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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의 법으로 세상읽기] 법원이 부역한 역사 왜곡 대중이 바로잡는 중
대법원, 이승만 왜곡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면죄부 부여
반면에 대중은 ‘건국전쟁’ 통해 진실을 알려 스스로 노력
이동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21 06:31:00
▲ 이동호 변호사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 역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의 흥행 소식이 들려온다. 이 다큐멘터리가 주목을 받고 있는 건 그동안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료를 발굴해 수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 하나는 한국전쟁 종전 1년 만인 1954년 8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해 엄청난 환대를 받는 현장을 담은 영상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카퍼레이드를 할 때 현지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웠고 고층 빌딩에서 꽃종이가 마구 날렸다. 방금 전쟁을 치른 약소국 대통령을 미국 시민이 열렬히 환영했다는 것이 놀랍다.
 
또 하나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7일 이승만 대통령이 행한 라디오 방송 내용이다. 이 방송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은 피난을 가면서 서울 시민에게는 서울에 남아 있으라고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이승만은 지금 우리의 원수들은 사방에서 중무장한 비행기와 탱크 그리고 군함을 몰고 와서 우리를 옥죄고 있다고 실상을 그대로 전했다. 
 
4·19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학생들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 울먹이며 위로하는 장면, 하야 후 출국할 때 그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던 장면도 있다. 이 대통령이 야반도주하듯 하와이로 망명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국민은 이 대통령에게 그다지 원망이나 원한을 표출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영화를 두고 비판도 있다. 철 지난 이념 전쟁을 벌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오랜 시간 왜곡된 언론보도나 출판물·영상물의 영향을 크게 받은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이 이 영화를 찾는 이유도 진실을 알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공정한 평가를 위해 왜곡된 사실관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필자는 왜곡 사례로 법원 판결을 소개하고자 한다.
 
시민방송(RTV)이라는 매체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이승만·박정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2013년에 방송한 적이 있다. ‘백년전쟁’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데 이승만 편 조회수는 무려 260만 회가 넘는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정성·객관성 및 명예훼손 금지에 관한 방송 규정 위반을 이유로 제재를 했다. 그러자 방송국이 제재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판결은 제재의 정당성을 인정했고 2심도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대법원에서 벌어졌는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제재가 부당하다며 원심을 파기해 버린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공정성과 객관성·균형성을 잃어 제재가 정당하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고 부당하다는 의견이 원래는 6대 6으로 동수였다. 그런데 캐스팅 보트를 쥔 김명수 대법원장이 부당하다는 쪽에 가세해 원심 판결이 파기된 것이었다.
 
소위 진보 성향으로 분류됐던 대법관들(김선수·김명수·박정화·민유숙·이동원·노정희·김상환)이 포진했던 다수의견의 논리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방송 내용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심의할 때 방송매체·채널·프로그램별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의 경우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것에 비해 전문성이 부족하고 내용의 진실성이나 신뢰도에 대한 기대도 낮으므로 ‘상대적으로 완화된 심사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시민단체가 만든 프로그램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검증을 목적으로 역사적 사료를 대상으로 하기만 하면 진실을 왜곡하더라도 다양한 여론 형성 차원에서 이를 제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견은 시청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할 때 진실을 왜곡하거나 객관성·균형성·공정성을 잃었다고 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서 진실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지만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면서 ‘백년전쟁’에 면죄부를 주었다.
 
현 대법원장인 조희대 대법관도 포함되었던 소수의견 측에서는 이를 매섭게 비판했다. 다수의견이 제시한 ‘상대적으로 완화된 심사 기준’이라는 논리는 실체도 없고 기준도 모호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일한 콘텐츠라도 점유율이 낮은 유선방송에서 방송하느냐 아니면 KBS 같은 지상파가 방송하느냐에 따라 심사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면 이는 법치행정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법조인이라면 충분히 수긍할 논리이다. 
 
또한 소수의견은 ‘백년전쟁’의 사실 왜곡을 사례를 들어 밝히기도 했다. ‘백년전쟁’은 이승만이 젊은 여성과 바람을 피워서 미국 수사관이 이승만을 부도덕한 플레이보이로 보아 그를 ‘기소’했다고 방영했다. 그러나 실제 자료에 따르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무혐의 사실을 안 밝히고 기소됐다고만 방송하면 사람들은 유죄로 믿기 마련이다. 
백년전쟁은 이승만은 권력욕을 채우려고 독립운동을 했고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기재된 미국 CIA 문서를 인용하면서 ‘이승만은 출세밖에 모르는 사이비 독립운동가’라는 내레이션을 삽입했다. 그러나 소수의견 측에선 원문 전체를 인용했다. 그에 따르면 이승만이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다는 사실을 기재한 것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은 문서 작성자의 개인 의견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두고 CIA가 오로지 이승만을 사이비 독립운동가로 폄훼한 것처럼 왜곡 보도했다는 것이다.
 
짧은 지면에서 ‘백년전쟁’의 사실 왜곡 부분을 일일이 다 언급할 수는 없다. 반면에 대법원이 여론의 다양성이란 미명하에 ‘백년전쟁’에 면죄부를 준 결과, 내레이션과 자막까지 동원해 이승만을 ‘하와이 갱스터·민족반역자·플레이보이·돌대가리’로 매도한 프로그램이 아직도 버젓이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는 실정이다. 대법원이 역사 왜곡에 내놓고 판을 깔아 준 셈이다.
 
그러나 정보화시대의 대중은 선동되기 쉽기도 하지만 결코 어리석지는 않은 것 같다. ‘건국전쟁’ 신드롬을 통해 대중은 무엇이 공정한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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