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소득까지 담보로 끌어다 ‘빚’ 내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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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I 규제 완화로 되레 악성부채 양산 우려

손채윤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2-08-20 01:33:35

금융위원회는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지난 2005년 도입된 총부채상환비율(DTI)의 규제 보완방안을 마련했다고 최근 밝혔다.

금융당국 발표에 따르면 40세 미만 무주택 직장인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10년 뒤 예상소득’ 까지 반영해 DTI를 적용키로 했다.

DTI는 연간 소득 중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즉 주택담보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과 기타 다른 부채의 연간 이자상환액을 합한 총액이 연간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따라서 이 수치가 낮을수록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이번 조치로 현재 소득이 아닌 ‘10년 뒤 예상소득’으로 계산을 하게 되면 DTI 비율은 그대로여도 대출가능액은 많아지게 된다.

예를 들어 연봉 3600만원(월 300만원)을 받는 35세의 무주택 근로자가 현재 DTI 50%를 적용받는 서울에서 집을 산다고 가정하자.

현재의 DTI를 적용할 경우 20년 만기, 연 5% 이율 조건으로 2억24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처럼 미래소득까지 반영을 한 DTI로 계산을 하면 대출가능액은 2억6000만원으로 15.9% 많아진다. 현재 소득 3600만원 대신 10년 뒤 예상소득인 4172만원(31.8% 증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가 이처럼 DTI 규제를 완화한 것은 침체된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의 예측대로 직장인의 미래소득까지 반영할 경우 부동산 구매여력이 높아져 일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미래소득을 전제로 한 대출 희망자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회의적 반응이 지배적이다.

먼저 이번 조치가 주택시장 활성화로 연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주 수요층인 40~50대가 대상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실수요자가 빠진 상태에서 실제 주택거래량이 증가할지 의문이다.

또 이번 조치로 혜택을 받는 20~30대 무주택 직장인의 수가 정부가 기대한 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보도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는 20~30대 무주택 정규직 근로자는 100명에 4명꼴로 추정됐다. 또 20~30대가 가계대출에서 잔액 기준으로는 21.4%, 대출자 기준으로는 35.7%를 차지해 대출을 더 늘릴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소득이 늘지 않고 있는데 돈을 더 빌려준다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누가 집을 살지 의문이 든다.

더 큰 문제는 지금도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더 빚을 내줘 집값을 떠받치는 정책이 옳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경제가 이른 시기에 회복되지 않으면 늘어난 대출 한도만큼 악성부채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며, 이로 인한 경제적 충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경기불황으로 예상대로 소득이 오르지 못하고 되레 낮아진다면 DTI 기준은 종전보다 더 낮아질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부동산 경기가 더 악화되면 추가로 늘어난 대출은 악성부채가 될 것임은 명약관화다.

결국 대출상환이 어렵게 돼 가치가 떨어진 보유자산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래의 가상소득을 기준으로 빚을 내주는 것이 바람직한지 당국은 판단해야 한다.

대출자가 예상대로 벌 수 있을지 불분명한데다 소득이 줄어들면 결국 갚을 수 없는 미래의 빚을 떠 안게 돼 사회안전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한 부동산정보업체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위해 소요되는 기간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모아도 12년이나 걸린다. 한 푼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달린 만큼 12년이라는 기간도 실현가능성이 없다.

내집 마련기간이 좀처럼 줄지 않고 늘어나는 것은 소득대비 집값이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이번에 당국은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목표로 DTI 완화를 들고 나왔지만 가계소득대비 집값이 여전히 높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아파트든 자동차든 그것이 안 팔리면 가격은 떨어지는 게 맞다. 부동산 대출규제를 풀어서 주택가격을 억지로 떠 받치는 정책은 시장경제를 왜곡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것도 불분명한 미래소득을 담보로 부채를 발생시켜 부동산 가격을 떠 받들어 거품이 커지는 것을 막지 못해 결국 터지게 되면 우리 경제는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