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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의 음양오행 경제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세상을 만났으니

인간관계와 책의 세계는 중중(重重)하고 무진(無盡)해

그토록 찾던 것을 포기하려는 순간 답을 얻는 오묘함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6-30 10:03:28

 
▲김태규 명리학자·칼럼니스트
책 속에서 또 책을 만나게 되니
 
한 권의 소설은 한 권의 소설로 완결이지만 지식을 다루는 책을 읽다 보면 책 안에서 또 다른 책을 만나게 된다. 아니, 소개받게 된다. 가령 최근 다시 펼쳐보고 있는 “영국 해군지배력의 역사”란 책, 영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가 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참조하거나 인용한 책들을 널리 소개하고 있다. 으레 학자들의 책이란 게 다 그렇지만 그러다 보면 만나보고 픈 책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또 다시 그 책을 찾아 나서게 되기도 한다. 폴 케네디란 사람이 중개인이 되어 또 다른 책과 조우하게 된다. 최근엔 세상이 좋아져서 저자와 제목만 구글 검색하면 아마존에서 팔고 있거나 더러 운이 좋으면 책의 pdf 파일을 만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아마존 책 소개란을 통해 관련된 다른 책들도 소개받게 된다.
 
이는 마치 사람의 교제와도 같다. 친한 이가 사람을 데려와 함께 자리를 했는데 나중에 그 소개 받은 사람과 친해지기도 하고 또 그 바람에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과도 알고 지내는 것과 같다.
 
무얼 해도 중중(重重)하고 무진(無盡)하니
 
인간의 만남과 교제가 중중(重重)하고 무진(無盡)하듯 책의 세계도 그렇다.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도가 아니라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끄집어내는가? 하는 이유에 대해선 조금 기다려주시기 바란다. (원래 글을 이렇게 쓰면 읽는 이의 흥미가 떨어져서 피해야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한 때 삶을 적극적으로 낭비해보려는 의지를 가진 적도 있었으니
 
예전에, 상당히 오래 전에, 정확하게 얘기하면 2002년 무렵의 한 때, 나 호호당은 도교(道敎)의 팔만대장경에 해당되는 도장(道藏)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죽는 날까지 세월을 보내볼까 하는 구상을 꽤나 진지하게 했다.
 
사주 가게를 하고 있으니 겨우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이에 틈이 날 때마다 저 방대한 도장을 번역한다. 뭐 이런 아이디어였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나가서 사진을 찍거나 드로잉과 수채 스케치를 하면서 살아볼까 했다.
 
텍스트는 중국어 위키에 들어가면 전부 다 올라와 있으니 별도로 구매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도교의 경전을 집대성한 도장(道藏) 역시 너무나도 엄청난 분량이라 계산해보니 살아생전에 나 혼자 다 하긴 어렵겠다 싶었다. 물론 꼭 다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울러 다 한다고 한들 그걸 책으로 출간해 줄 사람이나 출판사가 있을 턱도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해보고 싶었으니 그 이유가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웃긴다. 그런 일이 삶을 낭비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예 작정하고 낭비해보는 것 또한 내 개인의 철저한 자유라는 사실에 묘한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까불다가 왕창 망했다. 그렇다고 해서 장차 멋지게 재기할 것 같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60년에 걸친 순환이론, 나중에 자연순환운명학이라 이름 붙인 이론체계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 여부는 더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기에 당시 내게 있어 미래란 그저 무망(無望), 그 자체였다.
 
희망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암울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편한 점도 적지 않다. 잃을 것이 많지 않은 자는 강자라 해도 말이 되기 때문이다. 당시 노장(老莊)사상을 새롭게 해석한 회남자(淮南子)란 책을 열심히 읽던 시절이라 더더욱 그런 마음이었다.
 
포기할 수 있는 자유 또한 자유의 한 양식인 것이니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면 가장으로서 절대 모자람이 없다. 그럴진대 장차 남은 삶을 무엇으로 놀아볼 것이냐 하는 것이 큰 과제였는데, 이왕 그럴 것 같으면 철저하게 마음 끌리는 대로 해보고 싶었다. 이 또한 자유의 한 스타일이란 생각. 그 바람에 도장(道藏)을 번역하면서 보낼까 하는 생각이 진지해졌다.
 
누군가 그런 거 왜 하시오? 하고 물을 것 같으면 그냥 합니다, 하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잖소! 하고 대답할 요량도 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의무라든가 미션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살 뿐이오, 하는 심정이다.
 
2005년 무렵, 그러니까 나 호호당의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春分(춘분)의 때에 정말이지 사는 게 싫었다.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책을 30분만 읽어도 눈이 시리고 눈물이 나서 읽을 수 없었고 천식이 심해서 편히 누워서 잘 수도 없었다. 누굴 탓할 수도 없고 그저 내 탓임을 알고 나니 그냥 입 꽉 다물고 세월을 보내고자 했다.
 
시간의 누적은 무엇이든 바꾸어놓는다
 
그런데 세월, 그러니까 시간의 누적은 무엇이든 바꾸어놓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신논현역 근처 오피스텔을 작업실로 해서 지내고 있다, 올해 10월이면 만 20년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도교의 경전을 몽땅 송두리째 번역하겠다는 생각은 가신 지 오래이다.
 
이제 글머리에서 책을 통해 책을 만난다는 얘기, 그건 마치 사람의 교제와도 같다는 얘기를 한 이유에 대해 털어놓을 때가 되었다.
 
자연순환운명학을 연구해오는 과정에서 이 방면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게 도장 번역에 대한 생각을 그만 두게 했다.
 
형식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지만 그 본질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가르치다 보니 실로 다양한 사람과 통성명을 하고 서로의 사연과 역사, 희망과 고민에 대해 말하고 되고 듣게 되다 보니 정(情)도 생긴다.
 
그게 더 시간이 지나자 이젠 혼자서 작업실에 틀어박혀 번역만 하고 있을 순 없게 된 것이다. 그것보다는 역시 사람은 사람을 만나는 게 더 흥미롭고 재미가 있으며 때론 유익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이에 어느 날 그간의 번역 파일들을 간단하게 ‘DELETE’ 키로 날려버렸다. 수년간의 노고가 사라지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굿 바이!
 
포기하려 했더니 얻게 되는 이 묘한 세상
 
게다가 2007년의 어느 날 아!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운명의 법칙은 그저 신기루일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으로 인해 이제 내려놓자! 하고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불과 며칠 뒤 답을 얻었다. 포기하려는 순간 답을 찾았다. 아슬아슬했다.
 
그리고 사는 게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겁고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역시 즐거워졌다. 사람과의 교제만이 아니라 숨 쉬고 하늘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겨워지기 시작했다. 2007년은 60년 순환에 있어 청명, 즉 한 해로 치면 4월 5일경의 때와 같았던 것이고 그로서 回春(회춘)이란 게 무엇인지 몸으로 체험했다.
 
하산(下山)의 때
 
내 스스로 2007년 무렵을 하산(下山)의 때로 받아들이고 있다. 높고 깊은 산중 궁벽하고 후미진 동굴 속에서 벽을 마주한 채 보내던 세월을 그만 하고 산 밑으로 내려온 셈이었다.
 
사실 후미진 동굴 속에서 내가 대하고 있던 벽 앞엔 모니터가 한 대 있고 그 모니터 속엔 ‘구글’이란 신기한 놈과 ‘위키피디아’란 놈이 살고 있었다. 그를 통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일생에 걸친 스토리들을 검색하면서 참구(參究)할 수 있었다. (자연순환운명학이 탄생함에 있어 절대적인 기여를 구글과 위키피디아가 한 셈이다.)
 
사람을 만나면 또 다른 사람을 만나듯이 구글과 위키피디아 속에 들어가면 또 다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스토리, 사연들을 접할 수 있었고 나중엔 너무 확장이 되는 바람에 멈추어야 할 때도 있었다. 책 역시 그렇다. 평생 책 속에서 책을 만나고 다녔다.
 
그러다가 유튜브를 통해 수채화 고수들의 시범을 통해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재미난 건 유튜브 속의 고수들이 보여주는 시범은 일종의 쇼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마치 쉽고 자연스러운 것인 양 보여주지만 그 속엔 그들의 평생에 걸친 학습과 연마가 숨어있다. 그러니 기술은 결국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지 배우는 것이 아니란 사실.
 
모든 것이 모든 것을 의지해서 존재하는 이 신묘한 세상
 
겨울 동안 수채화 종이 문제로 근 6개월 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종이를 구해서 간만에 그렸더니 그간 습득한 것들이 전혀 되질 않았다. 너무나도 어색했다. 깜짝 놀랐다. 아니 그렇다면 그간에 터득한 것들은 다 어디 갔단 말인가? 싶었다.
 
이에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보름 정도 열심히 그려보니 다시 내 손 끝에서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문득 알게 되었다. 그림의 기술이나 기법이란 것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에 대해. 그건 내 머리 안에 머무는 것도 아니요, 손끝에 있는 것도 아니란 사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림 안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란 것을 알았다. 종이와 물감, 붓, 그림을 그리려는 흥미와 의지, 아이디어, 그리고 손과 눈을 통해 만들어지는 그림, 그 모든 것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을 의지해서 존재하고 서로가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는 생각.
 
서로 싸우고 경쟁하고 또 사랑하고 아끼면서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듯이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를 통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마무리하려는 이 글 역시 독자들이 있기에 글을 쓰는 나 호호당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오늘 다소 두서가 없는 글을 쓰고는 있지만 과연 독자들이 읽고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인지 그 또한 전혀 알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세상은 어떤 일과 것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시공간, 그러니 세상은 그저 중중(重重)하고 무진(無盡)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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