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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황지우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생존의 시대…인간 못돼도 괴물은 되지 않아야

벌거벗은 삶의 허무함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공허함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7-04-15 15:45:02

 ▲ 문화평론가 정현 ⓒ스카이데일리
“삶에 대한 상기, 그것에 의해 요즘 나는 살아 있습니다. 비참할 정도로 나는 편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이빨 닦고 세수하고 식탁에 앉아서 아침밥 먹고 물로 입 안을 헹궜지요”
 
‘삶에 대한 상기’와 그 ‘비참함’을 말하는 황지우의 이 독백적 시는 1990년대 중반에 쓰여졌다. 이 시에서 ‘삶’이라는 단어에 가장 잘 부합하는 다른 단어는 ‘생존’이다. 생물학적 몸 덩어리로 숨만 쉬며 생존하는 것과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시가 발표되고 나서 얼마 후 한국에는 IMF 구제금융의 위기가 찾아온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낭만적으로 묘사된 공동체적 삶은 간데없고, 구조조정의 칼바람과 취업경쟁의 절박한 몸부림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생존이라는 단어는 이제 한국사회의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는 다양한 분야서 인용된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우리가 인간은 못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
 
생존의 절벽 앞에서 더 이상 인간답게 살기 힘들어진 시대, 살아남는 것만 향해 달려야 하는 정글의 자연법칙이 삶을 지배하는 사회가 시작된다.
 
시인 황지우는 어떤 무기력감에 빠진다. 80년대에는 본인이 시대에 저항하는 투사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90년대로 들어서며 시인은 힘없이 부풀기만 하는 자기 몸을 보며 어떤 소외감을 느낀다. ‘거품 의자’를 떠올리기도 하는 ‘소파’의 이미지는 무력감에 빠진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후 그는 어디로 나아가야 했을까.
 
격렬했던 삶과 소통의 열정
 
시인이 처음 문단에 등장한 것은 80년대 초반이다.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로 문단의 주목을 크게 끈 시인은 실험적 시로 당대 문학에 큰 충격을 준다. 이 시집에 실린 ‘묵념, 5분 27초’ 시는 제목만 있고, 본문은 완전히 여백으로 채워진 시였다.
 
1980년대 초 다수의 대학생들은 5월 광주를 시대의 상장처럼 떠올렸다. 시인도 시 쓰기의 근원에 5월 광주의 기억을 안고 있었다. 5월 27일은 광주가 군에 의해 함락된 날이다. 시인은 죽음 앞에 묵념을 하는데, 그 묵념이 정확히 무엇에 대한 묵념인지를 시에서 밝히지 않고 있다.
 
제목으로만 던져진 ‘5분 27초’라는 암시는 5월 27일의 충격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하지만 당시는 누구도 오월 광주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못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시인은 광주를 직접 지시하기보다 여백으로, 혹은 침묵으로 광주에 대한 고통을 표현하고자 한다.
 
무언가가 말해질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80년대 초에 오월 광주는 말해질 수 없는 것이었고(말하고자 할 때 처벌을 감수해야 했고), 시인은 그 말해질 수 없는 상황을 우회적으로 피해가며 시대의 문제를 암시적으로 환기한다. 이러한 실험적 작법들은 당시 황지우의 시를 지배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해체 시인’ 혹은 ‘포스트모던 시인’이라고 명명했다.
 
기존의 시작법의 관례를 깨트렸던 그의 시는 동시대 시인들에게도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작법에서 새로움을 보기 이전에 먼저 그러한 시가 그에게 왜 필요했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인간과 인간이 온전히 소통하고, 모든 것을 원활하게 교감할 수 있다면, 복잡하고 우회적인 표현들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의 실험적 시들은 실험 없이는 소통할 수 없는 사회에 대한 반응으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공허함
 
그런데 분기점은 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나타난다. 어딘가 아픈 듯 시인은 지친 삶을 이야기하고, 불교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어느 날부터 시인의 관심은 조각미술에 휩쓸리기도 한다. 2000년대 초 한 강연에서 시인은 조각미술이 자신의 아픈 삶을 치유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90년대는 80년대의 3저 호황을 타고, 대중문화가 번성하고 중산층들이 아파트를 사들이며 사회의 한 축으로 부상한 때였다. 서태지가 나오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개성과 다양성 존중이 사회의 화두로 떠 오른 시대가 이때였다.
 
한국의 선진국 진입을 말하던 이때 놀랍게도 시인은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체험한다. 90년대 말, 마지막으로 발표한 이 시집의 표제가 된 시에서 그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보며 깊은 소외감을 호소한다.
 
“어느 날 나는 흐른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그 시의 첫 구문이다. 격렬했던 삶이 지나간 후 소파처럼 부풀어 오른 무기력한 삶과 마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시인의 자화상은 마치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반영하는 것만 같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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