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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이건희 컬렉션, 쪼개지는 말자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5-12 09:07:13

 
▲홍찬식 칼럼니스트(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지자체들 서로 명분 내세워 치열한 유치 경쟁
/대통령 나서지 말고 좀 더 기다렸어야 했다
/‘문화 균형발전’ 내건 이상 수도권은 어려울 듯
/혹시나 정치 논리로 흩트려 놓지 않을지 우려
/유혹 생기더라도 결집된 형태로 한 곳에 둬야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남긴 ‘이건희 컬렉션’을 두고 전국에서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지금까지 ‘이건희 미술관’ 유치 의사를 밝힌 지자체만 해도 부산 광주 대구 수원 창원 의령 진주 세종 등 9군데에 이른다. 이와 별도로 일부 문화계 인사들은 국립근대미술관을 신설해 이 회장이 기증한 근대미술 작품 1000여점을 따로 전시하자고 나섰다.
 
이들의 유치 명분은 각각 그럴 듯하다. 부산은 문화의 서울 집중 해소, 광주는 ‘예향(藝鄕)’, 진주는 영호남의 중간 위치, 수원은 삼성과의 인연 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의 솔직한 본심은 ‘업적주의’다. 유치에 성공한다면 자치단체장의 재임 중 업적으로 이만한 게 없다. 한국 최대 규모의 미술품 컬렉션을 자기 지역으로 갖고 온다는 것은 두고두고 칭송 받을 일임에 틀림없다.
 
프랑스의 첫 좌파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재임 1981-1995년)은 경제 등에선 혹평을 받지만 문화 쪽으로는 아직도 이름이 자주 거론된다. 프랑스 파리의 관광 명소인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박물관의 피라미드 등 여러 문화시설을 그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파리 상공에 몸소 헬리콥터를 타고 올라가 문화시설들의 정확한 위치를 물색했다고 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4000억 원의 예산으로 ‘박물관 미술관 도시 서울’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것은 미테랑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앞으로의 문제는 그럼 어느 지역으로 ‘이건희 미술관’을 보내느냐다. 서로 달라고 아우성치는 마당에 정부로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택된 지자체는 환호성을 올릴 테지만 탈락한 나머지 지자체들은 몹시 불만스러울 것이고 해당 주민들도 기분 좋을 리 없다.
 
이건희 회장 유족들은 2만3000점에 달하는 미술 소장품을 대부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다고 밝혔다. ‘이건희 컬렉션’의 처리 문제는 시간을 두고 두 박물관 미술관의 판단에 맡겼으면 됐을 것을 문재인 대통령이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꼴이 됐다. 최고 권력자가 ‘별도의 장소’를 거론한 것은 물론 선의였다고 이해하지만 이 말을 꺼내는 순간 정치 이슈가 되어버렸다. 이건희 유족들도 이런 상황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균형 발전’이라는 키워드다. 한번 이 프레임에 갇히면 다른 의견은 단번에 힘을 잃고 만다. 미디어 이론에서 어느 특정한 틀에 가두어 버린다는 ‘프레이밍’의 괴력이다. 마음에 안 드는 세력에 대해 어느 언론이 ‘친일’이나 ‘독재’ 프레임을 덧씌워 보도하면 누구도 편들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몇몇 지자체들이 ‘문화의 균형 발전’을 내걸고 나온 이상 이건희 미술관의 위치는 적어도 수도권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따지고 보면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그렇고 미술품 수집이라는 것도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출발해 점차 민주화되는 길을 걷고 있다. 예술품 수집은 과거 왕과 귀족의 고급한 취미 활동이었다. 그러다가 프랑스혁명 직후인 1793년 문을 연 루브르 박물관이 세계 최초의 공공박물관이 됐다. 시민혁명의 열매로 대중들이 수준 높은 예술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루브르와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인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도 처음에는 왕과 귀족의 전용 시설이었다.
 
특히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은 미술품이 정치권력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중국 문명의 정수(精髓)를 담은 고궁박물원의 컬렉션은 60만여 점에 달하는데 원래는 베이징 자금성 안에 있던 청나라 왕조의 것이었다. 청나라가 붕괴된 이후 중국 국민당 정부가 관리하던 유물들은 1931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자 난징과 충칭 등 후방으로 옮겨졌다. 이후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기 직전 대만으로 이송된다. 전쟁 통에 서두르느라 전체를 다 갖고 가지 못하고, 뛰어난 유물만 골라갔다고 한다. 당시 대만 측이 남긴 기록이 이채롭다.
 
‘예로부터 왕이 천도(遷都)할 때는 보물도 함께 옮겼으며 소장한 도서문(圖書文)도 함께 옮겼다. (명나라와 청나라) 고궁의 정품(精品)이 옮겨왔으니 이 역시 주나라(중국 옛 왕국) 관리가 보물을 옮긴 이치와 같다.’ 중국 국민당 정부가 전쟁의 와중에 이리저리 문화재들을 갖고 다니다 결국 대만까지 옮겨놓은 것은 자국의 중요 문화재와 정치권력을 동일시하면서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현대에 들어서 예술품 수집의 주체는 정치 권력자에서 경제적 부유층으로 넘어갔고 국가별 보유량은 국력의 잣대로 자리매김 됐다. 그렇다고 해서 미술품 컬렉션을 거북한 시선으로 바라봐서는 안 될 일이다. 구입 자금을 아낌없이 쏟아 일군 이건희 컬렉션은 개인적 열정과 안목의 산물이면서도 한국의 국가 수준이 그만큼 높아진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의 사후에 수집품들은 이제 대중의 손으로 넘어왔고 누구나 원하면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세월이 걸릴 뿐이지 부(富)의 문화유산들은 이런 식으로 환원되는 경우가 많았다. 큰 틀에서 문화의 민주화라고 볼 수 있다.
 
이건희 미술관 위치를 놓고 설마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은근히 마음에 걸리는 게 한 가지 있다. 정부가 혹시라도 정치 논리로 미술관 입지를 여러 군데로 쪼개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인기 잃는 일만큼은 극도로 기피해온 그들의 행적을 보면 가능성이 전혀 없지도 않다.
 
미술관의 힘은 대만의 고궁박물원처럼 특정 장소에 집결된 한 몸집으로 자리 잡고 있을 때 커진다. 문화가 논리나 이치보다는 매력과 존재감이라는 추상적 형태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대영박물관의 소장품은 800만점,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300만점에 이른다. 방문객들은 그 숫자가 던지는 엄청난 흡인력에 압도되어 멀리서 일부러 찾아가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이건희 컬렉션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다. 이마저 몇 곳에 나눠버리면 이도저도 안 된다. 여럿을 만족시키려는 유혹을 꾹 참고 어느 한 곳에 보내 그 지역의 진정한 명소가 되도록 해야 한다. 문화의 민주화도 정치와 마찬가지로 절제의 미학이 필요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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