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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생활명상 즐기기

‘마음이 뭔가요’ 라는 질문 앞에서

형체도, 냄새도, 맛도, 색깔도, 무게도 없다보니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10-22 19:00:20

 
▲김성수 작가·마음과학연구소 대표
 이런 일은 간혹 예고 없는 접촉 사고처럼 날아온다. 어느날 여러분과 모여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문득 물어왔다. “선생님, 마음이 뭐죠?” 그 순간 나는 눈을 치켜뜨고 상대를 바라보는 습관적인 반응을 하게 된다. 몸이 살짝 뻣뻣해진 느낌이다. “마음 말씀인가요?” “네, 마음이 뭔가요.” 내가 말했다. “지금 제가 보이십니까?” “네” “제가 뭐하고 있나요?” “웃고 있군요.” “누가 저를 웃게 했습니까?”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무엇이 저를 웃게 했을까요?”
 
세상에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중 하나가 ‘마음이란 무엇인가’가 아닐까. 답변이 어려운 이유는, 답변자는 뭔지 알 수도 있지만, 그것을 질문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대답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소위 마음공부 전문가 집단에서 논의한다면 오히려 편하다. 그들은 이미 마음에 대한 개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영역 안에서 유사 언어와 유사 개념을 갖고 있는 집단은 이심전심의 소통도 가능하다.
 
어느날 제자가 스승에게 묻는다. “스승님, 마음이 무엇입니까?” “뜰 앞에 잣나무니라.” 이때 제자는 홀연히 깨닫는다. 어느 누군가는 ‘마음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제자의 귀에 대고 벽력같은 고함을 내지르기도 한다. 그 순간 제자는 ‘아!’하고 깨닫는다. 손가락을 들어보이면서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대뜸 묻기도 한다. 그 시간 이후, 제자는 스승이 제시한 ‘이것’을 자나깨나 들고 있다가 마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도 한다.
 
나는 왜, 못한다고 했을까
 
누군가가 나에게 ‘마음공부’에 대해서 강의 요청을 해왔다. 별 생각 없이 ‘명상 안내’를 해주면 되겠거니 했는데, 그날 강의 주제가 ‘마음이란 무엇인가’라고 한다. 내가 물었다. 어떤 분들이 대상입니까. “초·중학생들입니다.” “혹시 다른 학자분들한테도 제안해보셨습니까?” 그가 답했다. “몇몇 분한테 요청했는데 모두 거절 당했습니다.” “그러게요, 나도 상대가 초·중학생이라니까 그만 난감해지는군요.”
 
생각해보면 어이없기도 하고 미스테리한 일 같기도 하다. 나는 왜 못한다고 했을까. 물고기에게 물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런데도 나는 강의 상대가 초·중학교 학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즉시 포기하게 된다. 그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마음’을 잘 표현할 재간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도 나의 내면은 마찬가지다. 그 어린친구들에게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설명한다면, 뚱하니 앉아서 내 입만 바라보고 있을 그 친구들이 그려진다. 열심히 설명하는 내 긴장감을 고스란히 마음으로 받아 안고 있을 딱딱한 그 표정들을 미리 보게 된다.
 
언젠가는 그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날 정도로 흥미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여러 궁리가 일어난다. 이를 테면, 마음을 설명하기 전에 몸부터 설명하면 어떨까. 몸이라는 물질을 컴퓨터로 비유하여 소위, 때리면 텅텅 소리나는 빈깡통 몸체와 그 안에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회로판을 사람 몸으로 비유한다. 갖가지 정교한 내장 부품과 외장이 사람의 몸뚱이라고 한다면, 전기는 사람이라는 생명의 원초적 에너지이다.
 
여기서 잠시 되돌아보자. 외장과 내장부품만 있을 때와 전기가 주입되는 상태의 컴퓨터는 다른 상태인가 같은 상태인가.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우리는 컴퓨터라고 하지 않는다. 왜? 그 안에 컴퓨터의 마음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컴퓨터의 소프트웨어가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궁리도 해본다. 마음의 탄생을 한 시간 정도로 압축해서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 먼저, 부들부들한 깡통같은 몸이 생기고, 발에 채여도 항의 한마디 없는 그 몸에 따뜻한 온기가 스미면서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꿈틀거리면서 이리저리 이동하는 ‘부들이 깡통’은 여전히 발길에 채이거나 새한테 쪼여도 그런 사실이 있는 줄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부들이 깡통’은 자신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새한테 쪼이는 순간 쪼이는 감각을 알게 되고, 물에 뜨는 순간, 물에 떴음을 알게 된다. 새한테 쪼일 때, 통증이 일어나서 그 통증 때문에 꽥 소리를 질렀더니 새가 도망가는 것도 알게 된다. ‘알게 되고, 알게 되고, 알게 되고…’ 하는 것.
 
컴퓨터의 시초가 ‘1+1=2’라는 계산식을 하면서, 그 기계의 경험이 축적되고 발전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비약해온 것처럼, 마음 또한 뭔가를 알게 된 그 순간부터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와 같은 역할을 해온 것이다. 컴퓨터에서 소프트웨어를 빼면 그 즉시 ‘딱딱한 깡통’이 되는 사태는 우리에게도 정확히 적용된다.
 
그럼에도 이 ‘마음이란 무엇인가’는 설명하기 어렵다. 피교육자가 어떤 계층이나 나이층이냐에 따라서 변수가 생기곤 하지만, 이 어려움의 본질에는 나의 속물적 기억이 자리잡고 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피부에 와 닿고, 냄새가 나고, 소리로 들을 수 있는 것만이 ‘있는 것’이라고 믿어온 습성은 나를 걸핏하면 그것들에 묶이게 하거나 집착하게 한다.
 
‘마음이 뭔가요?’에 대해 적절히 답변하기 ‘어렵다’ 는 하소연을 딛고 여기까지 읽어온 당신에게 줄 수 있는 한 가지 팁이 있긴 하다. 그것은, 질문의 구체성을 가져가보시라는 점이다. ‘마음이 무엇인가’보다는 ‘내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가’라고 질문하시라. 마음의 근본 속성은 늘 어떤 대상에 가 있다는 것이다. 어제 맛있게 먹었던 점심 식당에 가 있을 수도 있고, 가벼워진 통장에 가 있거나 어떤 기분 상태에 가 있을 수도 있다. ‘내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아는 순간, ‘마음이 뭔가요’에 대한 응답까지 듣게 될지도 모른다. 굳이 ‘마음이 뭔가요’에 대한 개념적 답변보다는 먼저, 스스로 답변을 통해 체험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이다.
 
“마음이 뭐죠?”라는 갑작스런 질문 앞에서 나의 마지막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순간적으로 당혹감과 놀람, 뻣뻣함, 설명욕구 따위에 휩싸였던 나는, 이런 저런 생각⋅감정들 다 내려놓고 이렇게 답했다.
 
“선생님은 지금 제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제가 알고 있는 마음은 이것이군요.” _()_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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