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헤드라인 뉴스

 지하철로 보는 상권|빌딩|재건축 뉴스

뒤로 리스트 인쇄
news only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

[이슈포커스]-6.25전쟁 바로알기(上-전쟁피해)

끔찍한 죽음이 일상…북한 김일성 침략야욕의 시작 6·25

전쟁 포성 멎은 지 불과 69년…“끔찍한 전쟁실상 제대로 알아야”

임현범기자(hby6609@skyedaily.com)

기사입력 2019-07-08 00:07:44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민족의 지도자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민족의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민족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의 발언이다. 최근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 6·25전쟁에 대해 전후세대들이 당시의 참상과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자유와 평화, 행복을 지키기 위해선 민족 최대비극인 6·25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킬 목적으로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은 북한 김일성이 일으킨 기습 남침전쟁이다. 이는 공개된 구소련 비밀문서와 북한 주재 소련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문서, 북한군 총사령부의 정찰명령 제1호 등에 명백히 드러나 있다. 지난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러시아 옐친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 당시 받았던 구소련 1급 군사기밀문서엔 ‘6·25전쟁을 일으킨 주범은 북한 김일성이다’고 기록돼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금주 이슈포커스 주제로 ‘6.25전쟁 바로알기’를 선정하고 세 편에 걸쳐 보도한다.

▲ 북한 김일성이 일으킨 기습 남침전쟁인 6·25전쟁을 제대로 알고 이러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가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청소년들이 6·25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
[특별취재팀=임현범 팀장, 문용균·나광국 기자]한민족 최대 비극인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불과 69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청소년과 학생들은 당시의 실상과 피해 정도를 제대로 알지 못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수백만명이 넘는 인명피해와 국토의 80%가 초토화된 6·25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알아야 자유와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과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공통된 견해다.
 
6·25전쟁 참전용사들은 6·25전쟁의 역사적 사실과 교훈을 알리기 위해 지금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북한 김일성이 일으킨 기습 남침전쟁인 6·25전쟁을 제대로 알고 이러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가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살상과 살인·파괴로 점철된 참혹한 전쟁이 두 번 다시 발생하면 안된다고 참전용사들은 입을 모은다.
 
동료의 죽음 일상된 참혹한 전쟁터…“피로 물들어 낙동강 붉게 보일 정도”
 
이두찬 대한학도의병동지회 감사는 지난 1951년 17살 나이에 학도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학도병 유격대 소속 제3유격대에 소속돼 인민군과 중공군의 거센 공세에 맞서 싸운 그는 6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못하고 있다.
 
“나이는 어렸지만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컸죠. 당시만 해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어요. 오히려 나이가 너무 어리면 참전할 수 없도록 막는 바람에 나이를 속여가면서까지 참전하려는 학생들이 넘쳐날 정도였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현재 대한학도의병동지회에 몸담고 있는 이 감사는 당시의 상황을 ‘지옥’에 빗댔다. 대유격전에서 아군 후방부대를 지원할 당시 전투가 한 번 치러지면 수십명이 넘는 전우가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처참한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천운이라는 게 그의 증언이다.
   
▲ 지난달 27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어벤져스 625人 청년단, 조국수호 순례 행사’가 열렸다. 참전유공자 및 학생, 시민 등 60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임덕식 참전용사, 이두찬 참전용사, 박옥선 참전용사, 김응보 참전용사 ⓒ스카이데일리
 
“학도병으로 참전해 아군 후방부대를 주로 지원했어요. 최전방이 아닌데도 전투가 한 번 벌어지면 40~50명이던 전우들 중 20~30명이 죽어나갈 정도로 참혹했죠. 총알이 머리 위를 지나가고 포탄이 옆에서 터지고 제정신이 아니였어요. 동족상잔의 비극은 두 번 다신 일어나선 안돼요”
 
지난 1951년 20살 나이에 군대에 입대한 참전용사 김응보 씨는 6·25 전쟁의 참상을 전국민이 좀 더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6·25를 바로 알리는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전후세대들이 전쟁의 실상을 알아야만 평화수호를 위한 대비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쟁의 참혹함을 말로 표현하려면 끝도 없어요. 전방에 포가 떨어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살아남았다는 게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깝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 때문에 죽었는지 당시 낙동강 물이 붉은 색으로 물들 정도였어요. 하도 피를 많이 흘리다보니 강물의 색이 변한거죠”
 
“전쟁이 일어난 지 69년이 지났어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전후 세대가 6·25 전쟁의 참상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는 건 정말 큰일이에요.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죠. 올바른 6·25교육을 통해 국가의 소중함과 전쟁의 참혹함을 아는 게 가장 우선시돼야 해요”
 
전쟁이 남기고 간 후유증…피투성이 병원엔 사지절단 환자 수두룩
 
6·25 참전용사들은 하나같이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털어놓으며 두 번 다시 발생해선 안 될 비극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북한군은 남한지역을 점령하면서 인민재판 등의 방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들의 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전쟁의 참상은 전선뿐 아니라 당시 참전용사들을 치료했던 병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부상자를 치료할 간호사가 없다는 소식에 지난 1953년 간호장교로 입대했던 안상정 예비역 중령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선에서 부상을 당한 수많은 군인들을 치료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단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 지난 1953년 간호장교로 입대했던 안상정 예비역 중령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선에서 부상을 당한 수많은 군인들을 치료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안상정 예비역 중령, 군복무 시절 사진들,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들 ⓒ스카이데일리 [사진=이태구 기자]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간호후보생에 지원해 처음 3육군병원(현·부산통합병원)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했어요. 피투성이인 환자가 넘쳐나는데 침대가 부족해 가마니 위에서 치료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던 기억이 나요”
 
“치료시설에 비해 환자가 너무 많다보니 환자의 상태를 보고 우선순위를 정해 치료했던 기억도 생생해요. 특히 병실은 부상당한 군인들의 피로 피바다가 되기 일쑤였죠.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 환자부터 아예 사지가 모두 절단된 환자까지 병원 현장은 또 하나의 전쟁터였어요”
 
“병원에 투입되기 전 간호 교육을 받았지만 처음 현장을 본 순간 무서워서 움직이질 못했어요. 커다란 강당에 환자들이 누울 수 있는 매트가 부족해 가마니를 깔아놨는데 그마저도 부족해 바닥에서 치료하는 경우가 많았죠. 혼자서 링겔 주사를 수십병 놓을 정도로 일손이 부족하기도 했어요”
 
“환자들의 상태도 참담 그 자체였어요. 팔다리가 절단되거나 아예 사지가 전부 절단된 환자들도 적지 않았죠. 상처가 다 나은 분들 중에선 절단된 발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없는 발이 아프다고 그렇게 느낌이 온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떨지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슬픈지 몰라요”
 
간호장교로 참전하며 조국수호에 힘쓴 안상정 씨는 올해 85세를 맞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가슴 속은 여전히 뜨거운 애국심으로 가득 차 있다. 6·25전쟁뿐 아니라 월남전까지 참전해 수많은 군인들로부터 백의의 천사라고 불렸던 그는 오히려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쟁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재앙이라고 강조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었던 게 저에겐 커다란 행운이었어요. 하지만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선 안돼요. 응급현장에서 호흡이 붙어있어도 살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부터 먼저 살려야 한다는 그 참혹함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전쟁은 결코 두 번 다시 일어나선 안돼요”
 
[임현범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 좋아요
    0

  • 감동이예요
    2

  • 후속기사원해요
    0

  • 화나요
    1

  • 슬퍼요
    1

<저작권자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의 집&빌딩

경기도 고양시에 집을 소유 중인 기업인들은 누가 있을까?
권희백
한화투자증권
기우성
셀트리온
한상훈
라이온코리아
뒤로 리스트 인쇄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독자의견 총 0건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스카이 사람들

more
“소원 이뤄주는 크리스탈 볼처럼 꿈 이루고 싶어요”
다섯 명의 소녀들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에너...

미세먼지 (2019-08-22 12:30 기준)

  • 서울
  •  
(양호 : 39)
  • 부산
  •  
(좋음 : 17)
  • 대구
  •  
(최고 : 10)
  • 인천
  •  
(보통 : 46)
  • 광주
  •  
(좋음 : 17)
  • 대전
  •  
(좋음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