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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41>

신라(新羅)는 서신라, 동신라가 있었다

왕신라와 간(干)신라도 구분 못하는 학계 한심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2-19 11:00:55

▲ 이을형 전 숭실대 교수
 우리 역사가 반도가 아니라 대륙사인 것은 환국시대부터라는 것이 판명되고 있는데도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반도역사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역사를 모르면 우리의 정체성을 잃고 마는데 세계 석학들도 인정하는 우리 역사를 우리만 제대로 모르고 있는 국민이 되고 있다.
 
신라(新羅)의 경우를 봐도 서신라(西新羅) 당영호징신라국기(唐令弧澄新羅國記)와 동신라(東新羅)는 간신라(干新羅)로 거칠부국사(居柒夫國史)의 기록이 신라본기(新羅本紀)에 나와 있다. 당영호징신라국기 기록은 지증왕(智證王) 37년, 진덕왕 8년, 경덕왕 14년 등 3번의 기록이 있으며 거칠부의 동신라(東新羅) 국사(國史)는 진흥왕(眞興王) 6년에 한번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를 쉽게 말한다면, 서신라(西新羅)는 왕(王)이 다스리는 신라(新羅)를 말하고 동신라(東新羅)는 간(干)이 다스리다가 서기 503년 독립한 서기503년~936년의 신라를 일컫는 말인 것이다.
 
신라는 통치자의 칭호에 의한 왕신라(王新羅;西新羅)와 간(干)이 다스리는 간신라(干新羅; 東新羅)로 구분할 수 있으며 간(干)에도 거서간(居西干)이라 일컫는 이가 하고, 차차웅(次次雄)이라 일컫는 이도 하나, 이사금(尼師今)이라 일컫는 이가 열여섯, 마립간(麻立干)이라 일컫는 이가 넷이다.
 
그런데 최치원(崔致遠) 제왕연대력(帝王年代歷)에는 다 왕(王)이라 칭하고 있다. 이 기록에서 두 가지 형태의 구분을 볼 수 있다. 첫째는 거서간(居西干), 이사금(尼師今), 마립간(麻立干) 왕(王)이라 칭한 것이 있고, 둘째는 모두 왕이라 칭한 신라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신라가 반도가 아닌 대륙에 서신라(西新羅)인 사로신라(斯盧新羅)와 간(干)에서 왕(王)으로 승격한 간신라(干新羅; 東新羅)가 있음을 분명히 밝히려고 한다.
 
신라도 대륙에서 시작했다
 
신라가 서신라와 동신라가 있음을 삼국사기(三國史記)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로신라(斯盧新羅)가 북으로 유연제로(幽然齊盧)와, 남으로 오월(吳越) 사이에 있는 안휘성 지역에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 기록은 다방면으로 증명이 되는데 그것은 문무왕 9년 자석(磁石)을 당(唐)에 보냈고, 12년에는 래주사마(萊州司馬)와 바늘(針)을 당(唐)에 보냈다. 이것들은 신라침반(新羅針盤)으로 이를 줄여서 나침반(羅針盤)이라 부른다.
 
나침반 외에도 쇠뇌(弩), 나전칠기(螺鈿漆器), 신라금(新羅錦)이라는 비단 등은 사로신라(斯盧新羅;西新羅)의 문화유산인 것이다.
 
서기 504년의 고구려 본기와 위서(魏書)에 의하면 자개 제품은 섭라(涉羅)에서 생산되는데 섭라(涉羅)는 대륙의 안휘성에 있으며 반도가 아니다. 또한 섭라는 백제에 병합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당시 백제는 처음부터 황하유역에 있었다.
 
역사기록은 바르게 정립할 뿐이지 취사선택의 자료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취사선택이란 전체의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것인데 이럴 때는 믿지 못하는 이유를 분명히 제시하여 바르게 정립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역사는 지나(支那)와 일본이 왜곡하여 5세기 이전을 부정하고 왜곡하고 있으나 왜곡한다고 지나(支那)와 일본 역사가 바로 되는 것이 아니다. 21세기에 와서는 과학적으로 다 밝혀지고 있어서 이런 역사 왜곡이 성공할 수가 없다.
 
지나(支那)와 일본은 삼국사기(三國史記)가 반도기록이 아니라 대륙의 기록임을 부정하려고 하나 역사의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우리의 영역이 반도가 아니라 대륙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의 동쪽에서 반도까지 하나의 민족임을 명명백백히 입증하고 있음에서다. 즉 우리 민족의 영역이 서화(西華) 중심의 남쪽 오월(吳越), 양자강 이남과 삼국시대 모두 서화(西華), 항성(項城) 동쪽에서 활동하였음을 입증한다.
 
신라의 김유신(金庾信)도 반도가 아니라 대륙의 하남성(河南省)에서 안휘성(安徽省)을 중심으로 활동했음이 명백히 밝혀지고 있다.
 
당영호징신라국기와 거칠부(居柒夫國史)는 이를 입증한다.
 
당영호징신라국기(唐令弧澄新羅國記)와 거칠부국사(居柒夫國史)의 기록은 분명히 두 신라가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 간(干)은 고구려의 지역통치자임도 기록하고 있어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와 진흥왕비(眞興王碑)는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 반도의 간(干)은 503년에 고구려에서 독립하고 있다. 그 왕이 진흥왕(眞興王)인 것이다. 이 당시 삼국의 영역을 보면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지나(支那) 25사(史) 동이(東夷) 기록에서는 요(遼)의 동쪽 동명(東明), 서화(西華), 항성, 덕안(德)安)의 동쪽에 백제의 수도, 한성과 웅진이 있다고만 기록하고 있는데, 삼국사기(三國史記)는 한성(漢城)에 대한 고고학적 기록과 주위 지명을 남겼다.
 
즉, 한수(漢水)와 하수(河水)의 황하(黃河), 숭산(崇山)과 연와(煉瓦)로 쌓은, 성터와 하수(河水)의 제방이 있어 황하(黃河)유역에 백제한성(百濟漢城)이 있음을 분명히 했고, 웅진(熊津)은 대산(大山=太山=泰山)의 서쪽에 있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지나(支那) 25사(史) 동이(東夷)에서 고구려 수도가 요(遼)동쪽에 있으며 별도한성(別都漢城)이 있다고 했는데 평양의 성벽(城壁) 각자(刻字)에서 고구려 한성(漢城)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장안 중심의 한족(漢族)은 주(周)와 진(秦)의 전통을 계승하여 장안(長安) 중심의 역사를 정립하면서 사기(史記)에서 당서(唐書)까지 우리 민족을 동이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동이(東夷)의 영역은 기자(箕子)가 살던 하남성 서화(西華)의 남북에 있는 덕안, 항성(項城), 태원, 은산(銀山)의 동쪽에서 해주(海州;고구려 장성 위)까지 동이민족 각국을 기록하고 있는데 삼국지와 후한서에서 위치를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이 당시 나라 상황을 보면, 변한(弁韓)은 서기전 38년 신라에 병합되고, 마한(馬韓)은 8년 백제에 병합되고, 북옥저(北沃沮)는 서기전 28년 고구려에 병합되고 선비(鮮卑)는 서기전 9년 고구려에 병합되었다.
 
양맥(梁貊)과 현토고구려현(玄菟高句麗縣)은 서기 14년 고구려에 병합되고, 부여(夫餘)는 22년 고구려에 병합하고, 개마국(蓋馬國)과 구차국(句茶國)은 26년에 고구려에 병합되고, 낙랑국(樂浪國)은 32년에 고구려에 병합, 낙랑(樂浪郡)은 37년에 고구려에, 동옥저(東沃沮)를 56년에 병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도 그 위치에 대한 기록은 숨기고 덮고 있어서 모르게 하고 있다.
 
글을 맺으며 - 한서(漢書)에서는 위치 나타내는 지명이 있다
 
그런데 진(晋) 때의 삼국지(三國志)나 송(宋) 때의 후한서(後漢書)에서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 동옥저(東沃沮), 읍루(挹婁), 예(濊), 한(韓), 왜(倭) 지명(地名)이 있는데 예맥조선과 낙랑국에 대한 지명은 숨기고 말하지 않고 있다.
 
지나(支那)의 사서(史書)에 나타난 지명을 보면, 제일 북쪽에 부여가 있고 부여 남쪽에 고구려가 있고 고구려 남쪽에 예(濊; 河北省)가 있고, 예(濊)의 남쪽에 한(韓)이 있으며 한의 남쪽에 왜(倭)가 있다고 하였으나 예맥조선과 낙랑국은 거론조차 하지 않고 덮고 있다.
 
지나(支那)는 지명을 바꾸고 지역도 바꾸며 우리 역사를 왜곡 변조하나 절대로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동이의 각국이 서화(西華)의 동쪽에서 요하(遼河)의 서쪽까지 기록하고 있지, 반도에 국가가 있다는 기록은 없다.
 
반도에 있다는 것은 고구려별도(高句麗別都) 한성(漢城;현평양)과 자칭 무강왕(武康王;현익산(益山)의 기록이 있을 뿐이고 원(元)나라 때 쓰여진 요사(遼史)의 일부에 만주와 서화(西華) 동쪽에서 반도의 신라(新羅;동신라=干新羅)를 기록했을 뿐이고 9세기 이전에는 요하(遼河)까지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11세기 이후 지나(支那)와 일본은 9세기 이전 신라, 백제, 왜(倭)가 반도쪽에 있다고 하고 있으나 이것은 허구(虛構)로 진실이 아니다. 지나(支那) 25사 동이 기록에서 왜(倭)는 광개토태왕 이전부터 양자강 이남에 있었음은 이미 다 밝혔으며 신라의 장군의 전쟁터도 모두 대륙에 있음을 이미 밝혔다.
 
우리나라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은 아직도 서화(西華) 동쪽에 서신라(西新羅)가 있었음을 말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1883년 신라가 반도에서 대륙으로 갔다고 왜곡하기 위해 신라방(新羅坊)을 만들어 퍼트리고 있으나 이는 거짓일 뿐이다.
 
(以上은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硏究」,31面~75面 參照 本文引用하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한국상고사].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자부심 문화열차].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정희철, [중국은 없다]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반재원,[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文定昌,[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紘一 監修 [世界を変えた 戰爭, 革命, 反亂].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張金奎, [匈奴帝國].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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