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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정부는 결국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 정치가 4류 소리 듣는 것은 정책에 ‘왜’가 빠졌기 때문
툭툭 던지는 단발성 말고 새 정부 철학 담은 장기 비전 기대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09 09:48:59
▲ 황근 선문대 교수·언론학
필자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장래 희망을 적어내라고 하면 제일 많았던 것이 대통령아니었을까 싶다. 그 다음이 법관, 과학자 대체로 이런 순서였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거의 모든 부모나 학생들이 권력 있는 자리에 앉는 것을 가장 크게 출세한 것으로 생각했던 시절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누구도 대통령, 법관은 왜 되려고 하는데’ ‘대통령, 법관 되면 뭐 할 건데라고 물어봤던 기억은 거의 없다. 삼시 세 끼 배불리 먹기 어려웠던 시절에 힘 있는 자리에 앉아 떵떵거리고 살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어쩌면 당연할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오래전 생각들이 대한민국이 선진사회로 진입하는데 마지막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자리든 무슨 권력이든 차지하는 것에만 목적이 있지, 그 자리나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여전히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세대는 명문대에 합격하든, 고시에 패스하든, 의사가 되든, 왜 그것을 하는지 알 필요조차 없었다. 그저 좋은 대학만 가라. 대학만 합격하면 매일 놀아도 된다던 부모님 말씀만 여전히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런 인식 속에 직업적 소명이나 전문성 같은 용어들은 그저 사치일 뿐이다.
 
한국 정치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4, 5류 소리를 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마 박정희 대통령을 제외하면 역대 어떤 대통령도 내가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문민정부·국민의정부 심지어 속내는 다르지만 적폐청산까지 그럴듯한 비전을 보여주려 애썼던 것은 사실이다. 아마 그게 정권을 유지하고 국가를 경영하는 동력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윤석열정부는 지금까지도 분명한 국가 비전이나 정책 방향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집권 초반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결정적 이유일 수도 있다. 위선의 극치를 보였던 문재인 정권의 부패와 반민주적 행태들에 분노한 국민에 의해 정권교체는 이뤘지만 지난 3개월 동안 보여준 것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모습뿐이었다. 심지어 양향자 의원이 대통령이 선거에서 이기고 마치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 같다라고 혹평을 했을 정도다.
 
정권 출범과 함께 추락하기 시작한 지지율이 급기야 20%대 초반까지 내려앉았다. 이를 두고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다는지, 야권 지지자들이 극단적으로 낮은 평가를 몰아줘 그렇다든지 하는 자위적 평가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지했던 국민조차 명확한 국정 방향을 알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냉정하게 보면 썩 잘한 일은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뭘 잘못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지지율이 급락하는 이유는 새 정부가 분명한 정책 비전을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단발성 정책들만 툭툭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장관의 입학 연령 낮추겠다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왜 그것을 하려 하는지, 정부의 교육정책 방향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어떤 논리나 설명도 없이 탈맥락적인 어찌 보면 공명심에서 나온 것 같은 정책으로 국민들의 불신만 키우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전공 분야인 언론도 마찬가지다. 통상 언론정책은 아주 예민하고 정권의 존립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지지도가 높은 집권 초기에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역대 정권들은 출범 전 늦어도 집권 초기에 언론정책 틀을 설정해왔다. 그렇지만 윤 정부는 아직까지 정책 기조는 고사하고 기본 정책 방향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아니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정권 차원인지 개인 의견인지 모를 KBS 수신료 개선, YTN 민영화 같은 단편적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거시적 정책목표가 없으면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고 도리어 반대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KBS는 수신료 문제뿐 아니라 공영방송으로서 존재가치를 위협받고 있고,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뉴스매체를 통제할 수 있는 현행 제도는 분명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이처럼 탈맥락적인 정책들이 산발적으로 추진된다면 그런 합리적 명분들조차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또 여권 일부에서는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한 주요 기관장들과 공영방송 경영진을 야당이 장악하고 있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물론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은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그럴수록 더 명확한 정책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근거로 사람을 바꿀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면 전 정권 인사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자기들끼리 자리싸움에 골몰하고 있다는 비난도 덜 받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주요 분야의 정책 기조와 방향을 재검점하고 정책 프로세스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정권 초반에 이미지나 분위기에서 수세에 몰린 현 상황을 돌파하고 국정 동력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책 성과밖에 없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필자가 조금 알고 있는 언론은 분명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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