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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가전, IT 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크게 올라 선전하면서 과거 세계를 호령했던 세기의 글로벌 기업들이 잇단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일본 전자업계의 살아있는 기업신화이자 제국이었던 ‘소니’(SONY)가 지난해 5200억엔(약 7조3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낸 것은 충격이다. 지난 1980~90년대 전 세계 가전업계를 호령했던 ‘전자제왕’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소식이다.
물론 소니의 추락은 이미 예고돼 왔다. 최근 4년간 적자를 냈을 뿐만 아니라 소니의 간판사업인 TV 부문은 무려 8년째 적자행진 중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1만명을 감축하는 대규모 인력 다이어트와 대대적인 사업구조 개편에 나서고 있지만 과연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소니의 침몰은 일본의 침몰에 다름 아니다. 소니는 그만큼 일본을 상징한다.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전자가 있듯이 소니는 일본의 국부를 벌어들인 막강 기업이었다.
1980년대 소니의 ‘워크맨’은 전 세계 젊은이들의 필수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손에 들고 다니면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테이프 레코드’는 전 세계 시장에서 젊음의 문화코드까지 바꾸는 역할을 했다.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 제품이었던 워크맨은 곧 일본의 상징이 됐다. 작은 것을 지향하는 일본인과 일본제품은 같은 등식으로 이어졌다.
앞서 소니는 1957년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초소형 라디오를 개발하면서 회사의 성장가능성을 닦았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이 라디오는 비유하자면 오늘날의 ‘주머니 태블릿PC’ 정도다. 좀 더 혁신적으로 비교하면 스티브 잡스의 아이패드라고 할까. 소니는 이 제품을 계기로 ‘동경통신공업’이라는 회사명을 버리고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후 소니의 성공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소니의 추락은 얕잡아 보았던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것 같았던 국내 두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거침없이 내달리며 소니를 앞선 후 그 간격까지 크게 벌렸다. 왕년의 제왕 ‘소니TV’는 지금 우리 제품들에 밀려 맥을 못 추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글로벌 TV 시장에서 23.6%의 점유율을 차지해 6년 연속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 전 세계 TV 4대 중 1대는 삼성 브랜드가 붙은 제품이다. 실제로 북미와 유럽은 물론 중남미까지 삼성TV는 무차별 확산세다.
여기에 LG전자까지 가세해 지난 2009년부터 소니를 제치고 삼성에 이어 세계 2위의 TV업체로 등극했다. 소니의 굴욕이었고 일본은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다. ‘축소 지향형의 일본’이라는 대명사가 붙어 다니던 일본 그리고 그 소니는 더 이상 그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기업 때문에 소니처럼 창피할 정도로 쪼그라든 글로벌 제왕업체들이 또 있다.
핀란드의 삼성전자라고 할 만큼 ‘휴대폰 제국’을 이룬 노키아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그 제왕 자리를 내주었다. 2010년 전 세게 휴대폰 시장의 34.2%를 차지했던 노키아가 지난해에는 17.9%로 절반까지 급추락했다. 올해는 다시 그 절반인 8.6%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가히 추락속도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노키아는 핀란드 경제의 기둥역할을 하면서 천문학적인 세금납부로 국부창출에 철저히 기여했다. 지난 2007년의 경우 12억유로(약 1조8000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해 국가재정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한 기업의 흥망이 국가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판매량이 애플의 아이폰을 능가하면서 벌어진 휴대폰 시장의 지각변동에 따른 결과다. 영원할 것 같았던 글로벌 노키아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추락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다.
또 한 사례가 있다. ‘블랙베리’로 스마트폰의 문을 연 캐나다의 대표기업 ‘림’(리서치 인 모션)도 삼성전자와 애플에 밀려 스마트폰 시장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4분기(2011년 11월~2012년 2월)에 림은 결국 1억4200만(약 1600억원)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림의 위기는 유능한 경영인들과 기술자들이 잇따라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이 더 심각하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기술책임자(CTO)와 운영책임자(COO)가 잇따라 사임했을 뿐만 아니라 공동 CEO ‘짐 바실리’까지 물러났다. 블랙베리 플랫폼 관련 부사장들도 잇따라 떠나면서 이중의 위기에 빠져들었다.
파죽지세로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직·간접 영향이 이처럼 크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애플마저 제쳤다. 총 4100만대를 판매해 애플의 3260만대를 무려 840만대나 따돌리며 확고한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영향으로 아이폰4S 출시 후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판매량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기도 했다.
일본, 핀란드, 캐나다 등에서 우리의 삼성전자와 같은 회사들이 위기로 내몰리며 생사를 걱정하는 기로에까지 서게 된 것을 보면 언뜻 실감이 안 난다. 도무지 쳐보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 됐던 세기의 글로벌 기업들이 ‘코리아 브랜드’ 아래 무릎 꿇은 것을 보면 눈과 귀를 의심하게 된다.
또 한 사례를 더 들면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가도를 달려 미국과 일본차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시장에서는 이미 국산차가 일본차들을 속속 제치며 앞서가고 있다. 국산차는 조만간 미국차 마저도 위협할 가능성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글로벌 대기업들의 잇따른 추락은 계속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의 선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국내 가전과 휴대폰 산업의 경쟁력은 수명이 짧을 수 있다는데 있다. TV, 인터넷, 모바일, PC, 가전 등이 통합되는 도도한 흐름 속에서도 우리 기업들은 수명이 상대적으로 긴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기반기술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는 주가로 당장 나타나고 있다. 애플 시가총액이 최근 6000억달러(684조)를 돌파했다. MS에 이은 두 번째다. 이 규모는 삼성전자 시총의 3.5배에 달하는 규모다. 삼성전자가 안심하지 못할 배경이다. 삼성전자가 국내 상장 시총의 16.47%(지난달 말 기준)를 차지해 국내 증시에서는 가히 절대적 비율이지만 애플에 비하면 여전히 왜소하다. 국내기업들은 언제든 역공을 맞으면 흔들릴 위기에 있을 수 있는 만큼 글로벌 기업들의 추락을 세심하게 살피며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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