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지뢰를 피해 걷는 자살대국 한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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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원의 ‘성경&경제생활’

안호원 필진페이지 + 입력 2013-04-27 15:13:37

▲ 深頌(심송) 안호원 목사(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내가 두려워 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 하는 그것이 내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이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욥기 3:25~26>

흔히 우리는 자살을 한 사람에게 “오죽했으면” 혹은 “목숨을 끊을 정도라면 무슨 일을 못하겠나?” 라는 말을 하며 모두가 죽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똑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산(生)자로서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없다.

흔히 사람들은 ‘배고파 죽겠다’ ‘아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는 고통의 과장된 표현으로 죽음을 빗대어 말을 한다. 죽을만큼 힘들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들어 배고프다고, 아프다고, 힘들다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단순하게 말하는 ‘과장된 표현’만은 아닌 것 같다. 어찌 보면 산다는게 ‘죽을 만큼’을 뛰어넘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같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빈곤의 차이를 뛰어넘어 외로움, 우울증에 시달리다 아까운 목숨을 끊는 사례도 늘고 있는 추세다.

얼마전 부산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6년전에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50대 남성 시신이 백골상태로 보일러실에 있었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보았다. 현관문 앞에는 각종 고지서와 독촉장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고 한다.

또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집주인의 요청으로 세입자 강제 퇴거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법원집행관이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이미 8개월전에 자살한 30대 여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여인은 15년전 가출한 뒤 가족들과도 연락이 끓긴채 혼자 살았던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또 서울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서 90대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곳에서는 얼마전에도 90대 노인이 자신의 집에서 뛰어내려 숨지는 등 세달동안 6명의 노인이 자살했다. 이외도 학업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또 모의고사 성적을 비관해서 자신의 아파트나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자살을 시도했던 10대들 중 절반이상(53.4%)이 성적·진학문제로 자살을 꾀하기도 했다. 이같은 10대들의 잇단 자살은 한마디로 우리사회의 입시위주 교육과 대학 서열화 등 제도가 빚어낸 ‘사실상 타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9>

물론 하나뿐인 목숨을 끊는 자살자에게도 성급한 면이 있지만 이 같은 현상은 이 사회가 ‘공정한 사회’ ‘평등의 사회’가 아니라 ‘허무한 사회’ ‘차별의 사회’가 돼 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사실 자살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8년째 이어가고 있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나라다. 높은 자살률도 걱정스럽지만 더 큰 문제는 자살률이 매년 증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는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의 세 배가 넘는다. 청소년 자살률도 부동의 넘버원이다. 심지어는 75세 이상의 노인층은 세 배가 아니라 8.3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노인 자살의 경우 그 첫째 이유는 빈곤이지만 그 빈곤이 고독으로 이어지면서 목숨을 끊는다. 돈이 있으면 자녀들이 찾아오기라도 하지만 돈이 없기 때문에 외면 당하고 마는게 냉정한 우리네 현실이다.

청소년의 경우도 왕따와 과도한 입시부담에도 영향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한국사회 공동체의 질(質)과 윤리·도덕에 분명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싶다.

우리 삶과 사회 곳곳이 지뢰밭이 아닌 곳이 없다. 한발 한발 내딛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다. 죽음과 사실상 동거를 하는 삶이란 죽음의 지뢰를 피해 걷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는 모른다. 지금 이 순간도 생사의 교차점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찌 대충대충 삶을 함부로 살수 있겠는가.

‘죽음은 끝이기 때문에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죽음에 대한 요즘의 인식을 바뀌게 하도록 정부와 지자체, 시민사회단체 등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체해 나가야 한다. 이웃, 가족, 친지와의 유대관계와 인연이 끊어져 버린 사회를 ‘무연(無緣)사회’라 했는데 우리 사회가 급속하게 그 길로 가는 건 아닌지 안타깝다.

버려진채로, 잊혀진채로 사느니 죽음을 택한 사람들, 한 사람이 절망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삶이 너무 힘들어 주체없이 흔들릴 때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어떤 충고나 조언이 아니다. 그냥 말없이 그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살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관심이다. 다행히 서울 자치구들이 자살 예방 사업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좋지만 인성교육을 통해 자살예방을 위한 ‘생명 존중’ 등의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사람을 잃는 것은 가장 큰 경제적 손실이기도 하다.

“고난 당한 것이 네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1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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