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MB기업 줄수사 과연 우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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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MB기업 줄수사 과연 우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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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기자페이지 + 입력 2017-11-20 00:11:05

지난 17일 서울중앙지검 조사2부는 오전 9시부터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효성그룹 본사와 관계사 4곳, 관련자 주거지 4곳 등 총 8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본사의 인사, 총무 부서가 속한 지원본부 등에서 회계장부와 디지털 자료, 관계자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이 정도면 가히 대대적인 수사라 부를 만하다.

검찰은 효성이 계열사를 동원해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14년 ‘효성그룹 형제의 난’ 당시 조석래 효성그룹 전 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효성중공업PG 부사장의 주장을 근거로 삼았다. 앞서 조 전 부사장은 효성의 경영진이 계열사에 무리하게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100억원대 횡령·배임 등의 비리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사건은 처음 고소·고발사건을 전담하는 조사부에 배당됐다가 이듬해 기업비리 등 대규모 부정부패 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특수4부로 넘어갔다. 하지만 윤석렬 서울중앙지검장 취임 이후인 올해 9월 다시 조사2부에 배당됐다. 조사2부는 10여건이 넘는 효성 관련 사건을 병합해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이 효성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선 표면적인 명분은 비자금 조성 등과 관련된 기업비리 사건이지만 최근 재계 일각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여론이 적지 않다. 그동안 잠잠했던 효성그룹 수사를 검찰이 다시 꺼내든 것을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행보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시각이 일고 있다.

현재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칼끝은 과거 이명박정부를 향하고 있다. 민간인 사찰 해킹, 여론 조작, 정경유착, 블랙리스트 작성 등 당시 불거져 나온 비리 의혹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펼치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이어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까지 최근 구속되면서 검찰 수사는 점차 윗선으로 다가서는 모양새다. 이대로라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효성그룹의 경우 ‘친 MB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이다. 효성그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단순히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관계다. 조석래 전 회장의 동생인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며느리가 이 전 대통령의 딸 수연 씨다. 조현범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과 수연 씨는 지난 2001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효성그룹과 이 전 대통령은 사돈관계인 셈이다.

공교롭게도 효성그룹에 앞서 또 다른 ‘친 MB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에 대해서도 검찰의 강한 압박이 이뤄진 바 있다. 대상은 롯데그룹이다. 검찰은 얼마 전 경영비리 혐의로 롯데그룹 총수 일가에게 수위 높은 형벌을 구형했다. 지난달 30일 검찰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징역 10년과 벌금 1천억 원을,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에겐 징역 5년을 각각 구형했다.

누나인 신영자 이사장과 계모인 서미경 씨 등에게는 각각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다음날인 이달 1일 롯데그룹의 창업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게는 징역 10년과 벌금 3천억원이 구형됐다. 당시 재계 안팎에서는 신 총괄회장의 나이가 올해 95세인 점을 감안하면 검찰의 구형은 다소 무리한 감이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동시에 단순히 경영비리 외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 어린 시선이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다른 의도’는 바로 이명박정부 시절에 이뤄진 각종 정경유착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이었다. ‘적폐청산’이라는 명분하에 이명박정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윗선에 대한 수사로 진척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도 높은 압박으로 이들 기업에게서 결정적 증거를 얻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이번 효성그룹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로 이러한 견해는 더욱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공교롭게도 롯데그룹과 효성그룹 등은 모두 이명박정부 시절 각종 특혜 및 정경유착 의혹과 관련해 그 이름이 가장 빈번하게 거론됐던 기업들이다. 이들 두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이명박정부에 대한 수사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배경이다.

문제는 최근 대한민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다. 미국 트럼프정부의 거센 통상압박, 제조업 부문에서 중국 기업들의 선전, 북한의 핵위협 리스크 등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기로에 서 있다. 국내 기업들 역시 사태 추이에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전 정권에 대한 수사의 불똥이 기업들에게까지 튄다면 사실상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외부의 강력한 적과 싸우는 전사들을 같은 편이 뒤에서 칼로 찌르고 있다는 생각도 지우기 어렵다.

‘잘못된 것을 깨끗하게 씻어낸다’는 의미의 ‘적폐청산’은 그 의도만 놓고 보면 분명 좋은 단어임이 틀림없다. 대한민국에 긍정적 효과를 불러온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욱 큰 피해가 뒤따른다면 그것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국가경제가 기로에 선 상황에서 대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그렇다. 설령 수사에 ‘다른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의심한다면 그것은 정부가 그럴만한 모습을 내비쳤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이 어찌됐던 간에 정부가 분명이 알아둬야 하는 사실은 적폐청산 수사와 대기업에 대한 수사를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사건만이 아니라 수사 시점 또한 달리해야 한다. 적폐청산 수사를 완전히 종결한 이후에 대기업들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도 늦지 않다. 현 시점에서의 대기업에 대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는 희생양을 찾는 행위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김신 s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