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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베네치아에서 한국을 본다
홍찬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1-12-22 09:24:42
 
▲홍찬식 칼럼니스트(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자원 부족, 강대국 포위 등 우리의 여건과 흡사
정치 한 번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 강해
시장경제 중시, 자유와 포용성으로 번영 일궈내
대선 앞둔 한국은 자극적 소재에 빠져 본질 실종
 
베네치아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에 반드시 들어 갈만한 곳이다. 18, 19세기 유럽의 지식인, 예술가들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요즘으로 치면 뉴욕이나 파리 같은 곳으로, 누구에게나 상상력을 자극하고 지혜를 채워주는 ‘문화와 문명의 원천’이었다. 18세기 말 베네치아를 방문한 괴테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고귀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은 통합된 인간의 노력에 의해 생긴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한 것에서도 당시 베네치아의 위상이 드러난다.
 
오늘날 베네치아는 주로 문화예술에 의해 칭송 받는다. 오페라‧연극‧미술 분야에서 베네치아가 남긴 자취는 화려하고 분명하다. 그러나 18세기만 해도 베네치아는 과거의 빛을 잃은 상태였다. 전성기는 15, 16세기에 이르면 막을 내린다. 따라서 괴테‧바이런‧스탕달‧릴케 같은 유럽의 명사들이 바치는 헌사는 ‘옛 베네치아’를 향한 것이었다. 문화예술은 어쩌면 베네치아가 남긴 표면적 얼굴에 불과할 뿐이고, 그 뒤편에 있는 ‘본질’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베네치아는 공화국 정치체제를 갖고 있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697년 시작돼 나폴레옹에 의해 몰락한 1797년까지 꼭 1100년을 지속한다. 세계에서 공화국으로서 가장 오래 존속한 나라로 기록되지만 그보다는 불리한 여건을 딛고 유럽의 부국(富國)으로 번영했던 존재감이 더 돋보인다. 지금도 바다 위에 아름답게 떠 있는 베네치아는 그들의 과거와 영광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상인의 길’을 선택한 것은 불가피했다. 북쪽에서 침략해온 강력한 적에 밀려 개펄지대로 도피해온 이들은 필수적인 생활물자의 자급자족이 불가능했고 이를 타개하려면 바다로 나가 교역에 참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는 덩치 큰 강대국들이 버티고 있었다. 신성로마제국, 비잔틴제국, 오스만제국 등 3개 제국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시절도 있었다. 이탈리아 반도 내의 숙적 제노바와도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베네치아 인구는 가장 많았을 때가 15만명 정도였으니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나라가 유럽의 경제 패권을 장악하고 ‘지중해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듣게 된 것은 상당한 흥밋거리가 아닐 수 없다. 강대국은 반드시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아야 된다는 상식을 깬 나라가 바로 베네치아다.
 
베네치아의 외적 조건은 한국과 많이 오버랩 된다. 한국 역시 산악국가인 탓에 태생적으로 자급자족에 어려움을 겪었고 자원 부족에다, 강대국 틈 사이에서 오래 시달려온 점도 베네치아와 흡사하다. 반도(半島) 국가이면서 사실상 북쪽 통로가 막혀 있는 섬과 같은 지리적 조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베네치아가 자신들에게 강요된 한계와 단점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살펴볼 차례다. 한국이 ‘선비의 나라’인데 반해 ‘상인의 나라’는 역시 접근방식이 달랐다. 이들은 정치에서 한 번 실패하면 만회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독재자가 득세해 정치를 망쳐도 재도약의 기회가 남아 있지만 베네치아 같은 나라는 한 번의 실정(失政)도 치명적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으므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손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고집했다. 손익 계산에 빠른 상인다운 발상이다.
 
이들이 고심 끝에 채택한 대안은 권력 분산과 견제였다. 국가원수인 도제(doge)가 있었으나 보좌관이라는 이름으로 6명을 곁에 배치해 이들과의 합의가 없으면 회의조차 열 수 없었다. 국회에 해당하는 대평의회는 40인위원회, 원로원 등으로 분산돼 상호 견제를 했다. 누구도 독단으로 흐를 수 없는 구조였다.
 
반면에 국가안보에 긴급 사태가 발생하면 빠르게 대응하는 10인위원회가 작동하고 있었다. 베네치아는 외교에서도 선구적인 나라였다. 교역 상대국에 세계 최초로 외교관을 상주시켰는데 이들이 주재국 정세를 파악해 본국에 올린 보고서는 지금 보아도 뛰어난 정보수집 능력과 정확한 상황 판단이 돋보인다.
 
경제적으로는 시장의 이치에 능통한 사람들이었다. 계급질서가 굳건하던 시절에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서교역의 길목에 위치한 베네치아의 수익은 무역을 통해 창출됐다. 해외 사업을 할 때는 파트너 일부가 국내에 머물러 있고 나머지 파트너들은 밖으로 나가 직접 몸으로 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국내에 있는 파트너는 소요 자금을 반드시 투자해야 했지만 해외로 나간 파트너는 ‘빈손’이어도 상관없었다. 가난한 젊은이들은 자본이 없어도 얼마든지 꿈을 펼 수 있었다. 실제로 베네치아 기록에는 생소한 인물이 갑자기 부유층 명단에 오르는 ‘인생 역전’ 사례가 자주 나타난다.
 
이와 함께 무역의 필수품목인 조선(造船), 바다 위의 도시를 유지시켜주는 토목 등 기술을 중시했다. 다른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박해받은 인사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꼽힐 만큼 자유로움과 포용성을 지녔던 점도 번영의 비결이었다.
 
베네치아의 국가운영 방식은 오늘날에도 관심을 모으는 대상이다. 독재자를 미리 차단하는 철저한 권력 분점, 뜨거운 가슴이 아닌 차가운 머리로 작동되는 외교 안보, 시장 원리를 거스르지 않는 경제,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 기술과 장인에 대한 존중, 서로 다른 의견을 소통으로 이끄는 자유정신 등 베네치아의 유산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지식과 실제 행동이 꼭 일치하는 건 아니다. 한국 사회 역시 지난 70여년의 발전 과정이 이런 지혜에 힘입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제는 그 기반 자체를 허물어버리는 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2021년이 저물어 간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사생결단 공방전이 가뜩이나 가라앉은 연말 분위기마저 집어삼킬 태세다. 대선에서 논의의 중심은 나라를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후보들의 사생활 문제에 빠져 정작 중요한 사안을 외면하고 있다. 자극적인 소재로 상대방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것에만 혈안이다. 후보들 책임이 무겁다.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에 조속히 정상 궤도로 돌려놓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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