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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의 계절이 왔다. 1930년대 말만 해도 민어는 ‘조선중요수산물’ 중 생산액으로 15위를 차지하는 풍성한 어족자원이었다. 1920년대는 굴업도, 덕적도에 민어파시가 생길 정도로 많이 잡혔지만 지금은 엣 영화로 남았다. 당시 성어기인 7~8월경이면 어선이 300척 이상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나 잦은 태풍으로 피해가 커지고 근해 어종과 어로환경의 변화로 민어잡이가 신통치 않게 되면서 점차 잊힌 이름이 됐다. 지금은 전남 신안과 제주 연안이 주산지다. 특히 갯벌이 잘 발달된 신안 임자도 지역 민어를 으뜸으로 친다.
민어 산란기는 7~9월이다. 그래서 산란기를 앞둔 지금부터가 가장 영양이 많고 맛있을 제철이다. 제철 생선이란 의미는 산란을 앞두고 지방을 한껏 채운 생선을 말한다. 한국수산지(1권, 1910)에 따르면 민어는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제 각각이다. 서울과 인천에서는 네 뼘 이상은 돼야 민어란 이름으로 불렸다. 세 뼘 내외는 어스레기, 두 뼘은 가리 등으로 불렀다.
민어(民魚)라는 이름은 역설적이다. 옛날엔 많이 잡혀서 서민들도 즐겨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코 고등어, 꽁치처럼 흔하게 상에 올릴 수 있는 어종이 아니다. 가담항설인진 몰라도 조선시대 양반들 사이에 ‘민어탕이 일품(一品), 도미탕이 이품(二品), 보신탕(개장국)이 삼품(三品)’이란 말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인천 앞바다 덕적도, 연평도에 민어파시가 열릴 정도였으니 이 무렵 한양 양반네들 밥상에 민어가 꽤나 올랐을 것으로 보인다.
산란기 앞두고 지방 한껏 찬 6‧7월이 제철
산란을 앞두고 지방이 차고 살이 오른 민어가 복달임 음식이 된 것은 아마도 산란기와 복날이 겹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름엔 생선을 회로 먹기보단 조리를 해야 하는데, 그중 민어가 지방이 많고 비리지 않아 탕으로 제격이었던 셈이다. 정약전은 자신이 쓴 자산어보에서 민어에 대해 ‘큰 것은 길이가 4~5자이다. 몸은 약간 둥글며 빛깔은 황백색이고 등은 청흑색이다. 비늘과 입이 크고 맛은 담담하면서도 달아서 날것으로 먹으나 익혀 먹으나 다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고 썼다.
지난해는 다른 때보다 민어를 풍성하게 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목포와 신안을 직접 내려가서 민어회를 맛봤고 서울서는 대치동 ‘순천만’이란 남도음식 전문 식당에서 정병석 한양대 교수(전 고용노동부 차관)와 회, 전, 탕, 찜 세트를 즐겼다. 정갈한 솜씨를 가진 집이라 음식이 혀에 착 감겼다. 이 식당에서는 신안 민어를 올려 사용한다.
민어탕에는 이정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과의 추억도 있다. 이 총장이 한국노총 사무처장으로 있을 때 인터뷰 후 여의도 한 식당엘 갔는데 마침 민어탕을 한다고 써 붙여 놨다. 이 총장이 먼 길 왔다며 밥을 사는 데 전날 과음으로 만사가 귀찮아 수저를 뜨는 둥 마는 둥 죄다 남기고 나왔다. 한철 음식이라 상당히 고가였는데 죄송하고 아쉬웠던 기억이다.
32년 민어장인 손끝에서 화려하게 해체
얼마 전 후배가 노량진수산시장에 민어를 먹으러 가잔 기별이 왔다. 때가 일러서 차일피일 하다가 더 늦으면 값이 오르고 때를 놓칠 것 같아 며칠 전 ‘출동’ 했다. 지난 17일 월요일 점심 무렵 찾은 노량진수산시장은 여전히 신시장 이전을 거부하고 있는 상인들이 구시장에 남아서 영업을 하고 있다. 분쟁이 꽤 장기화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갈등조정 기능이 약하단 생각을 해본다.
약속 장소인 신시장내 <부안수산>.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중앙통로 쪽에 손님 왕래가 제법 있는 곳이라서 수산물을 판매하는 곳이다. 다른 한 곳은 한적한 구석에 수족관 여유분으로 얻었다. 부안수산 여사장은 한적한 매장으로 가서 이틀 전 경매 받아 숙성해 놓은 자연산 민어 두 마리를 꺼냈다. 얼음무더기에 넣어두고 이틀간 숙성시킨 것이다. 무게를 달아 보니 각각 9.5, 7kg에 달하는 대물 민어다. 물고기는 큰 게 회를 두툼하게 썰어서 씹는 맛도 좋다. 물론 가격은 그만큼 비싸진다. 요즘 소비자가 시세는 kg 당 7~8만원 선. 생물이라 변동요인이 많다. 날이 더워지면 가격이 더 오른다.
이날 모인 인원이 4명이라서 7kg짜리를 잡았다. 능숙한 솜씨로 해체에 들어 간 여사장님. 노량진수산시장 경력이 32년 차다. 경기도 평택 생인데 부안으로 시집가는 바람에 수산업에 뛰어들게 됐다. 가게는 수산업 45년차 부군이 열어서 운영하고 있었다. 여사장님은 첫 아이가 젖을 뗄 무렵 가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요즘은 부군께서는 경매, 점포운영은 여사장님이 역할분담을 한다.
민어 꼬리 부근이 반쯤 잘려 있다. 와이어(생선신경절단기)로 ‘이케지메’(いけじめ)를 하기 위해 자른 것이다. 이케지메는 와이어를 척수로 밀어 넣어 신경을 망가트려 물고기를 즉사시키는 방법이다. 이케지메를 한 후 매달아 한 시간 가량 피를 뺀다. 이렇게 해야 민어 선도 유지가 잘 된다. 24~48시간 정도 숙성해서 선어로 먹으면 더 달고 향긋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가장 먼저 비늘치기를 통해 비늘을 벗겨낸다. 몸체 크기만큼 비늘도 크고 억세다. 그래서 촘촘하게 잘 벗겨내야 한다. 다음은 머리와 내장을 정리한다. 내장과 함께 나온 부레는 ‘민어의 꽃’이다. 민어회집에서 부레를 안주면 장사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다. 기름소금장에 찍어먹으면 쫀득하고 고소한 맛이 마치 껌을 씹는 식감이다. 7kg급 민어에서는 족히 30cm 이상 되는 부레가 나왔다.
민어 수율 45% 가량…7kg 회 뜨니 3kg 남짓 나와
머리를 떼고 내장을 빼자 민어가 3분의 1로 줄어든 모양새가. 그도 그럴 것이 민어를 떠서 횟감으로 떠내면 수율이 45%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7kg짜리를 잡았으니 회감이 3kg 남짓 나온다는 의미다. 생선회가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손질하는 데 시간이 꽤나 걸리기 때문에 그에 따른 공임도 높이 쳐야 하기 때문이다.
포 뜨기를 통해 이등분 한 민어는 살이 세 뼘 정도 나왔다. 갈비뼈를 제거하고 뱃살은 따로 분리했다. 다른 조리법으로 식감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몸체 포 뜨기를 진행하는 데 대물이라 다루기가 만만찮아 보인다. 몸체는 다시 배쪽살과 등쪽살로 이분할 된다. 배쪽살은 붉은 살이 약간 섞여 있고 등쪽살은 대부분 흰 살이다. 민어껍질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상하지 않게끔 포를 떠냈다.
따로 분리한 뱃살은 껍질 쪽에 다이아몬드 칼집을 넣었다. 그리고 포트에 물을 끓이고 얼음물을 준비했다. 칼집을 넣은 곳에 뜨거운 물을 부우니 껍질이 칼집 모양대로 꽃처럼 폈다. 이를 피상(皮霜‧가와시모)이라고 한다. 이를 재빨리 얼음물에 담가 식감을 탱글탱글하게 만들었다. 껍질도 뜨거운 물로 먹기 좋게 연하게 했다.
전(前)작업이 끝나고 본격적인 회 뜨기가 시작됐다. 붉은 살이 섞여 있는 배쪽살을 먼저 썰어 무채를 깐 회접시에 둥글게 돌려가며 가지런히 놓는다. 제법 큰 민어다 보니 회를 두껍게 썰어냈다. 두께가 족히 1cm는 돼 보였다. 뱃살은 식감이 상당히 꼬들꼬들하기 때문에 얇게 썰었다. 껍질과 함께 뱃살을 한쪽에 쌓고 부레를 이곳저곳에 올렸다. 그 위에 생와사비와 연어회 몇 점을 올리니 여러 색이 어우러져 식감을 돋웠다.
회를 정리하던 여사장이 민어 감별 팁을 준다. 양식 민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자연산은 전반적으로 몸체 색깔이 은색인데 반해 양식은 이보다 거무스레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알려줘도 일반인들은 구별이 쉽지 않다. 이날 민어 해체는 40분이 걸렸다. 중간 중간 설명하느라 늦어진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30분은 족히 필요하단 의미다. 때문에 예약을 해야 제 시간에 맛 볼 수 있는 구조다.
한쪽 수족관을 보니 민어를 물속에서 숙성하고 있었다. 섭씨 2도 정도에서 숙성하는 일종의 수비드 방식의 저온숙성법이다. 수비드 숙성은 수분이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장점이 있다. 육류에 많이 쓰이는 방법인데, 어류 숙성에도 사용한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가업을 잇는 큰 아들이 일본에서 배워 온 숙성법이다. 이 숙성법으로 2주 정도 숙성한 민어는 치즈맛이 올라온다고 한다. 육류도 오래 숙성하면 치즈맛이 난다.
일본서 저온숙성 방법 배워와 특별한 선어 제공
가지런히 담긴 민어회가 일행이 자리잡고 있는 2층 <해운대>라는 식당으로 공수돼 왔다. 노량진수산시장은 1층서 회를 떠서 2층 식당서 먹는 방식이다. 회는 1층서 완성하지만 탕과 전 찜 등 조리는 2층 식당 손을 거쳐야 한다. 물론 이에 따른 비용은 따로 지불해야 한다. 기본상차림비용도 1인 당 3000원씩 따로 계산한다.
민어회를 부레부터 뱃살, 배쪽살, 등쪽살, 껍질을 차례로 한 점씩 입안으로 넣는다. 초여름 청천과 백운의 창밖 풍경을 등지고 먹는 민어의 향연. 두껍고 커다란 민어가 한입 가득이다. 부안수산서 제공한 생와사비는 시판제품 중에 꽤나 좋은 걸 사용해서 회 풍미를 더한다. 다만 간장은 ‘식당표’라 아쉬움이 없지 않다.
잠시 후 노릇하게 구워진 민어전이 나왔다. 허투루 부쳐낸 솜씨가 아니다. 민어의 품위(?)에 어울리는 부침 옷을 입히고 적당한 색으로 부쳐 나왔다. 전은 뜨거울 때 제 맛이 난다. 한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민어전을 베어 무니 담백한 살과 기름 맛이 잘 어우러진다.
민어탕은 기름지고 농후하다. 주키니 호박과 대파를 텀벙텀벙 썰어 넣고 끓여낸 탕은 노리끼리한 색을 띤다. 여름에 뜨거운 음식으로 복달임을 하는 이유는 허냉(虛冷)한 속을 데워 열고 더위를 몸 밖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열치열의 원리다. 그래서 민어탕을 선조들은 일품이라 칭했던 것이다. 올 여름 한번 쯤 민어 복달임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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