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못하면 내가 직접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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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못하면 내가 직접 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
조국·50억 클럽 법조인·이재명 수사 왜 몇 년씩 끄나

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2-07 11:10:32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말을 실감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혐의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의 감찰 무마 사건의 1심 판결이 기소된 지 장장 3년 2개월 만에 나왔다. 그의 딸은 대학교와 의학전문대학원 학력이 취소되었는데도 아직 의사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장동 개발 비리·선거법 위반·북한과의 비밀 접촉 등의 혐의를 받고 있지만 아직 수사를 계속하고 있거나 재판을 막 시작하는 단계다. 사건의 시시비비가 명쾌하게 결론 나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최강욱 민주당 의원은 조국·정경심 부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의원직 상실의 형을 받고 대법원에 상고 중이지만 언제 판결이 날지 이제나저제나 할 뿐이다. 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국회의원이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의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은 찐 고구마 한 판을 김칫국도 없이 계속 먹는 일 만큼이나 답답하다.

대장동 비리 사건에서 터져 나온 ‘50억 클럽’ 연루자들은 일반인들의 의욕을 꺾는다. 전직 대통령의 비리(?)를 수사해 온 특별검사 박영수는 향응·뇌물·특혜를 받은 것이 드러났고, 대법관 출신 권순일은 재직 시절 재판 거래를 해 이재명의 정치적 목숨을 연명해 주었다는 추문에 휩싸인 것은 물론 그 대가로 돈과 자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상조차 못했던 최악의 부패 스캔들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외교·국방·경제 등 각 분야에서 위법한 행위를 한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그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가족과 얽힌 각종 의혹도 여전히 설왕설래만 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 ‘더티 하리’ 시리즈는 1970년대 형사 영화 붐을 일으킨 5부작이다. 두 번째 작품 ‘이것이 법이다’(1977)에서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하급 간부와 그의 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노조지부장은 재판을 받지만 악당들과 결탁한 변호사의 교묘한 왜곡 덕분에 ‘증거 부족’으로 무죄 선고를 받는다. 시민의 분노와 항의가 빗발치지만 당사자는 거만한 비웃음을 날릴 뿐이다. 세상이 제 손아귀에 있다고 콧방귀를 뀌던 그 순간 누군가가 그와 일당을 모조리 처단한다. 마약 밀수범·매춘 조직을 거느린 포주 등 도시범죄를 휘두르는 악당들도 차례로 쓰러진다. 악을 청소하는 집행자는 경찰국 내에 비밀조직을 만든 젊은 경찰관들이다.

네 번째 작품 ‘써든 임팩트’(1983)에서는 자신을 집단 성폭행한 범인들을 찾아서 차례로 처단하는 여성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법에 호소하려 해도 증거를 제출해야 하고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겪은 치욕의 순간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피해자는 2중·3중의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의지하고 싶은 법은 오히려 돈과 권력끼리 결탁해 범인을 지켜 주는 방패로 둔갑한다. 느슨하고 엉성한 법을 대신해 자신이 집행관 역할을 하는 이유다. 피해자가 범인들에게 사적 복수를 하는 상황을 인정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미국 테네시주 맥내리 카운티에서 악당들을 응징한 것으로 유명한 실존 인물 버포드 푸셔를 모델로 한 ‘워킹톨(1973·2004년 리메이크)이나 찰스 브론슨 주연의 ‘추방객’(1977)도 사적 응징을 다룬 영화다.

이들 영화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전제는 ‘믿을 수 없는 법’과 그래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명제의 갈등이다. 정의로운 경찰·군인·보안관·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더라도 판결을 내리는 것은 법원이다. 법 절차에 해결을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서양에는 ‘로빈 후드’가 있고, 한국에는 ‘임꺽정’이나 ‘홍길동’이 있다. 그들이 실존 인물인가 가공의 존재인가를 떠나 어지러운 세상을 밝히는 영웅이 되어 민중의 지지를 받는 것은, 현실은 공정하지 않으며 정의롭지도 않다는 방증이다. 영화가 그리는 공정한 세상은 실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염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