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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데이의 광풍이 지나고 화이트데이의 훈풍이 몰려오고 있다. 화이트데이는 나중에 만들어진 거라 그런지 발렌타인데이보다는 파괴력이 약한 듯하다.
발렌타인데이가 성 발렌티누스 축일에서 비롯된 족보 있는 기념일이라면 화이트데이는 일본에서 시작된 신명절이다. 전국사탕과자공업협동조합(全國飴菓子工業協同組合)이 일본 내 사탕의 재고 정리를 위해 1978년 고안해 낸 상업적 기념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조합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버젓이 화이트데이의 유래가 적혀 있다.
“3세기 발렌티누스 신부는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선포한 ‘연애 금지령’을 어긴 커플을 축복해 주다가 사형을 당했다. 이를 기념한 것이 2월14일 성 발렌타인데이다. 그리고 한 달 후인 3월14일 두 남녀는 다시 만나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는데 이날을 기념한 것이 ‘화이트데이’다.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 사람들이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물론 거짓말이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선 화이트데이를 기념하지 않는다. 특히 서구 유럽은 3~4월에 기독교 최대 명절인 부활절이 있어 그날 부활절 초콜릿을 주고받기 때문에 굳이 3월14일을 기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거짓말은 그렇다 치고 조합 측이 내건 화이트데이의 유래란 게 빈약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다. 발렌타인데이 스토리에 한두 줄 덧붙여 놓고 화이트데이의 유래라고 우기다니…. 이왕 거짓말하는 거 좀 더 그럴듯하게 포장할 순 없었을까?
“거짓말인 거 다 아는 데 뭐 하러 거짓말에 공을 들임?”
이런 태도랄까. 한국 같았으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허접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텔링을 나무랐을 것이다. 그런데 꼼꼼하고 철저한 것으로 소문난 일본인은 정작 남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나는 네가 초코 사탕해(나는 네가 좋고 사랑해)!”
퇴근길 편의점 현수막이 소비를 부추긴다. 뭐래도 좋다. 북한에는 발렌타인데이도 화이트데이도 없다는데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 삭막함보다는 그래도 달달한 거 몇 개라도 주고받는 훈훈함이 낫지 않은가.
점심 한 끼로 1만 원 넘게 지불하고 테이크아웃 커피로 꼭 입가심을 하는 한국인이 초콜릿 몇 개 사탕 몇 알 갖고 자본주의 상술 어쩌고 하는 것도 우습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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