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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의 개인주의 시선] 클론 사회와 개인주의적 삶
배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7-14 06:31:00
 
▲ 배민 숭의여고 역사교사·치과의사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싸울 일도 없고 협력도 얼마나 잘될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많다. ‘우리’끼리 싸우지 않고 서로 협력하여 대의를 이뤄나가야 한다는 정서가 팽배해 있는 사회인 것이다.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한마음으로 행동하자는 구호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통하는 사회.
 
과연 모두가 한마음으로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일까? 사실은 기괴한 사회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이 분명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사회에서는 소수에 속하는 의견이나 시각을 가지는 사람의 삶은 피곤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회나 모두가 서로 다른 마음으로 다양한 생각을 사회나 양쪽 다 어느 순간에 지배적인, 즉 다수에 해당하는 시각과 의견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집단 감성이 지배하는 전자의 경우에는 그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시각이 그와 반대로 소수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시각을 쉽게 억압하거나 배제하게 된다. 배타적인 다수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세계사에서 19세기·20세기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회를 대놓고 노골적으로 추구하자는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린 시기였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조 속에서 만개했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물결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선택에 의해 더 효율적이고 우수한 시장 질서와 사회적 질서가 자발적으로 형성되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확산시켰다. 하지만 19세기에 와서 많은 지식인과 사상가들은 그러한 흐름 속에서 빈부의 차가 드러내는 빈자의 슬픔과 비애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들은 아직 잘살지 못하는 당시 대중의 정서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들은 이들이 시장에서, 사회에서 ‘소외’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사회적 다수의 집단감성에 조응하는 새로운 사상들은 서양에서 19세기 후반을 거쳐 20세기에 절정에 달했다. 그 절정에서 만들어진 괴물이 파시즘 혹은 전체주의라고 불리는 사상이다. 소외된 노동자와 농민들에겐 그들이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쉽게 선동할 수 있었다. 선동가가 된 지식인들은 정치권력을 잡으며 대놓고 노골적으로 민족을, 국가를 중시해야 한다고 외치며 다수의 대중의 감성을 사로잡았다.
 
한국인은 서양 사람들이 원래가 개인주의적이고 다른 생각에 대한 관용도가 높은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역사적 현실에 가까운 설명을 하자면, 서양에서는 자신들의 치기 어린 집단주의적 광기를 극단적으로 드러냈다가 진저리 나게 고생한 사회적 경험 때문에 ‘개인’의 공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비로소 배우게 된 것에 가깝다.
 
물론 19세기·20세기 내내 서양에는 다수의 집단 감성에 저항하고자 하는 ‘개인’들이 엄연히 존재했다. 그들은 외치고 또 외쳤다. 그리고 나중에는 인민재판을 피해 몸을 숨기거나 도망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서야 서양에서 대중은 비로소 광야에서 줄기차게 외쳐 왔던, 자신들이 무시해 온 ‘개인’들의 함성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그러한 진저리 나는 끔찍한 대중의 괴물 같은 집단행동을 경험한 나라는 일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국제 정치에서 거세당한 사회처럼 얌전해졌고 그 얌전한 대중 속의 일본인 개인들은 18세기 서양의 계몽주의자들보다도 훨씬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추구해 나갔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히키코모리’라 불리는 은둔형 인생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출현은 그러한 새로운 세대의 모습이었다.
 
집단주의적 사회에서 개인주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고 고생스러운 일이지만, 다수의 대중이 개인주의적 삶을 추구하는 새로운 세대 속에서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다. 아무도 참견하기 싫어하고 아무도 피해 주지 않으려고 서로 조심하는 사회에서는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 수가 있다.
 
많은 한국인이 한국 사회를 일본 사회와 비교하곤 한다. 그리고 그중 대다수는 한국 사회가 일본 사회와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일본 사회보다는 공산당 독재국가인 대륙의 중국과 더 많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중국과 한국 두 사회가 공유하는 가장 큰 공통분모는 한 번도 제대로 된 도전을 받아 본 적 없는, 흔들리지 않는 집단주의이다.
 
단지 한국 사회는 중국 사회보다 한 세대 정도 먼저 국제적인 무역을 통해 시장의 메커니즘을 배우고 이해하게 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일부 한국인은 자신들이 중국인보다 대단히 더 수준 높은 문화인인 양 행동해 왔지만, 현실은 중국도 이제는 한국 못지않게 시장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의 시장 규모는 이미 한국의 규모를 앞질러 미국 다음의 규모로 성장했으며, 이제 어떤 중국인도 한국인을 자신보다 수준 높다고 생각지 않는다. 단지 소위 K문화를 소비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실제로 요즘은 한국인 자신들도 중국인이 K문화를 추종한다거나 부러워할 것이라는 착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곧 베트남에 대해서도 몽골에 대해서도,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특별히 더 매력적이라는 착각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민족이니 민족 문화니 하는 것들에 대해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가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개인들이 서로 다르다는 명제를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의 지적 현실을 보여 줄 뿐이다.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적 성격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역사를 정말로 ‘객관적으로’, 단순히 문화적·심리학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사·경제사적 차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보다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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