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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은 악연으로 점철돼 왔다. 두 사람 모두 대선을 꿈꿀 때부터 그리고 대선 후보자로 여론을 타면서 그 갈등은 더욱더 고조됐다. 친이와 친박은 한나라당의 고래등 싸움이었기에 양보할 수 없는 게임이기도 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비수들을 날려 온 두 사람이 회동했다. 악연이이지만 필연에 의한 만남이었다. 임기 말 ‘권력 딜’이 두 사람 모두 필요했겠지만 국민들은 아무리 독대라고 해도 무슨 말을 오고가는지 짐작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사진=뉴시스/청와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이 만났다. 비록 40분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간의 인연과 악연 그리고 그런 사연들이 점철돼 오늘의 만남이라는 필연을 만든 듯 해 의미심장한 회동이었다.
사실 두 사람의 인연은 대단한 악연의 연속이었다. 그것도 상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건의 연쇄고리가 이어져 왔다. 한나라당(현·새누리당) ‘보트피플’ 사건이었던 ‘친박연대’는 휘날래를 장식한 갈등의 클라이막스였다.
박 당선인은 위기 때마다 한나라당을 구하는 해결사 역할을 했으면서도 이른바 ‘MB의 플랜’에 늘 억울한 패배자로 비춰져 왔다. 얼음공주라는 별칭과도 같이 표정이 없는 ‘박심의 가슴’에 비장함이 묻어 있는 듯 보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과연 MB와 박근혜는 화해라는 말이 가능한 것일까.
5년전인 17대 대통령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먼저 청와대 안주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당내 입지가 강고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켜켜이 억울함이 묻어 있을 법한 ‘경선룰’ 논란을 뒤로하고 패배를 인정했다.
앞서 한나라당은 트럭으로 실어 나른 대선자금 수수 문제(일명 차떼기)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전 국민적 반(反) 한나라당 열풍(탄핵 후폭풍)으로 그야말로 난파위기에 직면했었다. 박 당선인이 나서지 않았다면 오늘의 한나라당은 간판조차 있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위기의 당을 구해낸 박 당선인이었기 대권후보로 손색이 없었지만 청와대 안주인은 ‘노무현 민생 실정(失政)’과 그 반대급부로 ‘청계천 상표’가 먹히며 부상한 MB에게 눈물을 머금고 양보해야 했었다.
청와대 악연에 이어진 2008년 ‘공천학살’ 사건은 두 사람을 끝내 갈라서게 했다. 당시 이재오 사단은 박근혜에게 정치적 살육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비수를 꽂았다. 이어진 ‘박 보트피플’(공천탈락자)은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의 이름을 빌린 ‘친박연대’라는 당명을 깃발로 들어 올리는 일까지 가능하게 했다.
이후 박 당선인은 질곡을 거쳐 화려하게 한나라당으로 복당했지만 그 원한의 사무침은 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여론이었다. MB 역시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BBK 사건 등을 거론하면서 공격해 온 박근혜 쪽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세종시 문제에서도 MB는 유령도시를 거론하면서 ‘노무현 청사진’을 사실상 백지화 하는데 힘썼지만 박근혜 당선인은 정면에서 반기를 들었다. 이에 MB는 “집안싸움을 하다가도 강도가 들어오면 강도와 싸워야 한다”고 반박했고 박 당선인은 “집안에 있는 사람이 강도로 돌변하면 어떡하냐”고 비아냥 투로 일축했다. ‘강도론 논쟁’은 두 사람간의 갈등을 함축적으로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필요에 의한 필연으로 다시 만났다. MB의 실정에 따른 국민적 불신과 친인척 비리 등으로 한나라당은 다시 최악의 위기에 빠졌고 박 당선인이 이를 다시 기적적으로 건저냈다. MB가 박 당선인을 확실한 대권후보로 인정하고 자신의 퇴임 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MB는 올 4·11 총선 이후 박 당선인의 ‘막후 보급부대’를 자처했지만 박 당선인은 모종의 딜(deal)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던 선물 꾸러미를 거부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손을 맞잡게 한 변수가 나왔다. 박 당선인의 유일한 대선 대항마로 급부상한 ‘무정당 국민후보 안철수’의 등장으로 박 당선인은 MB의 도움이 필요해 절묘한 인연을 다시 갖게 됐다.
MB는 개표하는 날 박근혜 후보가 당선이 유력시 되자 삼성동 자택으로 사전에 준비된 듯한 청와대 경호진을 보내는 극도의 친절을 베풀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MB의 러브콜에 박 당선인은 과거의 악연을 접어야 할 순간이었다. 더불어 인수위를 제대로 가동하려면 MB의 도움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필연’에 의해서 두 사람이 청와대에서 40분간 회동했다. 외견상 박 당선인은 민생현안 예산을 사실상 간청하기 위해 갔다. 실제로 박 당선인은 48%의 ‘열혈 반대파’를 진정시키기 위한 대통합이라는 정치적 숙제를 달성하기 위해 MB의 지시만을 따르는 ‘예산 예스맨’ 장관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더욱이 알짜배기 인사인 공기업들의 기관장이나 감사 등에 대한 인사권한을 박 당선인은 적당히 갈 수 없다. 취임 이후 박 당선인을 위해 뛰었던 핵심 캠프 사람들에게 최소한이라도 은전을 베풀려면 공기업 인사권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배치한다는 게 박 당선인의 생각이기에 논공행상용 ‘박심 낙하산’을 줄이겠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MB가 임기 말에 자신의 사람을 심는 ‘알박기 인사’를 하면 친 박근혜 인사들의 마음을 살 환경이 줄어든다.
현재 MB가 인사명령을 할 수 있는 공기업 자리는 대단히 굵직굵직한 자리가 많다. 신의 직장이라는 한국전력을 비롯해 석탄공사, 기술보증기금, 근로복지공단 상임감사직 등이 있다. 내년 1월 21일로 임기만료인 헌법재판소장과 검란 사태 후 자리가 비어있는 검찰총장 등도 청와대가 입김을 미치고 싶어 하는 막강한 자리다.
헌재 소장의 경우는 인사청문회 일정 때문에, 검찰총장은 직무의 연속성 때문에 각각 지금 내정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MB가 퇴임 후를 걱정하고 박 당선인은 취임 후를 고려하려면 두 사람의 협상은 불가피하다. MB가 이를 양보한다면 줄줄이 수감돼 있는 측근인사들에 대한 사면을 박 당선인과 딜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두 사람의 독대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긴 시간의 권력을 나누는 자리가 됐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두 사람의 ‘권력 딜’은 자칫 국민의 눈을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권력교체기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국민들의 신망’이 청와대를 비우는 사람이나 들어가는 사람 모두 잃게 된다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악연으로 점철된 인연이었기에 두 사람의 공통된 딜은 사실 화합을 위한 긍정적 회합이 되기 어렵다. 자칫 국민들도 뻔히 알만한 권력 분점을 위한한 이권 나누기를 한다면 대단히 위험한 악연을 다시 만드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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