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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대상을 재확립해야 할 때가 왔다

빌 게이츠는 지금 무엇에 충성하고 있는가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7-16 10:15:35

 
▲김성수 작가·마음과학연구소 대표
 빌 게이츠의 충성 대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가까운 쪽부터 돌아보는 게 순서일 것 같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당신은 지금 어떤 것에 대한 충성심(忠誠心)을 갖고 있기 십상이다.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혹은 ‘신하가 임금을 대하는 지극한 마음’ 정도로 이해되는 이 언어의 시대적 처지는 고루하고 낡아서 너덜거리는 천쪼가리를 연상시킨다. 그만큼 낡은 언어이기도 하지만, 그 언어의 의미에 담겨 있는 정신은 누구에게든 살아 있다.
 
전 국민이 ‘충성’이라는 표현에 젖어 살다시피한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청소년기였던 베트남전이나 새마을운동, 남파간첩 소식이 걸핏하면 지면을 채우던 시절에 득세하던 언어였기 때문이다. 이제 이 단어는 어쩌면 군영 저 안쪽, 몸과 총대를 굳세게 세우면서 차렷 총! 자세를 취할 때조차 예전처럼 기세가 강력하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되는 세상이 된 것이리라.
 
결국은 심각한 스토커 사건으로 종결된 남녀 관계가 있다. 상대가 원하지 않은 애정공세의 흔적을 모바일 폰에 여러 차례 남김으로써 사법조치에 처해지는 물증이 됐다. 남성은 이 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 사랑한 나머지 그녀에게 정성을 다했을 뿐인데,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냐! 뜻풀이만 놓고 보면, ‘충성’은 이 남자와 같은 경우에도 아귀가 잘 맞는 언어 같기도 하다. ‘지극 정성으로 그녀를 마음의 중심’에 둔 사내의 태도에 걸맞기 때문이다.
 
상대가 원하지 않은 사랑을 하다가 쇠고랑을 차는가 하면, 집체화된 ‘충성’도 있다. 대한민국은 그런 시대를 지나 그 시대에 대한 엄정한 질책과 반성의 시간을 거치고 있다. 역사든 개인이든 미래를 위한 최고의 동력은 ‘있는 그대로 돌아보기’라는 점에서 요즘 같은 카오스적 반성 또한 언젠가는 국가 역량의 근육이 되리라는 생각도 있다.
 
더 큰 가치를 보면 내 욕망이 보인다
 
이유야 어찌됐든 그 흔전만전했던 국가를 위한 ‘충성’의 외침은 어디로 갔을까. 소멸된 태풍처럼 동해안으로 빠져나간 것일까. 아니다. 우리나라가 몇 십년에 걸쳐 ‘전체화〉산업화〉민주화〉개인화〉파편화’의 수순을 밟아오는 동안 각자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또한 조건에 따라 방향을 바꾸었을 터이다. 방향 전환은 있었을지언정 충성의 질량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충성이라는 표현 속에는 애착이나 집착의 의미가 눌어붙어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개인의 가치관이나 권리의식이 상대적으로 강고해진 사회가 됐다. 그러다보니 개별화된 충성 대상이 어떤 가치보다 드높다. 충성 시점도 자꾸 달라진다. 어떤 이는 돈에 충성하고, 어떤 이는 음악에 충성하고, 어떤 이는 이성에게 충성하고, 어떤 이는 자녀에게 충성한다.
 
빌 게이츠는 2010년도 즈음에서 자신의 충성 대상을 ‘국가’에서 ‘지구’로 격상시킨다. 그가 지칭하고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지구의 실상은 하루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곳이다. 그가 이 지구를 위해서 목표 삼은 수치는 온실가스 배출량 ‘제로(0)’. 제 아무리 세계적인 부호지만 달성하기 요원한 목표다. 하지만 그는 기후변화를 위한 재단을 만들고, 그 재단을 통해 자신의 주식과 재산을 기부하기 시작한다. 공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기업에 투자하고, 시카고의 저렴한 주택에 청정에너지를 설치하는 비영리단체를 지원하거나 제로 탄소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람의 마음은 무엇인가에 끌리게 마련이다. 그 끌림의 대상을 선명하게 알면서 가는 경우도 있고 모르는 채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빌 게이츠의 마음을 끌고가는 대상은 지구다. 나같은 서민이나 세상의 부자들이 알게 모르게 충성하고 있는 ‘자녀⋅재산⋅명예’ 등 개인적 욕망에 머물러 있지 않는 차이를 보인다.
 
우리 또한 개인의 욕망보다는 더 커다란 가치를 위해 불철주야 뛰었던 시절이 있다. 앞서 밝혔듯,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어려운 시기에 ‘국가’라는 가치에 충성했었고 그 성과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개인이든 국가든 처해있는 경제 상황과 ‘지극한 마음을 바치는 대상’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기억을 우리는 몸소 체험했다. 주린 배를 움켜쥐면서도 ‘국가’를 살려놓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꽉 차 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선진국이다. 2021년 7월 초,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설립 57년만에 첫 사례를 기록한다.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 변경한 것이다. 당연히 이 나라의 문화⋅경제⋅사회안정 등 다양한 평가들을 근거로 지위 격상을 결정했을 것이다.
 
암묵적이든 노골적이든 선진국 진입 선언에 대응하는 요구가 왜 없겠는가.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은 우리 멋대로 자가 발전한 것이 아니다. 지구촌 전체가 ‘그럴 만하다’고 승인해준 것이다. 그들이 씌어준 왕관의 의미는 무엇일까. 개인과 국가를 초월해서 이제는 지구에 충성해 달라는 요구가 핵심 메시지다. 빌 게이츠가 쓴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우리가 가진 솔루션과 우리에게 필요한 돌파구> 또한 같은 방향에 집중하고 있다. 지구를 어떻게 회생시킬 것인가.
 
40~50년 전 우리 정부는 국민 개개인에게 지금 돌이켜보면, 실소할 만한 의제를 던졌다. 쥐잡기 운동, 실지렁이 잡기, 머리카락 모으기, 파지 할당량 등등. 거기에 개인의 욕망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사실은 이것이 국가에 충성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사소한 일, 불편하고 기이하기까지한 과제가 국가에 충성하는 일이었다니.
 
같은 맥락에서, 지구에 충성하는 일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쓰레기 재활용, 고기 덜먹기, 운송 수단 덜 이용하기, 전기 덜 쓰기…. 이것이 ‘지구에 대한 충성!’의 실천이다. 한마디로 욕망의 절제다. ‘나는 고생할지언정 내 자식은 굶길 수 없다’가 국가에 대한 충성의 근본 심리였다면 50년이 지난 같은 땅에서 ‘내가 절제해야 내 자식이 죽지 않는다’라는 명제로 이동한 것이다. 대한민국 선진국 격상은 곧 ‘지구에 대한 충성’ 요구다. 국가에서 지구로, 욕망에서 절제로. 우리 후손의 미래를 바탕에 깔고 더 큰 가치를 보면 내 욕망이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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