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데일리 단독기사

 지하철로 보는 상권|빌딩|재건축 뉴스

뒤로 리스트 인쇄
news only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

[인동초]-마림비스트 전경호

“불가능 넘은 세계최초 맹인 타악기 연주가죠”

감각만으로 건반 연주…글로벌 무대 누비며 장애·비장애 교류 앞장

배수람기자(baebae@skyedaily.com)

기사입력 2017-11-14 00:03:00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미숙아망막증’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시력을 잃은 전경호(사진) 씨는 어릴 때부터 오케스트라 음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타악기에 매력을 느낀 그는 한빛맹학교 음악전공과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마림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누구나 장애를 가지게 되면 좌절하게 되죠.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사람이 살다보면 누구나 하나쯤은 하고 싶은 게 생기게 마련이잖아요. 마림바의 깊고 풍부한 울림이 좋고 연주를 하면서 행복을 느꼈어요. 잘 하고 싶어서 부단히 노력하다보니 어느 순간 장애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더라고요”
 
3m가 넘는 길이에 얼핏 큰 실로폰을 연상케 하는 ‘마림바’는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악기다. 실로폰의 일종으로 아프리카 민속악기인 마림바는 장미목으로 만들어진 건반을 고무·천 등으로 만든 구슬이 달린 스틱(말렛)으로 때려서 연주한다. 파이프관을 통해 소리가 퍼지는 마림바는 울림관이 크기 때문에 풍부하고 영롱한 소리를 낸다는 점이 특징이다.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경호(30·남) 씨는 시각 장애를 극복하고 이런 마림바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마림비스트’로 활약 중이다. ‘미숙아망막증’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시력을 잃은 1급 시각장애인인 그는 빛만 감지할 정도의 시력을 가지고 있다. ‘미숙아망막증’은 미숙아에게 일어나는 안과 질환으로 심할 경우 실명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전경호 씨는 신체적인 한계에 굴복하지 않고 음악에 대한 열정과 마림바를 향한 애정으로 마림비스트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그는 스카이데일리를 통해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스스럼없이 털어놨다.
 
한 곡 익히는데 1년 연습…집요한 외골수 ‘세계최초’ 타이틀 획득
 
“어릴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제한돼 있다는 점이 싫었어요. 여러 가지 분야에 많이 도전해보고 싶었죠. 평소 오케스트라 음악을 즐겨 듣고 드럼 치는 걸 좋아했는데 그러던 차에 마림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됐죠. 고음을 내는 실로폰이랑 다르게 풍부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소리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안고 태어난 전경호 씨는 다른 시각장애 음악인들과 달리 유독 타악기에 매력을 느꼈다. 시각장애인 중에서 타악기를 전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극히 드물다.
 
타악기의 특성상 음을 내는 곳을 눈으로 보고 정확하게 쳐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맹인들은 관악기나 현악기 등 몸에 밀착할 수 있는 악기를 선호한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타악기에 도전한 그는 ‘세계최초’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됐다.  
 
“장애도 장애지만 마림바는 일단 대중화된 악기가 아니고 연습할 공간도 마땅치 않았어요. 마림바를 전공하고 삼기로 했지만 막막하더라고요. 학교에 있던 연습용 마림바를 가지고 부단히 연습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저에게 가능성이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증명해보여야 했죠”
 
전경호 씨는 선생님의 몸동작 하나하나를 손으로 만져가면서 마림바의 건반 위치를 파악하고 연주하는 법을 익혔다. 점자로 된 악보를 구하기 어려워 그는 직접 점자 프린터로 악보를 만들어 연습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한 곡을 몸으로 온전히 익히려면 수개월이 걸렸다. 갖은 노력 끝에 문화·예술인의 성지로 여겨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기악과 진학에 성공했다.
     
▲ 마림바는 실로폰의 일종으로 아프리카 민속악기다. 장미목으로 만들어진 건반을 고무·천 등으로 만든 구슬이 달린 스틱(말렛)으로 때려서 연주한다. 울림관이 크기 때문에 풍부하고 영롱한 소리를 낸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진은 마림바를 연주하는 전경호 씨 [사진=도미넌트에이전시]
  
“마림바를 만지기 시작한 건 10년 정도였지만 체계적으로 레슨을 받은 지는 5~6년 정도 밖에 안 됐어요. 곡을 익히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죠. 특히 ‘왕벌의 비행’ 같은 경우는 곡 자체가 재미있고 평소 성격이랑 잘 맞는 것 같아서 연습했는데, 박자가 빠른 곡이다보니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더라고요. 그 곡은 한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린 것 같아요”
  
특유의 집념으로 마림바 연주에 매진한 전경호 씨는 지난 9월 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두 번째 독주회를 가졌다. 아직 마림바가 국내 대중들에게는 친숙하지 않지만 일찍이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해외 음악가들은 일찌감치 해외 여러 행사에 그를 초청했다.
 
앞서 그는 2008년 홍콩과 미국 뉴욕에서 마림바 독주를 한 데 이어 201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 문화예술교육주간 개막식 공연’에도 선 경험이 있다. 지난 8월에는 핀란드에서 열린 ACCAC(Accessible Arts and Culture)에도 초청돼 기량을 뽐냈다. ‘ACCAC’는 예술·문화의 접근성과 다양화를 목적으로 다양한 아이디어와 예술적 실천 모델들을 생성·소통·교류하는 국제적 프로그램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교류를 지향하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저를 찾아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벅차요. 특히 해외관객들의 경우 제가 가진 장애보다 음악적 완성도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럴 때 장애를 가졌지만 스스로 마림바를 선택한 만큼 완벽하게 해야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실패·좌절에 대한 두려움 없어…시각장애인 딱지 뗀 음악인 희망  
 
“음악인들 사이에서 마림바는 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만지는 악기 정도로만 인식이 잡혀 있거든요. 맹인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이걸 특화시켜서 마림비스트로서 마림바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크죠” 그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을 받아 다음 달 인도 뭄바이에서 열리는 EARS(Europe Asia Roundtable Session)-ACCAC의 초청공연을 앞두고 있다.
 
“성공이 100이라면 저는 지금 55정도인 것 같아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마림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마림비스트로서의 길이 제 길이라는 확신이 서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마림바 연주를 시작한 것이 50이라면 이제 5만큼 한 거죠.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제가 처음인 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요.
 
전경호 씨가 마림비스트로서 두각을 나타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주위의 만류와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 그는 오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마림바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마림바에 확신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연주하면서 느끼는 행복함을 꼽았다. 마림바가 주는 매력을 혼자만 가지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맹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장애는 누구나 받아들이기 힘들잖아요. 좌절이 일상이고 실패와 한계에 부딪히는 일이 많으니까요. 마림바를 연주하는 동안 행복한 부분도 있지만 저 또한 늘 앞을 볼 수 없는 것에 대해 화가 나고 좌절하곤 해요. 하지만 지금 제가 이 길을 잘 닦아놔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요. 그래야 뒤 따라오는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테니까요”
  
▲ 독주와 협연을 주로 하는 마림비스트의 길을 개척 중인 전경호(사진) 씨는 오케스트라·앙상블과 같은 합주 무대에도 서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지휘자를 볼 수 없다는 애로사항이 있지만 그는 섬세한 감각과 예민한 청력과 더불어 새로운 보조 장비 같은 것들이 구현된다면 불가능한 무대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스카이데일리
  
전경호 씨는 국내에서 꾸준한 독주 및 협연을 통해 마림바의 대중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연도 마련할 예정이다. 그는 국내에서 열린 두 번의 독주회에서 맹인들에 한해 점자 팸플릿 아이디어를 직접 내기도 했다. 그동안 문화·예술 공연과 전시회 등에서 시각장애인들은 관련 정보를 거의 얻을 수 없었던 점에 착안했다.
 
“서울에서만 공연을 두 번 했었는데 내년에는 지방으로 공연을 하면서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싶어요. 그들에게 풍부한 제 감성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저를 먼저 찾아줄 정도가 된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들뜰 필요도 없고 우울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차분하게 정진하자는 마음으로 마림바에만 집중할 생각이죠”
 
그는 마지막으로 ‘세계최초 시각장애인 마림비스트 전경호’가 아닌 ‘마림비스트 전경호’가 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앞을 못 본다는 핸디캡 없이 음악인 대 음악인으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자유롭게 교류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마림바를 전공하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선구자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맹인이라서 다른 타악기를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마림비스트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게 아니라 마림바의 매력에 이끌려 마림비스트를 선택한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좋은 음악을 하면 대중들도 시각장애인 전경호가 아닌 마림비스트 전경호를 찾을 거라고 자신해요. 그렇게 나아가다보면 제2, 제3의 마림비스트도 나오지 않을까요”
 
[배수람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저작권자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뒤로 리스트 인쇄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독자의견 총 1건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