의 평가지표를 국내에 그대로 도입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가마다 법과 제도, 환경 등이 달라서다. 예컨대 경영권 측면에서 국내 기업은 창업주나 그 후손이 직접 경영하지만 해외에서 그 비율은 현저히 낮다.
특히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톰슨로이터 등 해외 ESG 기관마다 평가항목도 달라 ESG 등급이 제각각인 만큼 한국의 상황에 맞춘 ‘한국형 ESG’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속가능한 경영 필수 요소 경영권 보호, 주주가치 제고·장기투자 유리
글로벌 ESG평가 기관인 MSCI와 톰슨로이터 등은 주주권리 제고 차원에서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경영진(Management) 등의 항목으로 기업을 평가한다. 주주의 권리를 제고하는 기업일수록 지배구조가 투명하다는 인식에서다. 다만 이를 국내 기업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현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이에 국내 경제·산업 환경에 맞는 명확한 평가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스카이데일리가 다수 전문가의 주장을 토대로 정리한 ‘지배구조(G)’ 평가 항목은 총 10가지다. 첫 번째 평가 항목은 ‘경영권 보호’다. 경영 안정성이 얼마나 보장됐는가를 고려해 기업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이러한 항목을 설정한 이유는 해외 투기자본세력으로부터 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스탠퍼드대 록센터 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로 자산을 팔거나 최고경영자(CEO)를 바꾼 기업의 수익률은 저조했다.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한 지 2년 후 주가상승률과 배당수익률을 조사한 결과 오히려 각각 -18%, -3.8%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지니먼트는 과거 삼성물산(2015년)과 현대자동차(2018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며 두 기업에 손실을 입힌 바 있다.
두 번째 항목은 ‘주주가치 환원’이다. 배당, 자사주 소각 등 주주가치 환원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행하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미 MSCI는 기업의 보상, 톰슨로이터는 주주(Shareholders) 등의 항목으로 이를 평가하고 있다. 다만 차이점은 주가 상승의 포함 여부다. 즉, 배당성향이 낮아도 실적 개선으로 주가가 상승하면 이를 주주가치 환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국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배당성향은 기업과 업종에 따라 다르다. 코카콜라 등 전통산업의 경우엔 주식 배당으로 주주들에게 가치를 제고해야 하지만 애플과 같은 신사업은 주식 배당을 늘리지 않아도 주가 상승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은 애플에 가까워 주가 상승으로 주주들에게 가치를 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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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이호연] ⓒ스카이데일리 |
세 번째 항목은 ‘부당행위’ 여부다. 현재 MSCI는 기업 행동(Corporate Behavior)라는 항목으로 경영진의 위법 행위, 부패 관행 등 비즈니스 윤리 문제를 평가하고 있다. 다만 이를 우리나라에 그래도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에 비해 CEO를 처벌하는 법규가 지나치게 많은 데다 정치적 이슈가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경제 관련 형사처벌 항목은 2657개로 이 가운데 83%(2205개)는 범죄를 저지른 직원뿐 아니라 법인과 대표이사가 함께 처벌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영향으로 삼성전자는 2018년 이재용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ESG 우수 기업 리스트인 ‘MSCI 코리아 ESG 리더스 지수’에서 제외됐다. 정치적 사안이었으나 국외 ESG 기관은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형 ESG’ 평가항목은 비(非)정치적이고 개인적인 범죄를 통해 기업 가치를 훼손시켰을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네 번째 항목은 ‘공시의 투명성’이다. 투자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경영정보를 시의적절하고 정확하게 공시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단, 여기서 ESG 공시는 제외된다. ESG 공시를 강제하거나 늘린다고 해서 기업의 재무성과와 시장가치에 유의한 결과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분석돼서다.
김윤경 한경연 기업연구실장은 “ESG 공시를 법제화해도 근본적 변화 없이 공시항목 증가 등의 방법으로 ‘눈 가리기’ 식 회피가 가능하므로 기업 내부의 필요성에 의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며 “비재무적 정보 공시가 무의미하다고 해석할 수 없지만 반대로 공시 확대 또는 의무화 정책 역시 의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섯 번째 항목은 ‘내부거래 위반’이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율을 따져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룹 내 내부거래가 적을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다. 현재 MSCI는 기업 행동(Corporate Behavior) 항목에서 부정행위, 반독점 위반과 같은 비즈니스 윤리 문제를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엔 불리한 요소가 많다. 대다수 국내 기업의 경우 회사 간 강력한 수직계열화, 협업 등을 통해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어서다. 현실적으로 주주가치를 훼손한 부당 내부거래에 대해 평가하는 게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신현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집단의 내부거래는 기업집단 전체의 효율성 제고라는 긍정적 측면과 시장에서의 공정거래저해성이라는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균형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기업집단의 내부거래는 사회경제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보아 용인하되 총수 일가의 사익추구나 부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비효율적인 부당한 내부거래는 억제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사회 독립성·다양성 확립, 준법감시 정착… 기업가치 상승 직결
여섯 번째 항목은 ‘이사회의 독립성’이다. 이사회 개최, 사외이사 출석률이 얼마나 되는지를 놓고 평가하는 식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보고서에 따르면 독립적인 사외이사의 비율이 높아 이사회 독립성의 수준이 높은 기업일수록 기업가치가 높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기업 이사회 구성원 가운데 사외이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60.0%(4.8명)으로 미국 80.4%, 영국 69.9%, 독일 68.0% 등 주요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강윤식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모니터링을 해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반면에 기업에 무조건 우호적인 사외이사는 경영진과의 관계로 인해 적극적인 모니터링을 수행하지 못해 기업가치 상승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곱 번째 항목은 ‘이사회의 다양성’이다.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이 세계 평균치를 넘었는지를 고려해 평가한다. 글로벌 증권사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기업의 이사회 내 여성임원 비율은 3.1%로 조사 대상 국가 중 최하위였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제한된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5.5%)보다도 낮았다. 전 세계 평균은 20.6%였다.
KB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이사회 내 남성과 여성 이사의 비율이 비슷한 기업은 그렇지 못한 기업에 비해 자기자본이익률(ROE), 투하자본이익률(ROIC) 등이 유의미하게 높은 결과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평균적인 주가 성과도 이사회 여성 비중 15% 이상 그룹이 좋은 주가 수익률을 기록했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리스크 대비 리턴 관점에서 보면 성별 다양성이 높은 기업군일수록 현저히 좋은 실적을 보였다”며 “글로벌 조사 동향과 마찬가지로 성별 다양성이 높은 기업군일수록 리스크 관리가 유효하였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여덟 번째 항목은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이다. 감사위원회 내 사외이사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를 놓고 평가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감사위원회가 설치된 코스피 상장기업 281사의 감사위원회 내 평균 사외이사 비율은 97%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대다수 회사가 높은 독립성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된다.
감사위원회는 주주 대신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를 견제해 투명한 경영의사결정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독립적인 감사위원회가 들어선다면 회계와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제고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김유경 삼정KPMG 상무는 ‘감사위원회 및 감사의 위상과 실효성 제고를 위한 제언’이라는 보고서에서 “감사기구는 회계투명성에 기반한 자본시장의 활성화 및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향상을 요구하는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국가적 과제와 직결돼 있다”며 “독립성, 전문성 확보라는 법·제도적 측면과 함께 감사기구의 실질적 활동을 위한 투입시간의 확대와 정보의 제공, 감사기구를 지원하는 실무조직의 설치 및 활동영역의 확대라는 운영 측면이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홉 번째 항목은 ‘컴플라이언스(법·명령 등의 준수)’다. 이는 정부 규제 정책 등 국내외 법률에 반하지 않고 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사업 현황과 규제환경이 수시로 변동하고 중소기업마저 활동 무대를 전 세계로 확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컴플라이언스를 쉽게 간과하긴 쉽지 않다.
이병화 변호사는 ‘컴플라이언스 아카데미’라는 강의에서 “준법경영 관련 규제가 다양화되고 법규 위반에 대한 기업과 임직원 책임이 가중됨에 따라 컴플라이언스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컴플라이언스는 기업의 경쟁력이자 기업의 존속을 위한 최우선 순위다”고 말했다.
열 번째 항목은 ‘임원 보수’다. 임원들의 보수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책정됐는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오너 경영이 보편화된 국내 기업 특성상 가족 구성원이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과도한 보수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서 만들어졌다.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의 ‘국내 상장기업의 임원보수 현황 분석·시사점’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임원·CEO가 비가족 임원·전문CEO에 비해 총 현금보수에서 성과와 무관한 고정급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타났다. 미등기임원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 미등기임원은 등기임원이나 가족이 아닌 미등기임원보다 더 많은 현금보수 금액을 수령했다.
석우남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국내 상장기업의 지배주주는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보수 수준 및 지급구조를 설계하거나 정보환경을 불투명하게 만들 유인이 강하다”며 “이러한 대리인 문제로 초래된 부적절한 임원보수 구조는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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