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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이의 도시인문학
내비게이션 시대, 온전한 걷기에 대하여
길 찾기 기준이 새롭게 정립된 기술의 시대
길을 탐색하며 걷는 길 위의 일상이 사라져
‘걷기’ 통한 일상 속 우연한 참 만남 소중
유영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4-27 09:18:16
 
▲유영이 도시공간문화 전문 칼럼니스트
익선동이 유명해졌을 때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흔치 않은 골목 구경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길을 따라 재미있는 요소들을 우연히 마주치며 예상치 못한 일상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제 맛집을 탐색한 후 길 찾기 어플리케이션이 안내해 주는 지시를 따라 간판을 발견하기에 급급하다. 도착하는 시간을 상대방에게 전해 주고 나면 제시간에 맞춰 길 안내를 따라 움직이는 데에만 집중한다. 지도를 켜지 않은 채 골목을 헤매는 일은 우리에게 매우 낯선 경험일지 모른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지도를 보고 도시 공간을 읽는 일은 맥락적 사고보다 정해진 시간 내 목적지를 찾아가는 지시적 사고로 바뀌었다. 최단 거리와 최단 시간을 제공하는 빠른 길 찾기 서비스는 시간을 지키는 명확함과 효율성으로 이미 일상의 지표로 자리 잡았다. “당신과 내가 꼭 같은 지도를 봐야만 할까요?” 2013년 구글 맵스의 수장인 다니엘 그라프(Daniel Graf)는 미국의 기술 비평가인 예브게니 모로조프(Evgeny Morozov)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건넨다. 지리적 자료를 넘어 다양한 정보를 통합하는 지도 데이터 서비스의 수장이 농담을 한 것일까. 문제는 질문의 답이 ‘다르다’는 것이다. 시선을 앞에 두고 간판을 보며 길을 찾지 않고 스마트폰을 보기에 바쁘다. 그만큼 우리는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살고 있다.
 
▲산책을 나서는 길에도 길 찾기로 시간을 계산한다. 얼마나 걸었는지, 칼로리의 소모량까지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없이 온전한 걷기에 집중할 수 있을까. ©Tamas Tuzes Katai
 
사용자마다 검색하고 자주 방문하는 지역이 자동으로 저장되어 길을 나서면 내비게이션이 알아서 정보를 제시하기도 한다. 집으로 향할지, 자주 들리는 장소를 경유할지, 즐겨찾기를 통해 기록된 장소와 선호하는 길 찾기 방식이 조합되어 나만의 지도와 여정이 만들어진다. 당연한 결과로, 개인화된 나의 지도와 타인의 지도는 다른 모습을 갖는다.
 
때문에 내비게이션과 길 찾기 어플리케이션 없이 도시를 활보하는 행위는 보조 바퀴를 떼고 두발자전거를 처음 타는 듯한 불안감을 주기도 한다. 낯선 지역에서 원하는 목적지를 찾는 것은 새로운 모험을 의미한다. 정찰기를 보내 깜깜한 영역에 빛을 비추는 것은 게임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이동과 끝은 검색한 장소에 핀이 꽂히는 순간 하나의 점으로 등장한다. 경로는 시작과 끝의 연결선일 뿐, 길을 탐색하며 거니는 ‘길 위의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며 걷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하나의 과제를 달성하듯 걷기보다는 목적지로 향하기에 바쁘다.
 
어딘가 당도할 목적이 있는 목적보행 중심의 사회는 시간에 쫓기고 보다 효율적인 수단을 찾는 데에 집중하는 사회를 만든다. 산을 오르며 산길의 꽃과 나무를 감상하라 하지 않았던가. 보행 그 자체에 시간을 소비하는 여가 보행의 행태는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도시 공간을 빠르게 이동하며 바쁜 현대인들이 걷기의 의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Arturo Castaneyra
  
온전한 걷기를 잊어버린 듯한 현대 사회에 ‘걷기의 인문학’의 저자 레베카 솔닛은 우리에게 걷기에 집중해 볼 것을 권한다. 걷기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그녀의 글은 인류가 왜 걸어야 했는지, 또 왜 걷고 있는지에 대한 심오한 질문과 함께 걷는 이유를 돌이켜보게 만든다. 
 
그녀는 ‘무언가를 찾으러 떠나는 행위’를 보행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건강해지기 위해 걷기를 택하고, 탄소 에너지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걷기에 주목하는 것을 넘어선다. 인문학적 걷기의 초점은 걷기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일상의 우연, 그 안에서 찾는 나와의 대화와 세상과의 만남에 있다.
 
나아가 솔닛은 의미 있는 걷기, 순례까지 다룬다. 보행과 비교하며 순례를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찾으러 떠나는 행위라 정의한다. 두 발로 걸어 세상과 접하며 몸으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위해 걷는다는 흥미로운 시각이다. 십자가의 길과 같은 종교적 순례 이외에 생각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장소와 나 자신에 집중하는 걷기 그 자체에 주목한다.
 
똑똑한 기술로 진화한 지도 덕분에 우리는 도시에서 배회할 자유와 우연한 발견을 잃어버렸을지 모른다. 오히려 편리와 효율이 삶의 여유를 확보해 준다고 착각하며 스마트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당황하기 일쑤다. 기술의 변화 속에 사람은 길 찾기 어플리케이션의 지도 위의 하나의 점으로 전환되며 일상의 한가운데 있으나 도시 공간과는 분리되어 존재한다. 위치 정보를 통한 시각적 이동 주체이기 이전에 두 발로 걷고 도시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소리를 들으며 체감하는 우리의 몸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효율성을 위해 잊어버린 고유한 일상의 가치를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시공간을 초월한 시대에 우연한 만남과 일상의 발견은 어디를 어떻게 걸을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할 수 있다. 
 
돌아가더라도 보다 안전한 길, 천천히 갈 수 있는 길, 계절에 따라 꽃이 아름답고 드라이브를 하며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길을 선택하며 일상이 머무는 여정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걷기의 시작과 끝의 연결고리가 아닌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길, 그 안에서 우리의 일상이 회복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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