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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자주 국가 신라, 당나라 속국이 되다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5-17 09:34:17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박혁거세의 건국 약 560년 후인 지증왕 4(503)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기네 나라 임금을 신라국왕이라 칭했던 신라는 법흥왕 23(536)에 처음으로 자체 연호 건원(建元)을 사용해 신라가 자주적인 국가였음을 만천하에 공포했다.
 
이후 최전성기였던 진흥왕 때는 12(551)에 개국(開國)이라 고쳤고, 29(568)에 대창(大昌)으로, 33(572)에 홍제(鴻濟)라고 했다. 진평왕 6(584)에는 건복(建福), 선덕여왕 3(634)에는 인평(仁平), 진덕여왕 원년(647)에는 태화(太和)로 고쳤다고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종주국이었던 고구리와의 일전도 불사하며 자체 연호 사용을 강행했던 신라가 649년에 갑자기 자발적으로 당나라 의관을 착용하더니 이듬해 신라왕이 태평송(太平頌)을 당 황제에게 바치고 당 고종의 연호인 영휘(永徽)’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즉 당나라의 속국이 되었던 것이다.
 
태평송은 신라 진덕여왕이 당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당나라의 태평성대를 기린다는 오언시를 직접 비단에 수를 놓은 것이다.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고 당나라와 황제를 극진하게 높였으니 지금 보기에도 역겨운 내용을 담고 있다.
 
▲신라 진덕여왕이 당 황제를 칭송하기 위해 비단에 수를 놓은 KBS 역사저널 그날의 한 장면.
 
태평송
 
위대한 당나라가 왕업(王業)을 여니, 높고도 높은 황제의 길 창창히 빛나네.
전쟁을 그쳐 천하를 평정하고, 문치를 닦아 백대를 이어가리.
하늘을 본받음에 은혜가 비오듯 하고, 만물을 다스림에 도리와 한 몸 되네.
지극히도 어질어 해와 달과 짝하고, 운까지 때맞추니 언제나 태평하네.
크고 작은 깃발들 저다지도 번쩍이며, 징소리 북소리 어찌 그리 우렁찬가.
외방 오랑캐 명을 거역하는 자는, 칼날에 엎어지는 천벌을 받으리라.
순박한 풍속이 곳곳에 퍼지니, 먼 곳 가까운 곳 상서로움 다투네.
사계절이 옥촉(玉燭)처럼 조화롭고, 해와 달과 별들이 만방에 두루 도네.
산악의 정기 받아 어진 재상 내리시며, 황제는 충후한 인재를 등용하도다.
삼황과 오제의 덕망이 하나 되어, 우리 당나라를 밝게 비추리라.
 
자주 국가임을 표방했던 신라를 이렇듯 당나라의 속국으로 변모시킨 인물이 바로 김춘추였다. 그는 당나라의 힘을 빌어 고구리와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스스로 당나라의 속국임을 자청했다. 그런데 그런 그의 행위가 국가적인 대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심의 발로였다는 것이다. 그의 개인적인 복수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방에서 원수지간으로 변한 신라와 백제
 
백제 개로왕의 죽음 이후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의 남하를 막기 위해 나제동맹(羅濟同盟)을 맺었을 정도로 서로 친밀한 사이였다. 그러다가 신라가 먼저 배신을 했고 백제 성왕이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군에게 전사한 이후로는 서로 철천지원수지간으로 변모했다.
 
전성기인 진흥왕 시대가 지나고 7세기 초 신라의 군사력은 백제와 고구려에 비해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특히 선덕여왕 때 백제에서 의자왕이 등극하면서부터 많은 침공을 당했다.
 
의자왕은 용감하고 대담하며 결단력이 있었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우애가 있어 당시에 해동증자(海東曾子)’로 불린 인물이었다. 등극 이듬해인 642년 직접 병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침공해 40여곳 성을 함락시킬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왕조에 “11(642) 8월에 백제가 또 고구려와 합세해 당항성(黨項城)을 빼앗아 신라에서 당나라로 통하는 길을 끊으려하니 왕이 당태종에게 사신을 보내 급박한 사정을 알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 문구는 당항성을 평택항으로 보는 식민사학계의 이론으로는 이해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경상도 신라의 서쪽은 백제에 북쪽 육로는 고구려에 육로가 막혀 있어 어차피 신라에서 당나라로 가는 통로는 평택항을 이용하던 남해로 돌아가던 황해바닷길 뿐이다. 평택항을 빼앗긴다고 당나라로 가는 바닷길 전체가 막히지는 않는다. 따라서 평택항은 당항성이 아니다.
 
 
▲ 평택 대신 남해를 이용해 가는 길(왼쪽)과 상대신라의 최적 일식관측지. [필자제공]
 
백제가 당항성을 빼앗자 두 나라의 통로가 막혔다는 말은 바로 육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 백제와 신라가 당나라와 함께 대륙에 있었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당항성은 지금의 하남성 항성(項城)시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신라는 그 동쪽인 안휘성에 있었다는 것인 바, 참고로 이는 전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발표한 신라의 최적 일식관측지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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