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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영원한 챔피언’ 알리의 메시지를 기억하라

‘영원한 챔피언’ 알리의 메시지를 기억하라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4-08 09:10:41

 
▲박병헌 전 세계일보 체육부장
/흑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글로브 껴
/흑백차별에 분노 금메달 강에 던져
/파킨슨병 앓으며 올림픽 성화대 올라
/“인종차별 말라” 세계에 던진 메시지
  
 
혹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영원한 챔피언’으로 거듭난 프로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20세기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꼽힌다. 단지 복싱뿐 아니라 모든 프로 스포츠 분야를 통털어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흑백 인총차별이 극심한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알리의 본명은 캐시어스 클레이 주니어였다. 극심한 인종 차별대우를 받고 자란 소년 알리가 권투에 입문한 것은 우연이었다. 열두 살 때의 일이다.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자전거를 밖에 세워두고 극장에 들어갔다가 나와 보니 자전거가 없어져 버렸다. 알리는 경찰에 신고하며 “범인을 잡으면 주먹으로 한방 먹이겠다”고 했고, 경찰관은 “한방 먹이는 것을 배우려면 체육관에 가라”고 농담을 던졌다. 어린 알리는 무릎을 탁 쳤고, 차별대우 받는 흑인이 살아갈 길이란 어쩌면 권투밖에 없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글로브를 끼기 시작했다. 사각의 링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한 것 아닌가. 단순히 자전거 도둑을 혼내주려던 계획은 큰 포부로 바뀌게 되었고, 훗날 알리가 최고의 세계 챔피언이 된 단초였다.
 
최대 강점은 불같은 집념
  
알리의 최대 강점은 집념과 오기였다. 미치지 않으면 절대 큰 성과를 거둘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권투로 가득 들어찼다. 밥 먹을 때도 권투, 학교에 갈 때도 권투, 공부 시간에도 권투, 화장실에 앉아서도 그는 팔을 뻗으며 잽을 날리는 연습을 하곤 했다. 권투 생각만 하다 보니 학교 성적은 하위권이었고, 반면 권투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18세에 아마추어 선수로서 180승을 올린 그는 1960년 로마올림픽의 미국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됐다. 알리는 올림픽에서 발군의 기량을 뽐내며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고, 미국의 영웅이 되었다. 알리가 금의환향하자 고향은 축제분위기였다. 그의 집 현관은 성조기로 뒤덮였고, 페인트공인 아버지는 성조기 색깔을 본 따 계단을 빨간색과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칠하여 축제분위기를 연출했다. 알리는 잠을 잘 때도 한동안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잤고, 길거리를 다닐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올림픽 금메달이 너무나 자랑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광과 기쁨은 잠시였다. 햄버거 집에 들렀다가 식당 주인이 큰소리로 “깜둥이한테는 음식 안 팔아”라고 한 말에 알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한 번은 백인 불량배들한테 금메달을 빼앗길 뻔한 사건도 있었다. 알리는 주먹으로 그들을 물리치고 난 뒤 곧바로 오하이오 강으로 가서 미련 없이 금메달을 물속에다 던져버렸다. 넓고도 푸른 강물은 흑백을 차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금메달까지 내던진 알리는 어린 시절 일찌감치 꿈꾸었던 챔피언이 되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알리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고, 당시 최강자였던 핵주먹 소니 리스턴과의 타이틀전을 치르게 됐다. 내로라하는 도전자들은 모두 경기 초반에 KO패를 당했고, 알리도 1회전을 버티면 잘한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알리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특유의 권법으로 리스턴을 압도했고, 7회전 시작종이 울렸으나 챔피언은 나오지 못해 알리의 TKO승으로 끝났다. 1964년 2월 알리의 나이 22세였다.
 
반전‧평화주의자, 징집 거부
 
리스턴에게 통쾌한 승리를 거둔 알리는 정신적인 스승인 흑인해방 운동가 맬콤 엑스처럼 자신의 이름을 ‘캐시어스 엑스’라 부르기로 했다. 그는 당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이슬람교의 분파이자 운동조직인 이슬람국가운동에 참여하고 있었고,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자신의 이름 또한 캐시어스 클레이에서 무하마드 알리로 바꿨다.
  
1964년 리스턴과의 재경기에서 1회 KO승을 거두는 등 3년 동안 모든 도전자들을 물리쳤지만 알리는 더 무서운 적과 싸워야 할 운명이 닥쳐왔다. 미국 정부는 알리를 베트남전(戰)에 보내기 위해 징집영장을 보냈고, 반전‧평화주의자인 그는 이를 거부했다. “나를 깜둥이라고 무시하지 않는 베트콩을 왜 죽여야 하는가”라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알리는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했고, 법원에 기소되어 징역 5년의 실형을 받았다. 3년 세월을 법정에 불려 다니며 권투를 못한 알리에게 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나이 30세를 바라보는 알리는 보통 사람 같았으면 힘든 운동을 접을 수도 있었겠으나 다시 글러브를 끼었다. 자신의 신념과 흑백 차별 금지라는 메시지를 만방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1971년 조 프레이저와의 재기전에서 패했지만 알리는 좌절하지 않았고, 3년 뒤 결국 프레이저를 누르고 재기에 성공했다. 이제 프로 복싱의 양대 산맥인 세계복싱협회(WBA)와 세계복싱평희외(WBC) 통합 세계 챔피언에 오르기 위해 1974년 10월 막강한 주먹의 혈기왕성한 26세의 조지 포먼과 전성기를 지난 32세의 알리가 아프리카 자이르의 킨샤사에서 맞붙었다. 불꽃 튀는 접전 끝에 알리는 8회에 카운터 펀치를 작렬시켜 포먼을 잠재울 수 있었다.
 
알리의 쾌속행진은 계속되었지만 해가 갈수록 그의 권투인생도 저물어갔다. 알리는 1978년 레온 스핑크스에게 타이틀을 뺏겼다가 다시 탈환하지만 1980년 래리 홈즈에게 지면서 타이틀을 영원히 잃게 되고, 1981년 11월 트레버 버빅과의 경기에서 패배한 것을 끝으로 글러브를 벗었다. 통산 56승 5패, 20년 동안 세운 이 기록에는 그 누구의 것과도 다른 시련과 아픔이 스며 있었다.
 
권투 후유증 파킨슨병 걸려
 
인종차별에 맞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운동에 앞장서는 등 종교적·정치적 신념을 지키는 삶을 살았던 알리는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면서도 인종차별 해소와 인류 평화 증진에 앞장섰다. 1998년 유엔개발계획(UNDP) 친선대사로 임명돼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인간의 평등성과 존엄성을 전파했고, 2002년 미국 유엔협회가 선정한 세계지도자상에 이어 2005년엔 독일 유엔협회가 선정한 오토 한 평화상을 받았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스포츠 스타로서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른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알리는 근대올림픽 100년을 맞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성화 점화자로 우리 앞에 다시 섰다. 미국 남북전쟁 때 노예 해방을 반대하던 남군의 사령부가 위치해 있던 애틀랜타는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도시 중의 하나다. 평생 흑백 차별 폐지 운동에 앞장섰던 알리의 상징성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성화 점화에 전 세계가 감동
 
높은 계단을 통해 성화대에 힘겹게 오른 알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고, 모든 사람들은 영웅의 어설픈 거동 하나 하나에 숨죽였다. 그의 옛 모습을 상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파킨슨병 환자로서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하기도 했다. 파킨슨병은 권투를 오래 한 결과였고, 알리의 열정이 낳은 후유증이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그는 성화를 간신히 지핀 뒤 성화를 하늘 높이 치켜 올렸다. 그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다. 대중 앞에 선 그의 마지막 용맹스럽고 자랑스러웠던 무언의 메시지는 이 세상에 인종차별을 해소하자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스포츠 스타는 5년 전 고인이 된 알리다. 미국의 AP통신, 뉴욕 타임즈 등 많은 언론 매체들은 혹독한 시련을 받았지만 신념이 있었기에 버틴 알리를 20세기 최고의 권투선수이자 최고의 스포츠맨으로 선정, 추앙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요즘에도 여전히 아시아인을 노상에서 폭행하고, 흑인을 살해하는 등 인종 차별적인 행위가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알리를 존경하고 추앙하면서도 왜 알리의 메시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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