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올려도 매출 호황, 명품 소비층 ‘올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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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양극화 심화에 차상위 고소득층 증가 원인

스카이 비평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2-02-12 06:55:14

▲ 한국은 전 세계에서 보기드문 명품 소비국이다.

해외에서 국내 소비자들을 향해 이른바 ‘봉’이라고 간주하며 ‘고가 마케팅’ 정책을 펼치는 상품들이 한국에는 유독 많다. 명품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있는 상품들은 가격을 올려도 소비가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쑥쑥 늘어난다.

명품 소비는 불경기에 더 빛이 난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내수 불경기가 심화되는 와중에도 명품 소비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값을 제대로 하니 명품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고 칭찬하고 싶을 정도다.

명품가격이 거품이 있다는 것이 공지의 사실임에도 그것을 구매하는 한국의 봉들은 해마다 늘어난다.

지난해에도 달라진 게 없다. 롯데, 현대, 신세계 등 국내 빅3 백화점의 지난해 명품 매출이 전년보다 20.8%나 급증했다. 이들 백화점은 불황이 장기화할수록 명품 소비가 늘어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했다. 불경기에는 소비 패턴이 고가 명품과 저가 실속형 시장으로 양분되는 현실을 보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은 경우는 지난해 명품 매출이 전년 대비 무려 20.3%나 증가했다. 분기별로 보면 1분기에 36.2%로 가장 높았고 2분기 28.2%, 3분기 12.6%, 4분기 12.4% 등으로 점차 낮아지기는 했지만 두 자리 수 인상은 여전했다. 현대백화점은 19%, 신세계백화점은 23.2% 각각 증가했다.

이 같은 소비추세를 읽은 해외업체들이 가만있을 리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역시 발이 빨랐다. 올 들어 명품 소비족을 유혹하는 가격인상 대열에 해외 명품업체들이 줄줄이 합류하고 있다.

‘가방의 황제’로 귀하게 대접받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가 지난달부터 국내 판매가격을 평균 5% 올렸다. 가격이 워낙 고가이다 보니 5% 인상한다고 해도 금액으로는 수백만원에 해당한다.

에르메스에 이어 넘버2 격인 속칭 가방의 여왕 ‘샤넬’은 이달부터 국내 가격을 평균 10%나 인상했다. 그러자 이탈리아 브랜드 ‘프라다’도 이달 중순부터 국내 판매가격을 10∼15% 올릴 계획을 잡고 있다.

가방에 질세라 유명 화장품들도 인상대열에 속속 합류했다. 라프레리·랑콤 등이 지난달 가격을 4∼10% 올리자 SK-Ⅱ·비오템·슈에무라·키엘 등은 이달 중 2∼10% 올리면서 인상에 동참한다. 에스티로더·바비브라운 등은 내달 2∼14% 가격을 올릴 예정으로 있다.

이들 명품 가방과 유명 화장품들의 인상률을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1월중 ‘소비자심리지수’(CSI:consumer survey index)가 98(기준치 100)을 나타내 전월대비 1p 하락했는데, 이는 두 달 연속 기준치를 하회한 것이다. 이처럼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인데도 가격을 올리는 정책은 보통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인이 그저 봉으로 보이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이다.

우리나라 명품 시품시장은 지난 2006년 이후 매년 평균 12% 성장해 지금은 무려 50억달러로 성장했다. 그 중에서도 에르메스와 샤넬 등은 백화점 상품군별 증가율에서 단연 압도적인 1위였다. 이들 두 품목이 명품 가격 인상에 기폭제 역할을 하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문제점을 짚어 보자. 개인적으로는 명품 소비 자체를 비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화점 업계는 최상위 계층의 명품 소비는 늘지 않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차상위 고소득층이 명품소비를 이끌었다는 것이 백화점들의 분석이다. 업계는 차상위 고소득 계층이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명품 매장을 확대하거나 마케팅을 강화할 구상까지 하고 있다.

업계의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지난해 직장인 1248만명 중 억대연봉자가 전년에 비해 7만3500명이나 증가한 32만3000명을 나타냈다. 10년 전인 2002년의 4만1600명에 비해서는 무려 28만1400명이 증가했다.

직장인들의 억대 연봉자가 증가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양극화가 제1의 원인으로 꼽힌다. 기업에도 양극화 바람이 불면서 소위 잘 나가는 중소기업 숫자가 상대적으로는 비율이 낮아졌지만 절대숫자는 늘어났다.

대기업 그늘에 있느냐 없느냐가 기업 양극화의 주범이다. 대기업 집단의 몸집 부풀리기가 가속화되면서 중소기업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현상이 명품소비 증가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를 두고 비판적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10대 재벌의 ‘목장’에 자청해서 들어가야 한다고 비아냥댄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 잘못된 명품시장 공화국이 됐다. 가격을 올리면 올릴수록 소비가 더 잘되는 이상한 매출구조가 정상처럼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는 것은 차라리 수치다. 해외 명품업체들이 소비자들의 취향이나 서비스 만족도와 관련 없이 무조건 가격을 올리고 보는 정책은 소비에 대한 무시다.

명품들은 올해도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나 홀로 호황’을 구가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최악의 경기침체 국면에서 가격을 줄줄이 올려대는 용감한 마케팅 정책이 통하는 한국 시장은 소비자들이 그렇게 만들었고, 나아가 거시경제를 운용하는 정부가 그것을 조성했다. 이젠 돌이키기 힘들어졌다. 명품은 우리 모두에게 일종의 올가미가 됐다.

스카이 비평 기자 skyedaily@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