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주 
울산 
)
국보와 보물은 과거의 유물이기 전에 당대의 훌륭한 미술품이었다. 신윤복과 정선의 그림, 고려의 청자, 조선의 달항아리는 당시 최첨단을 달리는 예술품이었다. 과거의 작품이 지금 국보가 되듯 현대의 작품이 미래의 국보가 될 수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박수근, 이중섭, 변시지의 작품이 먼 훗날 국보와 보물로 지정될 수도 있고 어느 무명 예술가의 작품이 국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민족·우리 국민의 영혼을 담은 작품성이 인정된다면 그 작품은 국보와 보물로서 보전가치와 향유의 가치를 동시에 인정받은 것이다. 현재 지정된 315점의 국보와 1785점의 보물은 우리 시대 뿐 아니라 후대에 전승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전승이 단지 보존에만 국한된다면 국보와 보물에 서린 정신을 함께 공유한다는 국보 지정의 의미는 상실하기 쉽다. 국보 지정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북한과 일본 등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특별히 우리처럼 국보 관리 체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건축물을 보호하는 차원이거나 미술공예품을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하는 정도다. 그래도 구미 특히 유럽인들의 예술품 사랑은 대단하다. 우리 민족은 대대로 문화대국의 면모를 갖춰왔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안타깝게도 상당수 유산들이 소실되고 말았다. 국보와 보물은 잃어버린 고도의 우리 문화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흔적들이다. 그렇기에 소장파 역사학자들은 국보와 보물이 공유되고 향유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국보와 보물이 개인과 법인의 소유로 있다. 우리 민족과 국민의 영혼을 담은 국보와 보물이 개인과 법인으로 소유로만 그쳐야 될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스카이데일리가 ‘국보의 사적소유 과연 정당한가’ 시리즈의 마지막 3편으로 국보와 보물의 ‘강제 국유화’ 논의와 함께 해외 사례와 대안을 보도한다. 
|
▲ 국보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 서려있는 미술품이다. 국보가 세계인이 인정하는 보편적 아름다움을 얻으려면 공유라는 정신 속에서 일반에 개방돼야 한다. 사진 위로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국보 74호 청자 오리모양 연적(간송박물관), 국보 169호 청자 양각죽절문 병(삼성미술관 리움), 국보 222호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호림박물관). <사진=문화재청>
미술관과 박물관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세계 3대 미술관·박물관으로 불리는 루브르 미술관, 대영박물관, 에르미타주 박물관 등은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문화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3대 미술관·박물관은 편의상 나눈 기준일 뿐이다. 3곳 이외에도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미국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 대만 박물관, 구겐하임 미술관 등 세계에는 각자의 특색을 갖춘 미술관·박물관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박물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박물관은 그 나라 문화수준의 척도
통상 미술관·박물관은 매입·기증 등을 통해 예술품을 소장한다. 하지만 영국·프랑스 같이 과거 식민지를 거느렸던 제국들은 정상적인 절차가 아닌 약탈을 통해 예술품을 수집하는 경우가 많았다.
루브르 박물관은 나폴레옹이 수많은 원정 전쟁 중에 챙겨온 작품들이 미술관의 기반이 됐다. 루브르 미술관은 일주일의 시간을 할애해도 전부 감상하기 힘들 정도로 작품이 다량 소장돼 있다. 전시공간을 찾지 못한 작품이 전시된 작품의 다섯 배라는 소문도 있다.
흔히 대영박물관으로 불리는 영국박물관에는 과거 대영제국 시절의 영국이 아프리카·아시아의 수많은 식민지로부터 약탈한 문화재가 다수 포함돼 있다. 영국박물관은 세계 최대의 인류문화사 자료를 수집해 놓은 박물관으로 평가받는다. 이곳은 기부와 식민지 시대의 약탈로 이뤄진 ‘인류문화박물관’으로 불린다. 이곳에는 한국과 관련 있는 소장품이 250여개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스카이데일리가 간송미술관·삼성미술관 리움·호암박물관을 운영하는 간송미술문화재단, 삼성문화재단, 성보문화재단 측에 국보·보물에 관해 정보 공개를 요청했다. 국가기증, 전시현황, 비공개 목록, 비공개 사유, 보험가격 등의 정보 공개를 요청했으나 3개 재단 모두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사진 위부터 간송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호암박물관. ⓒ스카이데일리
한국의 미술관·박물관 역시 기증과 매입을 통해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국내 3대 사설 미술관·박물관으로 불리는 간송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호림박물관 등은 해당 재단이나 관련 개인이 보유한 국보와 보물을 관리·전시하고 있다. 국립 미술관·박물관도 기증과 매입을 통해 예술품을 소장한다. 즉 국가 소유의 국보와 보물의 보유를 늘리려면 기증과 매입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스카이데일리는 국보 시리즈 취재과정에서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보·보물에 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두 기관에 따르면 최근 국보와 보물을 매입하거나 기증받은 적은 사례는 없었다. 국보와 보물을 다수 관리하는 3대 사설 미술관·박물관이 국가기관에 기증의사를 밝혀온 적도 없었다고 한다.
얼마전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보급 문화재 한 점을 기증받았다. 지난 15일 국립중앙박물관은 (사)국립중앙박물관회로부터 기증받은 국보급 문화재 고려 ‘나전경함’을 공개하고 있다. 고려 후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나전경함은 각 면의 모서리가 부드럽게 처리된 고려 나전칠기의 특징을 잘 나타냈다.
이 나전경함은 세계적으로 9점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는 지금까지 한 점도 전해지지 않았다.
▲ 지난 15일 국립중앙박물관은 사단법인 국립중앙박물관회로부터 기증받은 국보급 문화재 고려 ‘나전경함’(사진)을 공개했다. 나전경함은 전세계에 단 아홉 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시스>
사단법인 국립중앙박물관회는 국립중앙박물관을 후원하며 박물관 사업을 돕는 단체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단체 회장을 맡고 있으며 회원은 약 3000여명이다.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등이 주요 회원이다.
스카이데일리는 3대 사설 미술관·박물관을 운영하는 간송미술문화재단, 삼성문화재단, 성보문화재단 측에 국보·보물에 관해 정보 공개를 요청했다. 국가기증에 대한 의사도 있는지 문의했으나 3개 미술관·박물관 측은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또 3대 미술관이 보유한 국보 및 보물의 전시현황, 비공개 목록, 비공개 사유 등에 대한 답변을 3개 재단 측에 요청했다. 아울러 국보 및 보물이 가입된 보험에 대해도 추가적으로 문의했다. 하지만 3개 재단 모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국보 국유화, 찬성 VS 반대 엇갈려…기금 마련 대안도 나와
스카이데일리는 국보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미술사학자, 연구자, 출판 편집자 등을 인터뷰했다. 국보의 국유화에 대해 찬성의견과 반대의견이 나와 팽팽하게 맞섰다. 기본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고 전혀 다른 의견도 제시됐다. 특히 한국 고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강우방 원장과 윤범모 교수의 제언은 귀기울여 들어야할 중요성이 있었다.
▲ 자료: 문화재청 ⓒ스카이데일리
국립경주박물관장을 지냈던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은 “개인이 소유한 국보·보물에 대해서 현재로써는 국가가 어쩔 도리가 없다. 개인들이 관리를 잘 하고 있다”며 “국보·보물의 국가 소유 전환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방법이 있다면 국가가 매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천문학적 액수의 금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 원장은 “개인이 기부하면 좋겠지만 기부는 전적으로 개인의 의사다”며 “매입이건 기증이건 간에 국보·보물을 향유하려면 우선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우선이다. 관심이 너무 부족하다. 언론조차 이에 관심을 쏟지 않는다. 과거 여럿 있던 문화재 전문 기자는 현재 드문 상황이다”고 개탄했다.
윤범모 가천대학교 회화과 교수는 “한국은 타국의 유물을 우리 국민이 소유하고 있어도 국보나 보물로 지정하지 않는 편이다”며 “일본의 경우 오랜 시간 개인이나 국가가 타국의 유물을 소유하고 있으면 문화재로 지정해 자국의 것으로 만든다. 우리 것이나 다름없는 유물에 대해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많은 유물을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교수는 “국가의 문화재 구입비가 너무 적다. 몇 십억원의 금액으로는 무엇 하나 제대로 매입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매입비용을 크게 늘려야 한다”며 “외국에 있는 중요 문화재 환수에도 국가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힘들면 외국 현지에서라도 전시해서 누구나 관람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자료: 문화재청 ⓒ스카이데일리
한 소장파 학자는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기증을 강제하고 싶다”며 “국보가 마구잡이로 사유화된 현실이 너무 개탄스럽다”고 토로했다. 그는 국보 사유화를 인정하려면 무엇 하러 국보를 지정하는 모르겠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보·보물 매입을 위해 기금을 마련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고미술계 관계자는 “국회에서 예산편성을 증액하는 게 안정적인 재원마련 방법이지만 현재의 국회에서 그런 움직임은 볼 수 없다”며 “뜻있는 문화계 인사들이 예술기금을 조성하는 방법이 국회예산편성보다 현실적으로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구매·국가기증으로 운영되는 런던 국립박물관, 국보 국유화의 모델
실제로 외국의 경우 예술기금을 마련해 예술품을 매입하는 경우는 흔하게 있다. 특히 런던 국립미술관은 우수한 미술품을 기증받거나 매입해 국보 국가 기증에 있어 모델이 되고 있다.
런던 국립미술관은 1824년에 개관해 약 19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연면적 4만6396㎡로 축구 경기장 6개 규모다. 이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유럽의 그림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세에서 20세기 초까지 그려진 약 2300점의 회화를 소장했다.
미술관은 티치아노, 모네,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반 고흐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시기상으로는 중세 후기부터 르네상스까지, 지역별로는 이탈리아부터 프랑스 인상주의자까지 다양한 유럽의 회화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보나 보물에 해당하는 작품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모든 작품은 한번씩 전시를 거쳤다.
런던 국립미술관이 다른 국제 미술관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왕실 소장품이거나 약탈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증품을 바탕으로 건립됐다는 점이다. 1824년 한 은행가의 수집품을 구매하는 것을 계기로 기증과 매입을 시작했다. 은행가는 렘브란트, 반 다이크 등의 작품을 미술관에 팔기로 했고 당시 영국 하원은 38점의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6만 파운드의 예산을 표결에 부쳤고 이를 사들였다고 한다.
▲ 190년 역사의 런던 국립미술관(사진)은 기증과 구매의 전통을 살려 소장품을 늘리고 있다. 1826년 예술품 수집가 조지 부몬트가 렘브란트, 루벤스 등 대가의 작품을 런던 국립미술관에 기증하며 그 전통이 시작됐다. 니콜라스 페니 런던 국립미술관장은 국가 기증을 통해 새로운 소장품이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런던 국립미술관>
1826년 한 예술품 수집가가 개인 소장품을 미술관에 기증한 데 이어 개인기증과 자금 후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구매와 기증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니콜라스 페니 런던 국립미술관장은 “우리 미술관은 구매, 대여, 국가 기증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들여와 소장품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며 “우리는 국가가 보유한 미술 작품을 미래 세대를 위해 보전·관리하고 일반인들에게 무료 관람하도록 한 초창기 목표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또 미술관은 기본 구입 예산 뿐 아니라 문화유산복권기금, 예술기금, 독지가들의 후원 등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재원마련에 힘쓰고 있다.
국보의 보편적 아름다움은 공유와 기증에서 시작
우리에게는 315점의 국보와 1785점의 보물을 후대에 전승할 의무가 있다. 전승을 하면서 보존에만 얽매인다면 국보와 보물에 서린 정신을 함께 공유하자는 국보 지정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게 국민들의 일반 정서다.
실제 공유돼지 않는 국보는 단지 가보일 뿐인 것으로 전락한다.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영혼에 재산가치를 부여한 골동품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것들이 진정한 국보와 보물이 되려면 온 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공유’의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따라서 공동체의 선을 우선하는 공유의 정신이 있어야 기증이 가능해 진다. 그렇지 않다면 국보는 번호로 지정된 유물에 불과하며 국가보조금을 타내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뜻있는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국보와 보물은 기본적으로 미(美), 아름다음을 지녔다. 가보가 몇몇 개인에게만 허락된 특수한 아름다움이라면 국보·보물은 공동체에 열린 보편적 아름다움을 지녔다. 국보와 보물이 보편적 아름다움을 획득하려면 공유의 정신과 기증이 우선돼야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