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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우순 칼럼니스트
우리나라는 ‘저비용 고효율’의 보건의료체계를 확립해 왔다. 2009년 기준 국민의료비 비율이 GDP의 6.9%(OECD 평균 9.5%) 수준으로 OECD 34개국 중 32번째다. 임금소득대비 건강보험료율도 2011년 기준 5.64%로 대만(8.9%), 일본(10.0%), 프랑스(2010년 13.6%), 독일(2010년 14.9%)에 비해 아주 낮다. 그럼에도 국민의 건강지표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2008년 기준 기대수명은 79.9세(OECD 평균 79.4세), 영아사망률은 1,000명 당 3.5명(OECD 평균 4.4명)으로 나타났다. 전국민 대상 보편적 의료보장제도를 실행해 의료의 접근성도 크게 향상시켰다. 국민건강보험 적용 인구 비율이 2010년 현재 98.1%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를 성공 사례로 언급했을 정도다.
최근 ‘저부담 고효율’의 보건의료체계를 지속하기 힘들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원인은 ‘저출산 고령화’다. 경제 인구는 줄어들어드는데 고령사회(65세 노인인구가 14%)가 6년(2018년) 목전에 다가와 있다. 국민의료비의 폭발적 증가가 더욱 가속화될 상황이지만 필요 재원의 확충은 고사하고 오히려 줄어들 비상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문제는 의료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추가 지불의사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 정부(보건의료미래위원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60% 이상의 국민들이 건강보험료를 현재 수준으로 묶거나 오히려 10~20% 낮춰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이율배반적으로 58.2%인 보장성 수준(국민의료비의 공적 재원 비율, 일본 : 80.8, 프랑스 : 77.9, 독일 : 76.9%)을 10% 이상 더욱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보건의료정책을 실행하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를 짐작케 한다. 바로 의료체계의 한 축인 의료공급자다. 재원을 확충할 길이 없다면 공급을 통제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2002년부터 2010년 사이 평균 진료수가 인상률을 2%로 통제해 왔지만 말이다. 의료계 역시 정부의 움직임을 이미 감지하고 정부와의 일전을 각오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25일 의협회장 선거에서 의료계 선거인단 58.7%는 선택분업 추진,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진료수가 현실화를 내세운 투사 이미지의 노환규 후보에게 지지표를 던졌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지만 ‘지금 의료계에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상통하고 있었음을 확인케 해준다.
달팽이와 거북이, 그리고 경찰의 입장
「달팽이가 길을 가다가 거북이에게 강도를 당했다. 경찰이 출동해 범인의 생김새를 묻자 달팽이 왈, “글쎄요 워낙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서...”」그렇기도 하겠다. 달팽이 입장에서는 사물의 이동과 운동이 사람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빠른 템포로 진행될 테니까. 심지어 달팽이와 사람 간에는 다음과 같은 인지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초인종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없고 달팽이 한 마리가 초인종 위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 달팽이를 떼어 잔디밭에 던지고 돌아왔다. 그런데 1년 뒤 다시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웬 달팽이 한 마리가 초인종에 붙어 “당신 조금 전에 나에게 무슨 짓을 했어?”하며 항의하더라고」
이처럼 각각의 생물체는 저마다의 인식체계를 바탕으로 세계를 전혀 다르게 인지한다. 파리는 전등불과 음식을 하나의 같은 대상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나머지 관심 없는 사물들은 모두 하나의 장애물일 따름이다. 개는 먹을 수 있는 음식, 앉을 수 있는 의자를 각각 구분하고 그 밖의 모든 것은 단지 하나의 똑같은 장애물로 파악할 뿐이다. 인간만이 전등불, 음식, 음료, 의자, 소파, 책꽂이, 옷장, 책상, 벽, 그림 등을 각각 구분할 수 있다. 이는 외부 세계로부터 받아들인 정보를 생물체 자신의 고유한 작동에 의해 구성한 다음 그것을 외부 세계에 다시 부여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지불제도의 개편의 향방
건강보험의 지불제도는 보건의료정책의 핵심이다. 국민의 의료이용 행태와 건강보험의 보장성, 그리고 의료기술의 발전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행위별 수가제(FSS, Fee For Service)를 적용해 왔다. 보험자가 의료서비스 행위 단위별로 비용(급여)을 보상하는 체계이다. 이는 신의료기술의 도입 등에 유리한 제도다. 실제로 이 제도는 공급자의 의료서비스 총량 확대를 유도해 국민의 의료접근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신규기술 유입을 촉진시켜 의료기술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행위별 수가제는 이제 의료 제공량 증가, 의료자원 과잉투자, 비급여서비스 확대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보험자인 정부는 그동안 의료공급량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진료비 심사기준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 공급자는 보험자의 심사기준 강화가 의료기술의 발전과 의료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보험자에 맞서 왔다. 건강보험의 재원이 부족해질수록 이들의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정부는 지불제도 개편의지를 다지며 행위별 수가제를 포괄 수가제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 포괄수가제는 질병군(DRG, Diagnosis Related Group)에 따라 미리 정해진 일정액의 진료비를 지불하는 제도로 불필요한 서비스 남용을 줄이는 장점이 있다. 이미 2002년부터 시험 적용되고 있는 7개 질병군에 대한 포괄수가제가 2015년까지 모든 병원으로 확대 실시될 계획이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참여율 저조, 의료기술 발전을 위한 유인 부족, 중증환자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벌서부터 나오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위해 정부는 포괄수가에 초과입원일수, 특정 진료비 등을 추가로 보상하도록 설계한 신포괄수가제도를 시범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2011년 7월부터 시작된 3차 시범사업은 총 553개 질병군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소위 ‘붕어빵 진료’로 명명하는 포괄수가제에 대한 의료계의 거부감이 너무 크다. 올 7월부터 의원․병원급에 대한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 당연 적용에 대해서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수준 높은 의료혜택을 기대하지만 비용은 더 지불할 수 없다는 의료소비자, 환자 치료를 위해 의료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의료기술을 발전시켜야 할 의료공급자, 이 속에서 지속가능한 의료보장체계를 재설계해야 할 정부가 인식차가 달팽이와 거북이, 달팽이와 사람 간의 인지의 차이만큼이나 커 보인다. 그럴수록 우리나라 보건의료현실에 대한 각 주체의 인식의 차이를 서로 인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보험자(정부)와 의료소비자 그리고 의료공급자들이 협의에 나서 최상의 지불제도 개편안을 마련하는데 있어 스스로 감내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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