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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우순 의약전문 칼럼니스트
“세상에 이런 꽃 이름도 있나?” 얼마 전 화분에 담긴 작은 나무를 보고 나서였다. ‘미스김 라일락’. 화원 주인장이 장난삼아 쓴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공인된 명명법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획 스쳤다. 그런데 빗나간 직감이었다.
“꽃봉오리가 맺힐 때는 진보라색에서 점점 라벤다색으로 변하며 만개 시에는 하얀색으로 변하고 매혹적인 향을 낸다” 위키피디아에서는 ‘미스김 라일락’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물푸레나뭇과 수수꽃다리속에 속하며 1970년대에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역수입되었다고 적혀 있다. 미 군정시절 식물 채집가 미더(Elwin M. Meader)가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라일락 종자를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한 품종이란다. 식물자료 정리를 도왔던 한국인 타이피스트 미스 김의 성을 따서 붙였다 한다.
세계 어느 라일락 종보다 진한 향과 아름다움을 뽐낸다는 이 꽃을 볼 때마다 유행가를 읊조리곤 한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 잊을 수 없는 기억에 /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안고 /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이영훈이 작사·작곡하고 이문세가 노래를 불러 히트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의 첫 소절이다. 미스김 라일락은 이영훈씨 만큼이나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을 안은’ 수수꽃다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나고야 의정서와 생물유전자원 발굴
제약업계는 최근 나고야 의정서에 주목하고 있다. 2010년 10월 채택된 이 국제협약은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 공유에 대한 국제적인 강제 이행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 의정서가 발효되면 생물(동·식물, 미생물 포함)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나라는 유전자원 제공 국가에 미리 통보해 승인을 받아야 하며, 해당 유전자원을 이용해서 얻은 이익(금전적·비금전적 이익 포함)은 상호 합의된 계약조건에 따라 배분해야 한다.
또 각종 생물 유전자원에 대한 전통지식 역시 국가가 지식자산으로서의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특정 국가의 전통지식을 이용해 특정 외국 기업이 신약을 개발했을 경우 그 이익을 그 지역민과 공유해야 한다. 이에 대비해 우리 정부는 지난 2월 1일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 13년 2월 2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또한 10만여 종의 국내 생물 유전자원을 발굴하고 자원 이용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나고야의정서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최재천 교수에 따르면, 몬순기후와 반도라는 지형 덕에 우리나라의 생물다양성은 면적에 비해 퍽 높은 편이라고 한다. 개미만 보더라도 남한에만 135종이 살고 있는데, 이는 영국이나 핀란드의 세 배나 되는 다양성이라고 한다. 그는 남의 생물자원을 부러워하고 로열티 낼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생물자원을 잘 지켜내는 일이 더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제약업계, 천연물신약 특허등록 및 개발 열기
제약업계가 최근 우리 생물자원에 대한 특허등록은 물론 해외 지식재산권 확보를 위한 준비에도 열을 올리고 있어 다행이다. 특허청 발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천연물신약과 관련된 특허등록은 2488건 중 내국인 등록이 2267건으로 91.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국인의 국제특허출원(PCT)중에서도 천연물신약관련 출원은 328건으로 전체 의약관련 국제특허출원(1,009건)의 24 %에 이른다고 한다.
제약업계가 잇따라 일궈 내고 있는 천연물신약의 상업적 성공은 우리나라의 생물자원 발굴, 이용, DB구축에 속도감을 더해 줄 것이다. 꿀풀, 하눌타리에서 원료를 추출한 생약복합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정(SK 케미칼)’은 누적 매출액 1천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쑥에서 원료를 추출한 위염 치료제 ‘스티렌정(동아제약)’은 누적 매출액이 3천억 원을 넘어섰다. 최근 개발된 기관지염 치료제 시네추라시럽(안국약품)은 담쟁이덩굴에서, 소화불량 치료제 모티리톤정(동아제약)은 나팔꽃이라는 우리에게 친근한 자생식물에서 원료를 추출한 천연물신약이다. 골관절염 치료제 신바로캡슐(녹십자)의 주성분은 한약재로 쓰이는 우슬과 방풍이다. 환인제약은 국내 최초로 참당귀를 기원으로 한 치매치료 천연물신약인 'INM-176'에 대한 임상을 종료하고 허가신청 단계에 있다.
천연물신약 전문회사 슈바베가 준 교훈
독일은 천연물신약 개발에 가장 앞서가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최근 독일의 천연물 신약 전문회사로 유명한 슈바베사가 국내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슈바베사 제품 움카민과 국내 제약사가 생산한 움카민 제네릭과의 약효비교 결과를 발표해 많은 논란을 일으킨 심포지엄이었다. 그러나 약효비교와 별개로 슈바베 사가 얼마나 철저하게 천연물신약의 데이터와 해당 제품을 관리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심포지엄이기도 했다.
특히 “움카민은 ‘펠라고니움 시도이데스’라는 뿌리에서 추출한 생약제제다. 그러나 국내 제네릭 제품의 분석 결과 확정할 수는 없지만 종은 같지만 다른 류 생물인 ‘펠라고니움 레니포룸’과 비슷한 순도를 보였다”던지, “생약제제는 원료로 사용되는 식물의 생산지와 재배조건 및 추출 방법에 따라 유효성분의 Finger print가 다르기 때문에 약효와 부작용 또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는 등의 주장에는 그들이 다년간 축적한 천연물 신약 개발 노하우와 관련 정보 데이터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해 주었다.
이처럼 천연물신약 개발의 한 단면만 보더라도, 우리는 더 이상 ‘미스김 라일락’ 꼴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할 단계에 와 있지 못하다. 특히 천연물신약은 복수의 식물 추출물을 혼합하는 경우가 많아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침해 우려가 높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용도특허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합성신약과 같이 원료물질 자체의 물질특허라는 강력한 특허권을 보유하는 것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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