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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56>

역사연구에 고고학과 주변과학 필수 연구해야

우리나라 사학자 왜 주변과학을 무시하며 왜곡사에 집착하나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6-25 23:45:47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오늘날 21세기는 학문의 세계도 경계가 없는 세상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학을 나오면 그 지식이 35년간이나 유지됐다. 그러나 21세기에 와서는 고대지식의 150배나 팽배되고 2016년 3월부터는 78일 만에 현지식이 배가되는 세상인데도 우리는 역사연구도 19세기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더구나 역사분야에서는 우리역사를 한반도로 규정해서 모두 왜곡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것이 통하지 않은 세상임에도 아직도 제도권에 있는 사학자들 대부분이 일제(日帝)가 변조한 역사를 따르고 있는데 이는 부끄러운 일이다.
 
선진 외국에서는 모든 학문을 자기가 전공한 학과와는 상관없이 모든 분야를 알도록 교육과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와는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도 국내에서 법대를 졸업하고 68년 일본에 유학을 가서 메이지 대학(明治大學)대학원에서 법학을 연구했는데, 당시 1주일에 5개의 과제가 주어져, 역사와 정치, 경제며 모든 분야를 섭렵하도록 했다. 우리나라 대학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덕분에 역사와 정치며 경제학 등 다방면에 많은 과제를 하노라고 밤을 새워가며 주마다 과제를 하다 보니 법학 이외의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이 도움이 된다.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대학에 들어가 보니 외람되오나 우리 대학에서의 연구과정은 예전과 다름없이 법학도 법조문 해석위주의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있었다.
 
교수들 중에는 학문보다 보직을 위해 파벌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며 안타까웠다. 또한 파벌에 들어가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는 것을 필자도 직접 겪으며 이게 대학이냐고 생각한 적이 있으며 이런 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학문의 선진화도 어렵다고 느낀 적이 있다.
 
오늘은 필자도 사학과를 나오지 않고 법학과를 나온 사람으로서 최태영 선생님의 뒤를 이어서 역사 칼럼을 쓰니 사학과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역사칼럼을 쓴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우리도 이제는 전공 상관없이 누구나가 역사도 깊이 연구하기 위해서는 고고학(考古學)도 깊고 폭넓게 연구해야 함을 말하려 한다.
 
역사연구는 고고학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고고학은 역사학의 하나로서 인류의 과거 문화흔적이 있는 유적과 유구(遺構), 유물 등 물질적인 자료를 독자적으로 분류하고 그 분석을 통해서 명백하게 과거의 인류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인 것임을 안다.
 
따라서 문헌 등을 접근하는 역사학, 여러 인종, 민족등과 비교, 연구 등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 지층(地層), 지질변동, 화산재, 용암류하의 유적연대추정과 과학, 도기(陶器)의 성분 분석등도 연구해야 하며, 생물학과 동물학 등의 연구와 금속, 도기의 성분분석과 중량과 비중(比重)과의 측정 등, 물리학도 고고학에 포함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 외에 건물 적(跡)이 발견된 경우에는 건축사학(建築史學), 또 목간(木簡)이 발견한 경우에는 고문서(古文書)에 감능(堪能)한 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의 응원도 필요하게 되는데 문서만으로 역사 평가를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된다.
 
광범위의 고고자료, 그 외에 학술적 가치가 높은 역사자료 등은 넓게 문화재에 포함됨에서 이 중에 고고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땅에 매장되어 있는 문화재를 매장문화재라 하는데 이 매장문화재에는 유적, 유물이 포함된다는 것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여기서 유적이란 지난 사람들이 생활을 하고 거기에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남아 있는 유구(遺構) 즉, 과거건축물의 구조양식 등 인위적인 흔적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움직일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유구(遺構)는 아니나 유물만 발견했다는 경우에는 유물포함지등도 유적(遺跡)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유물(遺物)은 과거에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도구인 가공유물(加工遺物) 즉, 석기, 토기, 금속기와 목기, 자연유물인 패각(貝殼), 수골(獸骨)등을 말한다.
 
이것을 알아야 할 이유는 문화재란 국민의 문화향상에 공헌하는 것으로서 문화재보호법의 대상으로서는 유형문화재, 민속문화재, 고분(古墳)의 유물을 포함한 전통적건조물군(傳統的建造物群)을 일컫는 것이다. (以上은 日本の 古墳, 古代遺跡 49面~53面 내용도 參照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중공(中共)의 주은래는 고고학상 우리고대사 왜곡인정
 
중공(中共)의 주은래 수상은 1963년 6월28일 중공을 42일간 방문한 북한 조선과학원대표 20명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과 지나(支那)의 고대 중세와 관련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는 고고학상에 나타난 우리역사를 제대로 알기에 진실을 말한 것이다.
 
그는 또한 지나(支那)학자들의 역사왜곡에 대하여서도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나(支那)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국수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 원인이며, 그러므로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졌다”며 역사왜곡의 근본책임이 지나(支那)에 있음을 자인하였다.
 
주은래 총리는 구체적 실례로 요하(遼河)나 송화강, 도문강 유역에 조선족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는 것은 역사기록과 출토된 문물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를 하면서 발해사(渤海史)와 관련해서 발해도 고대 조선민족의 지파였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민족의 역사 발전을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토된 문물에서 찾는 것이며 이것이 과학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주은래(1898~1976)는 지나(支那)역사학자들이 고조선을 왜곡했고 조선족은 기자자손(箕子之后)이라는 말로 억지로 덧씌우기도 한 것이 “역사왜곡”이라고 한탄을 하면서 지나(支那)국수주의 학자들의 고대사 왜곡을 질타하였다.
 
주은래는 양심적으로 고조선의 조상들의 지배하였던 영토는 청(淸)나라 시대의 영토팽창주의로 크게 줄어든데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하였으며 만주족은 지나(支那) 땅을 크게 넓혔으며 한족(漢族)이 지배한 시기는 국토가 이렇게 큰 적이 없었다고 밝히면서 이러한 현상은 인정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반드시 역사의 진정성을 회복해야 되며 역사는 왜곡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고대부터 조선(朝鮮)이 지나(支那)의 속국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지나(支那) 국수주의 역사학자들의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기 때문에 바로 시정해야하는 역사왜곡의 시정을 약속하였던 것이다. (以上은 홍혜수 [단군 조선(朝鮮)]은 역사였다.]272面~273面 參照 引用하였음.)
 
그러나 주은래 주석의 사후, 현 중공의 정권은 동북공정을 다시하며 당(唐)나라 때부터 심한 왜곡을 한 거짓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시진핑 주석의 역사 무지는 주은래 주석과는 너무 대조를 이른 것도 불행한 일이다.
 
황하(黃河), 양자강(揚子江)유역은 고대 우리영토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제(日帝)의 잔재를 아직도 못 벗어나서 국영방송국도 말도 아니 되는 내용을 방영하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분노를 금 할 수 없다. 언제까지 우리의 대륙역사를 반도 역사로 묶어 놓을 것인지 기가 찬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해야 할 언론도 사실을 발표하지 않고 학계도 진실을 외면하고 조선총독부가 1925년 6월 칙령 저285로 만든 <조선사편수회>가 조작하여 변조한 역사만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말하고 있음에서 우리역사를 연구하며 우리영혼을 팔아먹는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에게 환멸을 느낀다.
 
이들의 원로 교수도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것을 모르고 일본에 가서 일본 학자에게 한국에서는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고 말을 하는 재야학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일본학자는 책을 가져다 펼치고 왜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것을 확인해주기도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 역사가 상고시대에는 유라시아의 역사이고 삼국시대에는 아시아의 역사를 아직도 모르고들 있다. <조선사편수회>가 조작한 35권의 변조역사만을 우리역사라 하는데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은 반도역사로 하기 위해 나제통문(羅濟通門)을 조작하여 역사교재로 사용한적이 있는데 우리역사연구원 원장이신 오재성 원장이 나제통문이 일제가 만든 것임을 밝히자 교과서에서 배제하였는데 지금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재는 반도사관으로 그르치고 있다. 제대로 연구하고 가르치기를 바란다.
 
글을 맺으며-강당학파는 언제까지 조작한 역사만 따르려하는가
 
지나(支那)와 일본은 우리의 사서(史書)들을 다 없애며 우리역사를 말살하려 하나 우리가 5대 세계문명의 주역이고 상고시대는 유라시아의 80%의 영역을 지배하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가 100만 대군으로 유연제노 오월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한 사실을 외국학자들도 모두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 제도권 사람들만이 외면하려 하는데 이를 외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필자도 90년대 말부터 우리역사를 깊이 연구하며 상고시대의 역사와 삼국시대 역사를 연구해 왔다. 우리역사가 대륙사이고, 예맥조선은 동주시대부터 1000년간이나 대륙을 지배하고 한(漢)나라도 제후국으로 군림한 사실들을 밝혔다.
 
그리고 낙랑국도 서기전 1237년~서기32년까지 건재한 사실과,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시원국(始源國)임도 수차례 밝혔다. 이는 지나(支那)의 학자와 일본 학자들도 사실임을 말하고 있는데도 ‘화인 맞은 양심’ 같은 자들만이 부인하고 있다. 이는 국민들도 역사를 모르기 때문인데 이제는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유대민족은 2000년간 영역(領域)없이 국가는 없으나 그들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면서 그 정체성을 가졌기에 오늘날 정치, 경제, 교육, 과학 등 모든 면에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머리를 가졌음에서도 역사도 모르고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서는 말이 안된다. 우리가 세계로 웅비하기 위해서는 변질된 가치관과 역사 바로 잡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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