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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스토리]-오채현 화가

“힘겨운 삶 딛고 선 그림이 당신에게 따뜻한 위로 되길”

고난의 연속에서도 미술가의 꿈 이뤄…인생을 녹여 사회를 치유하는 작품활동

기사입력 2021-10-14 00:05:21

▲ 작품 ‘꿈꾸는 아이들’(2011년, Acrylic on canvas) 앞에 선 오채현 작가.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화가인 오 작가는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기원하며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오 작가는 숙명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숱한 난관을 이겨내 현재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미술은 어떤 특정 계층만이 향유하는 전유물이 아니라 생각해요. 누구나 즐기고, 감동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이죠. 그림은 작가 입장에서는 그 누구에게 나의 마음을 말로써 설명하지 않아도 다채로운 색깔과 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 출구이고, 또 보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배경과 경험으로 각자가 느끼는 감정, 몰입 또한 다르게 다가온다는 데 그 매력이 있죠.”
 
어린 시절 그림 신동으로 불려…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끝내 꿈 이뤄내
 
미술이란 철학적 사상과 문화적 성찰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이면이 상당히 넓은 예술의 한 분야이다. 학문으로 따지면 정답이 내재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공통성을 이끌어내고 경험의 깊이에 따라 다르게도, 비슷하게도 느껴지는 하나의 과정을 담는 철학과도 같다. 이런 마음의 언어, 과정의 철학을 예술로 승화시켜 다양한 색채로 우리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화가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인생의 여러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그림과 함께 살아온 오채현 작가이다.
 
오채현 작가는 충청북도 충주 출신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신동으로 마을 어르신들의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어려운 생활환경으로 고된 인생을 살아온 그의 유년 시절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오 작가는 화가라는 꿈을 향해 꾸준히 발을 내딛으며 여린 소녀의 마음을 강인한 인내로 이겨내며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화가가 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어렸을 때 그림을 잘 그려 주변에서 신동이라고 했죠.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님의 곁에서 그 꿈을 실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어머니의 만류로 화가의 꿈을 잠시 접기도 했죠. 하지만 미술을 가르쳤던 담임선생님은 저의 남다른 소질을 응원하며 어머니를 설득하고야 말았죠. 그때에야 알았어요. 어머니가 왜 저의 작은 꿈조차 응원해주지 못했는지요.”
 
“사실 어머니도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그림을 전공한 화가였어요. 하지만 그 시절 화가란 배고픈 직업이었죠. 어머니는 그런 이유로 제가 다른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기를 원하셨던 거죠. 그림은 취미정도로 하기를 바랐던 거였어요.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나서야 반대 이유를 알게 됐죠. 원망도 많이 했지만 모든 것이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따뜻한 바람이었어요. 하지만 그때부터는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로 화가의 꿈 꽃망울을 피울 수 있었어요.”
 
당시 오 작가는 부푼 꿈을 안고 서울예술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담임 선생님은 물론 교장선생님의 전폭적인 지지도 있었고, 어머니의 응원도 있어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성적을 최상위권까지 끌어올리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또 다시 실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아버지의 병세 악화로 어머니가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 오채현 작가의 작품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평화가 함께 하기를’ ‘색동-문’ ‘입맞춤’ ‘꿈꾸는 아이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교장선생님을 만난 어머니는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어 저를 서울예고에 보내기 어렵다고 했어요. 어머니의 응원에 열심히 준비했던 저의 꿈이 또다시 어머니로 의해 무너지는 순간이었죠. 그때부터 사춘기를 힘들게 겪었어요. 원하는 학교를 못 가다보니 방황을 많이 했었죠. 대학에 입학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대학 선택도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는 대학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결국 숙명여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해 서양화를 전공하게 됐죠.”
 
그렇게 숙명여대 장학생으로 입학한 오 작가는 수석졸업을 하며 교수의 꿈을 꾸게 된다. 하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교수들도 반해서 오 작가에게 석·박사 과정을 제안했다. 오 작가는 결혼과 함께 세 아이의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라는 더 높은 꿈에 도전하며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하지만 세 아이를 키우며 박사과정을 하는 과정에서 무리를 하여 몸져눕게 된다. 오로지 화가의 꿈만 바라보며 달려온 그는 건강을 잃고 또다시 병마와의 악전고투를 벌여야만 했다.
 
“당시 박사과정만 마치면 교수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아이들을 돌보며 강의도 하고 전시회도 하는 저를 보며 그렇게 일하다 죽는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말대로 저는 너무 무리한 탓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게 됐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족들이 저를 위해 희생하고 있었어죠. 마음이 미어졌죠.”
 
“그러면서 학위가 필요한 것보다 저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의 꿈만을 고집하며 달려오는 과정에 가정과 자식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엄마가 됐던 거죠. 그때 저는 ‘그래,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만족한 거지, 타인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림을 그리는 건 내게도 안 맞아.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집중하자’라고 생각했죠. 그 이후 저는 1년 동안이나 재활치료를 받았어요.”
 
오 작가는 그렇게 잠시 꿈을 접었다. 그동안 자녀들은 성장하여 고등학교, 중학교를 다녔고, 어머니의 역할을 다해가며 자녀들을 키웠다. 어느 순간 자녀들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는 시점이 왔다. 오 작가는 자녀들이 조금 더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를 바랐지만 그들 또한 오 작가의 어릴 때처럼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오 작가는 어머니가 자신을 키웠던 그 과정들 속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란 모두 자유로운 영혼들이에요. 어느 순간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며 부모가 바라는 길로는 가지 않더라고요. 월급 잘 받는 직장을 다니라고 하는 저를 보며 어린 시절 저를 다그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어머니는 아픈 아버지를 돌보면서도 항상 멀리서 반짝이는 별처럼 제 꿈을 지켜주셨더라구요.”
 
“인생의 고된 무게 이겨낸 경험, 사람들에게 위로 건네는 작품으로”
 
이런 고난의 연속에서 오 작가는 마음이 외롭고, 모든 것을 놓아버릴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천주교 신자인 오 작가는 기도와 성찰로 어려움을 이겨냈고, 하느님이 보내준 수많은 천사들로 인해 꿈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놓았던 붓을 다시 잡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자신이 그린 작품들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위로를 받는 모습에 힘을 얻곤 했다고 전했다.
 
“저는 천주교 신자에요. 어릴 적 미술을 하고픈 마음에 하느님께 ‘사람을 위로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라고 기도를 드린 적 있었죠. 그 기도가 이뤄지려고 그동안 하느님이 저를 고난의 경계까지 다 경험하게 하신 것 같아요. 현재로선 저의 모든 작품이 그 모든 경험에서 받았던 사랑과 치유의 역사를 그린 그림들이죠. 몸도 아팠고, 아이들 문제로 지칠 때도 있었죠. 남편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고, 천사와 같은 어머니를 여의는 아픔도 있었죠.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며 지금의 저로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 오채현 작가의 그림은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과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혼자가 아닌 모두를 담으려 하는데 촛점을 맞췄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그 모든 시기를 다 지나다보니 ‘위로란 그럴 것이다’라고 상상만으로 단정 짓지 못하겠더라고요. 지금은 어머니가 천국으로 가셨지만 제가 철이 들고 나서야 어머니 곁에서 병간호를 하며 성찰과 기도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때도 어머니를 천국에 보내고 나서 몸이 으스러져 일어나지도 못했어요. 수녀님들이 기도하며 옆에서 많이 도와줬죠. 기도의 은혜가 임했는지 저는 또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털고 일어날 수 있었죠.”
 
오 작가가 그동안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그림은 ‘평화가 함께 하기를’ ‘색동-문’ ‘꿈꾸는 아이들’이다. “평화가 함께 하기를’이라는 작품은 나무그늘 아래서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울고 있는 아이를 천사가 위로해주는 내용이 있어요. 이 그림을 보고 전시회 준비를 도와주던 한 스태프가 울면서 위로를 받은 사연도 있었죠. 제가 그렇게 하느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을 사람들이 보면서 저의 마음을 느끼고 거기서 위로받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그린 그림 중에 세 아이가 나무를 안고 있는 그림이 있어요.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작품인데, 아무래도 제가 엄마이다 보니 그 작품에는 남다른 정성이 들어갔죠. 꿈을 나무로 표현하고 아이들이 꿈을 피워나가는 내용을 담았어요.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어머니들의 소원이잖아요. 그래서 그 마음을 담아 마티에르효과(두껍게 색상을 덧칠하여 질감효과를 높이는 방법)를 넣어 그렸는데 이 작품을 완성하는데 2년이란 시간이 걸렸어죠. 아마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으면 그 그림을 그리는 걸 열두 번도 넘게 포기했을 것 같아요.”
 
이 외에도 오 작가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 ‘색동-문’을 그렸다. 색동문은 한옥 문에 여러 가지 무늬와 색을 색동으로 표현해 이어 붙여 그려낸 작품이다. 오 작가는 색동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직접 문을 제작했다. 톱질부터 시작해서 나무와의 이음새도 고전양식 그대로 표현했다. 오랜 시간과 수고 끝에 완성된 작품은 자식을 위해 자신을 바쳐온 어머니의 마음 그대로였다.
 
오 작가는 이달 7일부터 12월 3일까지 강원도 삼척 부남미술관에서 ‘생명의 정원으로’라는 제목으로 초대전을 열고 있다.
 
오 작가는 그림 그 자체는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경계가 없는 표현의 결정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작품을 그려오면서 자신의 작품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기를 원했다. 끝으로 오 작가는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아픔과 희망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사람냄새 나는 그런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며 특히 코로나 시대에 혹시라도 힘겨워하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다. 
 
“인생의 머나먼 길을 가는 당신에게 혼자가 아님을 말하고 싶어요. 나도 당신과 같이 힘든 시간이 있었죠. 그 시간들 동안 당신 곁에는 부모라는 천사가 있었고, 어쩌면 아이들이라는 천사도 있었을 거예요. 힘들 때 의지하는 사람이 있었고 내가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로 걸어갈 때도 항상 나를 지켜주는 천사는 있었지요. 그러니 힘을 내세요. 삶은 소중하고 당신은 귀한 존재니까요.”
 

 [한대의 기자 / sky_duhan2030 , duhan@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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