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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를 틀면 한 편의 영화 같은 현실이 펼쳐진다. 지팡이를 짚고 약간 다리를 절며 힘겹게 걷는 사람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영화적 주인공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그가 사즉생(死即生)을 말하며 무기한 단식을 선언할 때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숱하게 많은 야당인사들이 국회의사당 천막에 모여들어 안타까운 얼굴로 그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러나 곧 그런 걱정은 필요는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가장 오래 버틴다.) 그는 정통단식법(?)에는 없는 기발한 방법, 즉 출퇴근 단식과 영양제 단식으로 단식의 실속은 챙기고 건강은 지켰다.
그러나 국회의 체포동의안 문턱에서 걸렸다. 여기서 그의 시간은 끝날 줄 알았으나 영화적 반전이 일어났다. 뜻밖에도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이다.
이 바람에 지금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은 고민에 휩싸여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다. 이 대표의 자비를 기대하면서 그대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 떠난다면 창당인가 신당인가, 신당으로 간다면 금태섭 당인가 양향자 당인가? 그러나 아직 두 신당은 ‘인기’가 발생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혹시 민주당에서 바른말 잘하는 이상민이나 조응천 의원이 합세한다면 어느 정도 바람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나저나 이 대표의 자비를 목빠지게 기다리다가는 공천에서 물먹고 결국에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치고 정치 노숙자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그 자리에 앉혔을 유창훈 판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결정을 내려 이재명의 정치 시계를 고쳐 줬나. 법의 상식을 알만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법률 지식의 문제라기보다 상식의 문제였다. 이해 못 할 부분이 너무 많다.
이 사건은 너무나 많이 알려진 사건이고 경험칙상으로도 뻔한 사건이어서 굳이 고민할 문제도 아니었다. 명색이 단군 이래 최대의 독직비리 사건이라는데, 정황 증거가 널려 있는데, 결정적인 증인이 5명이나 죽어나갔는데, 피의자 본인의 전과나 부정직성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리고 수사·재판 지연전술로 판검사들을 애먹이고 있는데… 영장기각이라니!
이재명의 연출과 연기에 깜박했나, 최근에야 물러난 사법수장의 깊은 뜻을 받들었나, 아니면 다른 속사정이라도 있었나….
하여튼 유 판사가 이재명의 위기탈출 도우미처럼 되는 바람에 한국의 정치사는 계속 영화처럼 흘러가고 있다. 주연배우(?) 이재명은 지팡이를 짚고 불편한 기색으로 주변의 동정과 초일류 변호 조력을 받으면서 수사·재판 등의 사법 기능에 최대한 태클을 걸고 사법절차도 자신의 정치 스케줄에 맞춰 나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 영화 같은 정치쇼와 계략들이 화려하게 나타날 것이다. (놀라지 마시라!) 소처럼 우직하기만 한 국민의힘이 이를 감당하기에는 벅찰 것이다.
그의 정치 스케줄 종착점은 이제 3년5개월 남아 있는 2027년 3월의 제21대 대통령선거일 것이다. 요즘 지팡이를 짚고 더러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머릿속은 이런 정치 스케줄을 설계하느라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단기적으로 단식을 비롯한 그의 정치적 연기는 상당 부분 성공하고 있다. 만약 구속영장이 집행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더라면 일어날 수 있었던 큰일들을 일시에 잠재웠고 내년 4.10 총선 때까지는 공천도장을 쥐고 정치를 주도할 입지를 다졌다.
물론 그가 7가지 사건에 10가지나 되는 범죄 혐의를 등에 지고 계속 대표의 지위를 누릴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선거사령탑이 바뀌더라도 그 자리에 ‘바지 사장’을 앉힐 가능성이 크다.
만약에 내년 선거에서 다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의 정치 스케줄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최강욱 재판은 3년 8개월 끌었다. 지금부터 차기 대선까지는 3년 5개월 남았다. 재판 끌기에 성공하면 그의 시간은 (영화에서는 가능한 일이겠지만) 2032년까지, 앞으로 근 10년간 계속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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