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CJ ENM·jtbc 경영 위기와 방송 시장의 암울한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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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07 06:31:20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그렇지만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정책 과제가 ‘방송영상콘텐츠 산업 활성화’다. 1980년대까지 우리 방송 시장은 KBS·MBC라는 양대 지상파방송의 독점 구조였다. 견고한 공공독점(public monopoly) 아래 두 방송사는 제작·편성·송출을 모두 내재화하면서 거대 공룡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SBS와 지역 민영방송·케이블TV 그리고 2000년 위성방송에 이르기까지 신규 방송사업 허가가 숨 가쁘게 이어졌다. 이른바 다매체·다채널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방송 플랫폼을 늘려 자연스럽게 방송 프로그램 수요를 창출하게 되면 영상 콘텐츠 산업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논리가 주도했다. ‘방송산업’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영상산업 육성’이 미디어 정책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방송매체를 늘려 영상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은 아주 순진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게 얼마 못 가 바로 드러났다. SBS만 독자적인 콘텐츠 공급에 성공했을 뿐, 다른 매체들은 기존 방송사들이 만든 콘텐츠에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의욕적으로 출발했던 지역민방들은 고비용 자체 제작보다 SBS를 중계하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나마 박찬호 메이저리그를 중계하는 등 자체 제작을 고집했던 경인방송(iTV)은 경영난에 시달리다 결국 퇴출되었다.

1995년 야심차게 출범했던 케이블TV는 초기에 가입 저조와 과잉 투자를 버티지 못하고 고전했다. 이런 케이블TV를 살린 것은 2000년대 초반 급성장한 인터넷 서비스였다. 이 때문에 방송은 인터넷 가입자 확보를 위한 번들상품으로 전락해 저가 유료방송 구조가 고착되었다. 이후 위성방송·위성DMB·IPTV 같은 신규 다매체방송들이 방송 시장에 진입할 때마다 지상파방송 재송신 갈등은 한국 방송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이 때문에 ‘뉴미디어 난개발’ 같은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방송 플랫폼의 급속한 양적 확대가 가입자 확보를 위한 저가 경쟁을 가열시켜 방송·영상 콘텐츠 산업의 환경을 더 척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 방송·영상 콘텐츠 제작사들은 독자적 경쟁력을 잃고 하청기업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9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합편성채널을 신규 승인한 이유 중 하나는 벽에 부딪쳐 있던 방송영상산업 활성화였다. 물론 보도 채널을 늘려 지상파방송의 뉴스 독점을 해소한다는 목적이 더 컸지만 달리 보면 뉴스를 통해 채널 인지도와 경쟁력을 높인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종합편성(종편) 사업자로 진출한 것은 신문사들이었다. 그래서 인지 초기 종편 채널들은 거의 뉴스와 정치 시사·평론, 토크 프로그램들로 채워졌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그런 측면이 적지 않다. 그나마 유일하게 jtbc가 뉴스뿐 아니라 드라마·예능 같은 종편 채널 본연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또 종편 채널은 아니지만 CJ미디어(지금은 CJ ENM)가 여러 오락 채널들을 통해 본격적인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편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두 방송사는 인기 채널로 군림해 오며 지금도 젊은 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채널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높은 시청률과 좋은 평가, 그리고 화제가 되었던 프로그램도 많았다. 그런데 두 방송사가 최근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는 소식이다. 경영 악화의 직접 원인은 다르지만 화려한 매체 인지도와 인기에도 불구하고 적자가 누적되어 왔다는 점에선 같다.

두 방송사의 위기는 우리 방송시장이 여전히 취약한 방송 영상 콘텐츠 산업 기반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것일 수 있다. 한류 콘텐츠니 K-컬처니 하는 미사여구들로 포장되어 있지만 여전히 우리 방송시장이 저가 악순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몇 년간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들의 공격적인 투자로 한국의 영상제작 시장이 일시적으로 호황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연기자·작가·스텝 같은 제작 요소 시장 단가를 급등시켜 토종 방송사들이 도태되고, 새로운 독과점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것이 CJ ENM과 jtbc의 경영 악화를 가속화시킨 또 다른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0년 넘게 한국의 방송 시장을 주도했던 두 방송사의 경영 위기는 그나마 명목을 유지해 왔던 우리 방송영상산업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수신료 분리 징수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는 KBS와 함께 벌어질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한국 방송 시장의 엄청난 격변과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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