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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자 김태규 칼럼니스트
그 무엇이든 완성된다는 것은 좋고 또 기쁜 일이지만, 그 완성됨을 그 이후로도 그냥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어쩌면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완성된다는 것은 실로 두려운 바가 있다.
사람은 다 이루어진 이후에 그냥 그곳에서 머물지 않고, 거기서 또 다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하기에 완성됨을 즐기고 누리지 못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삶과 운명을 연구해온 나는 삶에는 완성의 시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또 완성 이후의 시간을 우리는 희극보다는 悲劇(비극)에 더 가깝게 지내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하고 진지하게 장시간에 걸쳐 생각해보았더니 비슷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얻은 답은 이렇다.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욕망을 어느 선에서 그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아서 완성 이후의 시간은 비극으로 마무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욕망 중에 가장 원초적인 것은 식욕과 성욕이다.
여기에 아주 건강한 성욕에 굶주린 젊은이가 어느 날 맘껏 자신의 허기진 성욕을 채울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면 실로 즐거운 나날들을 보낸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일정한 한도와 양을 넘기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여건이 계속 허락한다면 그 젊은이는 이윽고 변태성욕자로 변해간다.
변태란 것은 몸은 이미 飽滿(포만)한 상태이나 정신은 여전히 굶주렸다는 강박 관념을 고집할 때 나타난다.
포만한 다음에도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는 우리의 정신은 계속해서 욕망을 채우라고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내 이 정도만 되어도 아무런 소망이 없겠다 여기던 어떤 사람이 정작 그 소망을 이루고 나면 그 정도는 아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이로서 어느 날 문득 불만에 휩싸이게 된다.
그 결과 또 다시 내 이 정도만 되면 만족한다고 다짐하면서 새롭게 목표를 설정한다. 몸은 포만해졌어도 정신은 포만의 상태를 거부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정신은 다시 새롭게 더 높은 상태로 달려가라고 강력한 명령을 발동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 인생에는 더 이상 소유하거나 누리면 아니 되는 상태, 즉 完成(완성)의 시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정신은 그 완성을 단연코 거부한다.
무슨 소리? 여기서 만족할 것 같으면 나는 시작하지도 않았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간단 없이 가차 없이 달려가고 올라가야해 하고 정신은 우리를 꼬드긴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사정없이 거세게 우리를 몰아붙인다.
(그런 면에서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리스’는 바로 우리 속에 깃든 정신 그 자체인 것을 알 수 있다. 악마가 달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악마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욕망에 찌든 세속적인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종교인이나 높은 정신세계를 향유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도 실은 동일하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무수한 종교전쟁이 그 단적인 예라 하겠다.
세속의 사람이나 높은 정신세계 혹은 종교계의 사람이나 ‘인간의 정신은 포만을 거부한다는 점’에 있어서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 내 솔직한 생각이다.
수백 년 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륙의 명나라 정벌을 목표로 험한 바다를 건너 조선을 침략했다. 일본을 다 거머쥐었으면 그로서 天下(천하)를 얻은 셈인데 왜 엉뚱한 짓을 벌렸던 것일까?
이 점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나름의 합리적 해석들을 제시한다. 통일한 이후에는 병력이 별로 필요 없으니 그들을 소모해야만 안정된 통치가 가능했다는 식의 해석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야 많지만 본질은 아주 간단하다. 도요토미의 정신 역시도 완성을 거부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완성 이후에 시작된 비극적인 일들은 먼 역사를 들춰낼 것 없이 최근에도 허다하며 우리 주변에도 무수히 존재한다. 내가 늘 보는 일들이다.
인생사의 모든 비극은 逆境(역경)에 있을 때가 아니라 완성된 이후의 일들인 경우가 더 일반적이니 참 그게 그렇다.
정주영 회장도 역시 그러하다. 열심히 사업해서 대한민국 제1의 부호가 되었다면 그로서 만족하고 누렸어야 할 일이었다. 정주영 회장의 인생 완성시점은 계동 사옥 집무실에 들어서던 1984 년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 회장의 정신은 만족과 포만을 거부했고 그로서 더 큰 일을 찾아나서야 했다. 그러던 중 1992 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엉뚱한 일이 있었던 것이고 실패한 이후 급격하게 시들고 말았던 것이다. 이는 본질에 있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엉뚱한 짓이나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名言(명언)을 남긴 정주영 회장이지만 그런 천하의 정주영 회장도 ‘성공해서 완성된 이후에 더 힘든 것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나는 ‘성공의 실패 또는 성공의 비극’이라 부른다. 사실 이는 ‘완성의 비극’이라 해야할 것이다.
인류사를 들여다보면 온통 이런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고 우리 주변 역시 예외가 드물다. 다름 아닌 우리 대한민국 자체가 지금 그런 길을 가고 있다.
지난번 올린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의 일, 이 역시 이 양반이 2000 년 무렵 맞이한 완성의 시점을 지난 뒤의 무리한 사업시도가 실패로 끝난 스토리였을 뿐이다.
글로벌 전자기업의 신화를 창출한 삼성의 이건희 회장 역시 2016-2017 년이면 완성의 시점을 본다.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 역시 2014-2015 년이 완성의 시점이다.
냉철하게 말한다면 그 이후는 그냥 즐기거나 아니면 새로운 경영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완성된 자는 그 자리에 잠시 머물다가 물러나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을까? 아마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려주고 제2선으로 빠지고 싶다 해도 그게 어려운 이유가 있다. 그간의 무수한 경험과 경영상의 노하우, 어려운 역경을 넘어온 관록이 있는 사람들인지라 그들의 눈에 그 어떤 누구도 미흡하고 못마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은 내가 할 일이 있고 역할이 있다’는 말이 분명 나올 것이고 이에 그간의 총애를 받던 부하 직원들은 당연히 그렇게 하시라고 충언(?)을 할 것이니 그렇다.
은퇴했든 사람이 복귀할 때 흔히 ‘아직 다 하지 못한 역할이 있고 일이 있어서’ 라는 복귀의 변을 많이 듣게 된다. 하지만 그 역시 포만을 거부하는 우리의 정신이 강요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실은 그냥 은퇴 생활에 적응하는 것을 익히는 것이 더 좋을 터인데 말이다.
완성을 본 자더러 즉각 물러나라고 한다면 그 또한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러니 시간을 좀 주어서 여흥을 즐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운명은 그런 시간을 배려해놓고 있다.
막이 내린 뒤의 여담 또는 에피소드 같은 것이 있어야 당연한 것이니 그 시간은 완성으로부터 2 년간이다. 그리고 나면 또 다시 2 년에 걸쳐 물러나는데 필요한 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니 4 년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 대목에 오니 문득 톨킨이 남긴 위대한 환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이 생각난다.
프로도가 반지를 가지고 고향 샤이어를 떠나야 하는 입장에서 마법사 간달프는 시간이 얼마 없다고 재촉하지만 프로도는 계속 망설인다. 그러다가 가을 추수감사절을 지내고 프로도는 마침내 어쩔 수 없이 반지를 없애기 위한 길고 험난한 여정에 오르게 된다. 다소 늦은 감이 있었지만 실은 가장 적절한 때였던 것이다.
결국 프로도가 절대 반지를 불타오르는 화산 정상에 올라 던져 없앴다는 것은 우리 속의 포만을 모르는 정신의 악마를 녹여버렸다는 귀결이 된다.
평범한 대목 같지만 이야말로 톨킨의 위대함, 삶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나온 스토리 전개가 아닐 수 없다. 동화처럼 쉽게 흘러가는 이야기지만 20 세기에 배출된 그 어느 文豪(문호)보다도 더 심원한 삶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는 톨킨이다.
우리의 삶에는 완성의 시점이 있다. 사람들은 내게 찾아와서 그 시점이 언제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고집을 피운다. 메일로도 끊이지 않고 물어온다.
나는 좀처럼 답해주지 않는다.
완성으로 가는 여정이야 물론 즐길 일이지만, 완성이 되면 물러나야 한다는 것, 그 까닭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섣불리 가르쳐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니 그렇다.
완성은 좋고 기쁜 일이지만 성대한 餘興(여흥)이 끝나면 그로부터 더 큰 성취와 영광이 아니라 실은 조촐하게 홀로만의 여행, ‘겨울 나그네’의 길을 가야한다. 또 그 외로운 ‘겨울 나그네의 여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겨울로 가는 홀로만의 旅程(여정)길은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포만을 거부하는 우리의 정신,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이기적이고 못된 우리 속 그 놈과의 정면대결을 펼쳐야 하는 전혀 다른 투쟁의 길이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옛 이야기책에선 흔히 ‘그러고 나서 그들은 오래오래 아주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끝이 나지만, 그 점이야말로 현실과 환상이 결별하는 지점이라 하겠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사실 다 알면서도 끊임없이 해피엔딩의 동화나 소설, 멜로드라마 혹은 영화를 찾아 나서는 게 아닐까!
(오늘 글은 쉽사리 이해되기가 어려워서 나 또한 평소 좀처럼 털어놓지 않는 삶의 심원한 비밀에 관한 얘기였다. 다시 말해서 마법사의 전언이었다. 찬찬히 읽어두고 새겨두시면 훗날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태규의 희희락락호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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