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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산책’

한라산 정상 등정 발목 잡은 제주 맛집

소고기선지해장국 전문 ‘미풍해장국’

동문시장 다양한 먹거리 테이크아웃 2차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2-26 09:09:13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제주도 오래된 숲과 천연기념물에 대한 라이다(LiDAR) 현장 실사(實寫)를 위해 3박 4일간 다녀왔다. 지난 주말 일정을 잡았데, 마침 한라산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래서 일행보다 하루 일찍 입도 계획을 잡았다.
 
채비를 등산용으로 바꾸고 오래 묵혀뒀던 중량급 등산화를 꺼냈다. 옷가지도 평상복이 아닌 등산복 위주로 채웠고 오랜만에 등산이라 심호흡도 한번 크게 했다. ‘맛있는 동네산책’, ‘머글랭가이드 제주’ 첫날 기록을 남긴다.          
 
올해부터 한라산 입산을 하려면 사전등록을 해야 한다. 이 사실을 등반 날 새벽에 알아서 부랴부랴 예약을 신청하느라 잠을 설쳤다. 지난 19일 입도한 제주의 날씨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고 바람 또한 잠잠했다. 한라산 등산을 한 지 10여 년은 된 듯해 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그래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정상인 백록담까지 오르진 못했다. 겨울 진달래대피소 마지막 통과시간인 12시까지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8시경 제주에 도착한 상태서 바로 성판악으로 달렸어야 했는데, 등산에 필요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아침밥을 먹은 게 화근이었다. 그렇다고 허기진 배를 이끌고 산을 오르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기에 피할 수 없는 식사였다. 개인적으로 제주 관덕정과 목관아를 좋아한다. 그래서 관덕정 근처에서 하차해 식당을 찾았다.     
 
2년 전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만 해도 전국 방방곡곡에선 문화관광 축제가 활발했다. 매년 음력설에 열리는 제주입춘굿축제는 전국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행사와도 같다. 축제의 주무대는 관덕정과 목관아다. 필자는 2019년 문체부가 지정한 문화관광축제 평가위원으로 찾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이 공간에 매료됐다. 그래서 이번에도 숙소를 관덕정 건너편 호텔에 잡았을 정도다.     
 
오직 한 메뉴 40년 전통 ‘미풍해장국’
 
▲ 제주 구도심 중앙로에 자리 잡은 40여 년 전통의 소고기선지해장국 전문집 ‘미풍해장국’. [사진=필자제공]
 
관덕정 건너편 골목에서 빗자루로 골목을 쓸고 있는 주민에게 아침식사될 만한 곳을 물었다. 흔쾌히 ‘미풍해장국’이 근처에 있다고 알려줬다. 이른 시간이라 조마조마했는데 가까이 식당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몇 발짝 가는데 돌려세우며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입맛까지 고려한 참 친절한 안내다. 제주 천주교중앙교회 건너편 아담한 이층집의 일층에 자리 잡고 있는 ‘미풍해장국’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에는 창업주의 사진이 들어있고 ‘代(대)를 이어 끓이는 정성’이란 문구가 들어있다. 또 ‘한국 맛있는 집 백파 홍성유 향토미각순례 777점’에 소개된 식당이라고 쓰여있다. 미풍해장국 본점이란 표기도 있다. 미닫이 유리 현관문에는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영업한다는 시간이 적혀 있다. 간판과 전면 유리에 상당히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오래된 식당에 가면 백파의 맛집 소개에 나왔다는 홍보문구가 눈에 많이 띈다. 백파는 소설가이자 미식가로 유명하다. 맛을 글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약관 시절 군대 있을 때부터 각종 기관지를 만들었다. 1957년 ‘한국일보’에 장편소설 ‘비극은 없다’로 등단한 후 문화예술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대중에게는 김두한의 일대기를 그린 ‘장군의 아들’이 영화화되면서 알려졌다.       
 
특히 식도락가로 유명한데, 전국 맛집을 소개하는 ‘한국 맛있는 집 OOO점’ 시리즈가 유명하다. 시리즈는 666, 777, 999, 1000, 1010점 등 그의 발길이 닿은 수만큼 늘어날 때마다 업그레이드되며 발간되다가 1999년을 1234점 마지막으로 미식여행이 끝났다. 백파가 마지막으로 소개한 제주시의 식당은 미풍해장국을 비롯해 탑동횟집군, 대우정, 우양식당, 전복횟집, 도라지식당, 물항식당, 만부정, 가본식당, 장춘식당, 박사자연산회센터, 초원, 중앙회관, 신대판초밥, 고향산천. 노블하우스, 비경회관, 풍전, 순두부촌식당, 제주한국관, 산양가든, 해선, 유빈 등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들 중 몇 집이 남았을지 자못 궁금하다.      
 
백파는 2002년 유명을 달리했는데, 그의 호는 흰머리 때문에 김동리 선생이 지어준 것이다. 과거 인터넷이 없던 시절 백파가 다녀간 곳은 ‘맛집’을 보장했다. 그래서 식당마다 신선로를 형상화한 마크가 그려져 있는 액자를 걸었다. 이번에 방문한 ‘미풍해장국’에도 어김없이 그 액자가 홀 중앙 벽에 걸려있다.     
 
‘미풍해장국’은 단일메뉴집이다. 메뉴가 오로지 해장국 한 종류다. 대신 해장국의 변주가 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순댓국집에서 접하는 ‘순대만’, ‘순대 빼고’와 흡사하다. 손님들 요구사항을 듣고 있자니 이곳에서는 ‘콩나물 빼고’, ‘다대기 따로’, ‘매콤하게’ 등의 별도 주문이 많다. 이밖에도 선지나 소고기를 더 많이 달래거나 빼 달라는 게 가능하다. 사실 다양한 주문대로 뚝배기 별로 담아내는 일이 번거로울 만도 한데 최대한 손님 요구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장사 잘되는 노포와 맛집이 된 저력이 아닐까 싶다.      
 
해장국에 들어가는 채소로 콩나물과 배추 양이 적지 않다. 특이하게도 무가 들어가지 않는다. 제주는 주요 무 산지로 유명하다. 특히 월동무(겨울무)가 맛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무가 들어 있지 않은 해장국이라니. 처음엔 의아했지만 콩나물과 배추의 채수도 무 못지않을 것이고 이 집만의 레시피이기 때문에 존중하기로 했다.     
 
고추기름이 잔뜩 둘러진 채 나온 해장국의 이름을 굳이 짓자면 소고기선지해장국이다. 질 좋은 양지와 고소한 선지가 풍성한 맛을 느끼게 넉넉히 들어갔다. 당면도 들어 있어 성인 남자가 밥을 말아먹으면 포만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후춧가루가 적지 않게 들어가서 맛에 상당 부분 관여한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고 하신 분의 걱정이 후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한 맛이다. 고기 국물 육향을 느끼길 원한다면 후춧가루도 빼 달라고 하는 것이 좋다.     
 
기본 반찬으로 국물이 물김치만큼 자박한 깍두기와 갓김치, 통 청양고추가 제공된다. 양념으로 다진 마늘이 한 숟갈이 따라 나온다. 채수와 육수가 만나 묵직한 국물 맛을 내는 해장국에 다진 마늘을 넣으면 맛이 상당히 변한다. 따라서 마늘을 넣지 않은 상태에서 국물 맛을 본 후에 적당히 첨가해 가며 맛을 찾아가는 것도 미식을 즐기는 방법이다. 자박한 깍두기 국물은 기름진 국물 맛을 씻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또 한잔씩 즐길 수 있도록 잔막걸리를 파는데, 이는 반주의 즐거움과 더불어 깍두기 국물처럼 입안을 개운하게 해 준다.     
 
오전 8시 반 무렵 식당 안은 이미 여러 테이블이 차 있다. 입식과 좌식이 반식 나눠져 있는 홀은 후루룩 쩝쩝 해장국에 밥 말아먹는 소리로 들어차 있다. 오전 5시부터 문을 연다고 하니 일찍 일을 시작하거나 새벽에 일을 마치는 사람들에겐 보석 같은 곳일 듯하다. 대신 오후 3시까지 영업하면서 큰 욕심을 덜고 운영의 묘를 살렸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곳에 40여년 된 본점이고 가맹점이 서울에도 서너 곳, 전국에 꽤나 있다.     
 
2차는 동문시장 메뉴로 테이크아웃
 
▲ 동문시장은 저녁이면 불야성을 이룬다. 청년들이 운영하는 점포와 기존 점포가 조화롭게 성장하는 곳이다. [사진=필자제공]
 
여유 있게 식사를 즐기다 보니 한라산 등산을 위해 성판악에 닿아야 하는 시간이 촉박했다. 서둘러 버스정류장에 갔지만 아뿔싸 버스 배차 간격이 제법 길다.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옛날 빠르게 산을 올랐던 한물간(?) 추억을 믿고 예약시간인 10시를 조금 넘겨 가까스로 성판악에 닿았다. 사전 예약한 사항을 확인하고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성판악 입구에는 17일부터 내린 눈이 제법 쌓였다. 하늘은 더 이상 파랗다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푸르렀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눈 쌓인 백색의 대지, 제주라서 가능한 약간의 녹엽, 하늘로 닿으려는 앙상하고 간절한 나뭇가지 등이 어우러진 천혜의 겨울 한라산 경관이 펼쳐졌다.      
 
경관 구경하느라 두리번거리랴 사진에 담기 위해 서다 가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진달래대피소를 12시에 통과하지 못해 정상 행은 무산됐다. 진달래대피소에는 많은 등산 인파가 쉬고 있었다. 현무암으로 만든 화장실 남성 출입구는 지난 폭설로 파묻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동안 등산을 멀리해서 무거워진 뱃살과 약해진 다리, 무거운 등짐에게 조금씩 책임을 떠넘기고 하산 길에 올랐다.         
 
대신 사라오름 가는 길 산정호수와 사라오름전망대서 제주의 남녘을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산 정상이 주는 성취감과 정상을 포기하고 경관을 얻은 만족감은 분명히 교환가치가 있었다. 사라오름전망대서 바라본 풍광 중에는 다음날부터 이틀에 걸쳐 찾아갈 사려니숲 붉은오름 한남시험림 삼나무 숲과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가 들어 있음 직했다.     
 
성판악, 진달래대피소, 사라오름 전망대를 정확히 왕복 6시간에 다녀왔다. 하산 길 성판악휴게소 부근부터 눈이 녹기 시작해 바닥이 질척이기 시작했다. 관덕정 앞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동문시장 앞에서 내렸다. 시내에서 눈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었다. 관덕정과 동문시장은 가까이 접해 있다. 저녁은 식당에서 혼밥 대신 동문시장표 메뉴를 사 가지고 와서 숙소에서 만찬을 즐겼다.     
 
마침 금요일 밤이어서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시장을 빼곡 메웠다. 동문시장 8번 출입구는 청년들이 운영하는 포차형 테이크아웃 매대가 양옆으로 기찻길처럼 나란히 형성돼 있다. 가성비 좋은 랍스터 구이, 전복 김밥, 흑돼지 전복 버터구이 등을 판다. 올레수산, 서울수산 등의 횟감도 관광객들에겐 인기가 많다. 필자는 전복김밥과 광어‧참돔회를 싸들고 숙소로 왔다. 제주 출신(?) 소주 한라산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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