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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장편소설]
초대받은 여자 <44회> 그 일의 끝은 어딜까
설마 쇼하는 건 아니겠지?
이경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29 09:05:59
술기운이 솟자 그의 속마음이 껍질을 벗고 뛰쳐나왔다.
 
햇살이 정말 좋구나, 싶은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런 햇살, 내가 아끼는 소중한 사람 생기면 같이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부모님 하라는 대로 그냥 결혼해버리면 이젠 누군가를 만날 기회조차 없구나, 절망감이 느껴졌어요. 저렇게 눈부신 햇살을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랑 보고 싶었는데.”
 
식사 자리를 파하고 화영과 그중 몇몇은 와인바로 자리를 옮겼다. 이상하게 남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원하게 가슴이 쓸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와인바에서 호텔 카페로 또 스카이라운지로 옮기면서 자정이 훌쩍 넘어 버렸고 결국 호텔 라운지엔 화영과 그, 둘만 남게 되었다. 화영이 만취한 걸 알아챈 호텔 직원이 화영을 객실로 안내했다.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해장술까지 함께 마시고 헤어져야 진정한 술꾼이죠. 어딥니까, 빨리 돌아오세요.”
 
집으로 돌아간 줄 알았던 그가 혀 꼬인 발음으로 전화를 걸어왔고, 해장술을 마실 양으로 화영의 객실에 함께 들었던 게 화근이었다.
 
새벽 시간, 낮부터 마셨던 술에 지쳐 어떻게 잠이 든지 모르게 둘 다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정신을 차린 건, 다음날 아침 호텔 문 앞의 소동 때문이었다. 누군가 한참 벨을 누르더니 문을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중엔 호출한 직원들과 실랑이까지 벌였다.
 
화영이 락을 풀자마자 문을 밀치며 누군가 객실로 뛰어들었다.
 
나정이었어. 첨엔 얘가 미쳤나 싶었지. 그런데 미친 여자는 나였던 거야.”
 
 
 
 
화영의 목소리가 젖었다. 선우는 알고 있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도도한 화영 속에 아주 작은 여린 아이가 살고 있다는 것을.
 
너도 놀랐겠지만 나정이도 상처 많이 받았겠다. 먼저 사과하지 그랬어?”
 
이번엔 화영이 큰 소리로 웃었다.
 
나정이 걔, 그길로 나가서 누구 찾아갔는지 아니? 우리 아빠 만나서 원하는 대로 위자료 안 주면 기자들 부르겠다고 했대.”
 
화영의 웃음이 아팠다. 배다른 언니 오빠 별난 등쌀에도 눈 하나 까딱 않고 자존심 세우며 버틴 화영이었다. 그 속에 감춰놓은 여린 화영이 얼마나 큰 울음을 참고 살았는지 선우는 잘 알고 있었다.
 
나정은 그날 사고 이후 수빈과 해원이 입원한 병원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선우와의 약속도 번번이 어기고 있었다.
 
오지 않는 나정을 수빈은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부탁할 게 있었다. 하지만 나정은 오지 않고 장 변호사 일행이 병실로 들이닥쳤다. 장 변호사는 잠든 척 누운 수빈의 침대 곁을 한참 서 있었다.
 
사람을 몰라보고 말도 못하고. 설마 쇼하는 건 아니겠지? 꼭 빠져 나갈 궁리하는 범죄자 같잖아.”
 
에이, 사모님 친구 분이 뭐 하러요.”
 
일행 누군가가 말을 거들며 계속 사진기 셔터를 눌렀다.
 
포커스 잘 맞춰. 얼굴 잘 보이게.”
 
수빈은 숨이 확 멎었다.
 
 
[: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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