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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은 죽게 되어 있다. 죽음은 결과일 뿐 목적은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죽기 위해 태어나는 존재가 있다. 생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바로 식물의 열매다.
열매는 새나 짐승의 먹이가 되기 위해 태어난다.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열매는 탐스러운 외모와 달콤한 향기로써 짐승을 유혹한다. 그리고 기꺼이 먹힌다. 짐승은 그 대가로 씨앗을 널리 퍼뜨려 준다. 모든 과정은 자연스럽다. 동물이 열매를 향유하는 것도, 식물이 동물을 이용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도….
원시 시대의 성인식은 과육의 죽음을 닮아 있다. 고통-죽음-부활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낡은 자아를 버리고 성숙한 인간으로 재탄생되기 위한 절차다. 모든 고통은 의미 있으며 죽음은 새로워지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성인식을 통과의례라고 한다.
멕시코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는 죽기 직전 ‘인생 만세’라는 작품을 남겼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수박이다. 철철 흘러넘치는 붉은 과즙 사이로 씨앗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붉은 과즙이 죽음을 뜻한다면 씨앗은 생명을 의미한다.
칼로는 자신의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칼로는 사는 동안 갖은 질병과 사고로 고통받았다. 7차례의 척추 수술을 포함해 총 32회의 외과 수술을 받았다. ‘인생 만세’는 고통스러운 삶을 잘 견딘 자신에게 보내는 찬사다. 일기장 속 ‘행복한 외출’은 죽음을 뜻한다. 칼로는 고통으로 점철된 생을 떠나며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열매가 파괴를 통해 완성된다면 인간은 성인식을 통해 완성된다. 몸과 마음의 파괴를 경험하면서 인간은 어른이 된다. 파괴가 없다면 새 삶도, 나은 삶도, 다른 삶도 없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파괴와 재생이 한데 들어 있기 때문이다. 칼로의 수박 그림은 다음 생을 암시하는 게 아니라 인생이 단 회에 완성됨을 뜻한다. 인간은 한 번만 산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것은 별개의 생이다. 사는 동안 파괴-재생의 사이클을 잘 이용할 일이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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