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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경 인문책방

“개인 정보유통망 확대 이면엔 공론의 장(場) 위기”

인문학 키워드 _ 미디어

스카이데일리(ghjeon@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1-05 19:56:38

▲ 문화평론가 고태경
일간지의 신문보도에서 기자는 3인칭 관찰자의 시점을 취한다. 사태에 대한 객관적 시선 담보는 보도의 공정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또 어떨까? 소설 속에서 모든 등장인물은 허구의 세계를 기반으로 해 나타나며, 현실의 삶을 은유한다. 소설에서 우리는 또 다른 하나의 제3의 세계를 만나며, 그 소설을 읽는 독자는 제3의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인쇄매체의 특징은 그 매체가 세계를 재현하고자 한다는 것, 그 재현된 세계에서 독자들은 모두 제3의 관찰자가 된다는 점이다. 18세기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인쇄매체는 거대한 지식의 교환통로가 되었고, 19세기를 넘어서며 정치적 폭로와 논쟁의 장으로 기능하게 된다. 여기서 세계는 재현과 조작 혹은 변화가 가능한 대상(혁명)으로 간주되었다.
 
반면, 21세기는 인쇄매체의 종언이 시작된 세기다. 이제 인쇄매체는 온라인 매체에 의해, 그중에서도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의해 대체되기 시작한다. SNS의 세기로 들어서며 사람들이 세계와 직면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일상 구어세계에서 우리는 관찰자가 아니라 대화의 직접 참여자가 된다. 예컨대, 대화하는 ‘나’가 있다면 그 상대방인 ‘너’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앞서 봤듯, 인쇄매체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참여자의 지위에서 관찰자의 지위로 위치이동을 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세계를 대상화해서 바라보는 태도가 생겨났다. 미학에서는 세계의 재현을 목적으로 하는 리얼리즘이 떠올랐는데, 노동자의 세계를 재현한 노동문학이, 제국주의에 저항한 민족문학이 이 리얼리즘의 성과로 부각되었다. 학문에서는 형식적 추리를 기반으로 한 수학과 자연과학이 진리 추구의 학문으로 주목받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SNS세계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예상가능하듯, 인쇄매체 기반하의 관찰자의 지위는 크게 상실된다.
 
인쇄매체와 세계의 대상화
 
세계를 관찰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관찰’한다는 것은 그 세계가 관찰자로부터 분리된 객체로 인식된다는 것을 뜻한다. 인쇄매체의 부흥과 더불어 사람들은 세계를 재현하고 새로운 세계를 상상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동시에 나(의 상상세계)와 그 바깥 세계를 분리하는 시도이기도 했다.
 
세계가 객채로 대상화되면서 반대로 세계로부터 분리된 나만의 내면 공간이 발생했다. 매체의 등장은 시대의 감성을 반영했던바, 거주공간에도 개인의 사적 공간을 추구하는 새로운 흐름들이 만들어졌다. 병원에는 개인병실이 도입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는 거울의 보급이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신문을 통해 연재소설의 붐이 형성되면서 사람들은 소설의 허구 세계를 탐닉하기도 한다.
 
사적 공간의 출현과 개인병실의 등장, 그리고 거울을 통한 용모관리와 소설적 허구의 탐닉은 사실상 같은 흐름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내면(interior) 공간의 등장은 내적 공간의 등장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내면세계의 구축을 통해 점차 세계와 자신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SNS와 관찰자 지위의 상실
 
세계의 관찰자가 된 근대인들은 동시에 그 관찰대상(세계)의 문제를 바꾸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내 몸의 내부를 내가 직접 변형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그린 그림은 붓을 잡고 있는 내 노력에 의해 다시 수정될 수 있다. 객체로서의 세계는 이 그림과 같은 대상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변형가능한 것이었고, 18세기 말 프랑스를 기점으로 그 변형의 흐름들이 혁명의 이름으로 폭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인쇄매체의 몰락이 가시화된 지금 상황은 또 다른 흐름 속으로 편입됐다. SNS에서, 요컨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나타나는 주요현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행위를 SNS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많은 경우는 자신들의 기분을 표현하거나, 일상의 모습을 노출하며, 정보 공유 역시 견해가 비슷한 이들 간의 좁은 틀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SNS의 한 주류 플랫폼 중 하나인 ‘트위터’(Twitter)에서 Twitter라는 이름의 사전적 정의는 ‘지저귀다’ 혹은 ‘지껄이다’다. 이 말은 SNS가 매체 이용자들의 수다의 장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이 수다의 장은 마치 구어의 세계가 만들어 놓은 ‘너’와 ‘나’의 2인칭 대화 채널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을 보통 ‘쌍방향 소통’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이 쌍방향 소통의 의미를 과대평가해서는 곤란하다.
 
SNS는 개인미디어의 형태를 띠며 이용자들은 이 매체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퍼나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정보들은 SNS의 팔로우 관계라는 좁은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만 유통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기성 언론들의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유튜브나 카카오톡 등의 매체를 통해 다양한 정보(일부분은 가짜뉴스)가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그 정보의 다양성만큼이나 정보가 소통되는 관계망들 역시 ‘다양하게 분열’되고 있고, 실제로 이는 현실 정치집단의 분열을 가속화하고 있기도 하다.
 
마치 구어세계의 사적 친목관계들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는 형국이다. 달리 보면, 인쇄매체가 형성한 공론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총체적인 위기에 놓인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기레기’라는 표현을 통해 나타나는 기성 언론에 대한 거부감은 매체적 소통조건의 이러한 변화를 함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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