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7º
습도 85%
청주 27º
습도 85%
)
가상화폐가 실제로 사용되는 사례가 늘면서 영향력을 점점 더 넓히고 있다. 엘살바도르가 지난 9월 전세계 국가 중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인정한데 이어 우크라이나도 비트코인 합법화에 나섰다. 베네수엘라는 자국 내 국제공항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결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처럼 선진국에 비해 자국화폐에 대한 신용도가 낮은 나라들을 중심으로 가상화폐를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여야가 합의한 내년 가상자산 과세 방침을 1년 유예할 방침을 내놓은 데 이어 전 국민에게 가상화폐를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왔다. 그는 “부동산 개발이익을 기초 자산으로 해서 전 국민에게 가상자산을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국민에게 개발비용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코인으로 발행해서 지급하고, 이것을 하나의 거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이 자체가 화폐 기능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각계 각층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로 가상자산을 만들어 유통시키겠다는 구상은 기존의 통화 질서를 흔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발행 주체가 정부여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과 부딪칠 가능성이 있어서다. 한국은행도 ‘가상자산은 투자자산일 뿐 화폐는 아니다’라며 한은이 추진하고 있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다른 것이라고 선을 긋는 입장이다. 관련 업계에서도 ‘암호화폐에 대한 의미와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후보의 발언은 사실상 기존 통화질서를 바꾸겠다는 의미다. 정부 주도로 가상자산을 만드는 건 기존 정부 정책을 뒤집는 것은 물론이고 중앙은행과 사전에 논의조차 하지 않아 정책 집행에 혼선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발언은 우리나라의 경제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잠정)은 약 1조6300억달러로 집계돼 세계 10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1인당 국민소득(GNI)은 주요 7개국(G7)에 속한 이탈리아를 제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앞서 예로 든 나라들과는 180도 다른 상황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석유 매장량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나라지만 2018년 170만%라는 기록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화폐 가치가 사실상 없어 길거리에서는 지폐로 만든 공예품이 팔릴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베네수엘라 내 금융거래의 60% 이상은 미국 달러화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8년 석유 매장량과 연동되는 정부 주도 암호화폐인 ‘페트로’를 출시했지만 미국의 석유 수출 제재로 타격을 입고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 그러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화폐 개혁으로 100만 대 1로 액면가를 절하한데 이어 지난달 ‘디지털 볼리바르화‘를 출시했다. 아무리 봐도 한국과는 다르다.
이 후보가 실현 가능성이 의심되는 공약을 남발하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최근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에게 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가상화폐 주요 투자층인 2030세대의 표심에 영합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하지만 2030세대들조차 ‘코인 채굴 때문에 컴퓨터 그래픽 카드가 비싸 바꾸지 못하고 있는데 무슨 말이냐’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후보가 내놓은 ‘포퓰리즘성 공약’은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로 재직 중이던 지난 2월, 경기도 산하 기관인 경기신용보증재단은 신용도에 상관없이 1인당 500~1000만원을 10년간 연 3% 금리로 빌려주는 ‘기본대출’ 상품을 만들자고 시중은행들에 공문을 보낸 바 있다. 이후 6월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연 2.8% 금리로 1000만원을 대출해주는 공약도 내놨다. 현재 고신용자 신용대출 금리도 3%를 넘는 상황에서 ‘묻지마 대출’로 인한 ‘모럴해저드’를 부추길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자칫 ‘제2의 카드대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후보 캠프 측에서는 소득수준이 연 5000만원 이하인 20대에 소득세를 걷지 않는 방안도 내놨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원칙마저 흔드는 발상이다.
이러한 마구잡이식 포퓰리즘 공약 살포는 한때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비판하던 이른바 ‘관치금융’을 떠올리게 한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득실만을 고려해 나온 ‘포퓰리즘성’ 정책이 국익에 도움될 지는 의문이다.
내년에 나랏빚이 10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나라살림이 거덜날 판인데도 ‘일단 이기고 보자’는 속셈에 포퓰리즘 공약에 반대하는 애꿎은 홍남기 경제부총리만 공격당하고 있다. 현실성이 결여된 무책임한 공약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사이다로 포장된 ‘포퓰리즘 공약(空約)’은 그만 보고 싶은 심정이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3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