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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장편소설]
초대받은 여자 <39회> 지우고 싶은 기억
공작새가 날개를 활짝 펼쳐 보이는 이유
이경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22 09:50:33
일단 그 친구 경찰에 넘겼으니까. 연락이 올 거야.”
 
진욱은 무엇보다 소선의 그림을 더 찾을 수도 있다는 걸 선우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선우는 진욱을 빤히 바라봤다.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게 아니잖아. 내 물음에 먼저 답해 줘. 선우의 커다란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한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미안하다.”
 
결국, 내가 몰라야 할 일이라는 거네요.”
 
진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우가 말했다. 그래 너는 모르는 게 나아, 아니 너는 모르면 좋겠다. 차라리 이렇게 시원하게 말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진욱은 생각했다.
 
그물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몸을 낮춰 빠져나가는 일이 생각보다 쉽진 않았다.
 
액션 배우를 방불하게 할 정도로 민첩하고 정확히 움직이는 일이 진욱에게 익숙할 리 없었다. 초라했던 건 그 당시 그렇게 하는 방법 말고는 진욱이 스스로를 지킬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날 진욱은 선우와 헤어져 도로에 세워둔 검은색 승용차로 뛰어들었다. 수트를 벗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는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겨 반대 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택시 정류장으로 가며 흠칫흠칫 진욱의 차를 돌아보는 선우의 모습을 멀찍이 보면서 선우가 아무것도 보고 듣지 못한 채 택시에 오르길 바랐었다.
 
미안해. 제작 이진욱, 감독 이진욱, 시나리오 이진욱, 스토리텔링 이진욱. 그렇게 됐어.”
 
날짜 바뀐 사건 일지나 경찰 신고 같은 것도 그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커다란 눈이 비명이라도 지를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마치 진욱과 한편이라도 된 듯 낮은 목소리였다.
 
흔적이 남으면 안 되니까. 그날 거기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알리바이 같은 거지. 완벽해야 하니까.”
 
선우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뭘 위해서? 왜 그런 일을 꾸며요?”
 
공작새가 날개를 활짝 펼쳐 보이는 이유가 뭔지 아니? 하나는 암컷을 유혹할 때고, 나머지 하나는.”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서? 그럼 누군가를 위협하기 위해서 그 사건을 꾸민 거라는 말이에요?”
 
아니. 위협을 받은 건 나야. 내가 살아남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방어였어.”
 
진욱은 미술관을 나왔다. 갑자기 길을 잃은 것처럼 어디를 향해 달려야할지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달리다 보니 잠수교였다.
 
국회의원들이 다 그러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선생님이 왜 그렇게 위태로움을 감수하면서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지 이해가 안 돼요. 내가 아는 선생님 같지가 않아요.’
 
어쩌면 선우가 아는 그 선생님 이진욱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만일 진욱이 아는 그 은선우로 선우가 그렇게 살았었다면.
 
7년 전 선우와 상훈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말을 친구들에게 전해 듣고, 바로 달려간 곳이 잠수교였다. 그날 난간에 서서 프러포즈하려 간직해두었던 반지를 꺼내 강물로 던졌었다.
 
 
[: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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