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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道가 있는 곳이 스승이 계신 곳이다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17 06:31:10
 
▲ 최문형 동양철학자‧작가‧성균관대 교수
언제부터인가 관공서에 가면 기분이 좋다. 모든 공무원이 시민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기 때문이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떨어지는 날엔 집 앞 주민센터나 구청에 가 보자. 자존감이 확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나라의 일꾼으로 선발된 우등생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니 어쩐지 본인이 꽤 괜찮은 사람이란 자부심이 차오른다(병원에 가면 고객님이라고 호칭한다). 그렇다 보니 그 전에는 무어라 불렸는지 기억이 안 난다. 시민(민원인)을 선생님으로 호칭하자고 제안한 분이 누구인지 알아보진 못했지만 한국인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란 생각도 든다.
 
선생님!”이란 말을 듣는 순간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되고 표정도 관리하게 된다. 선생님답게 행동하고 말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자본주의가 급속히 진행되기 전만 해도 가장 존경받는 분들은 (학교)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그림자조차 밟으면 안 된다고 모두들 생각했고, 아이들의 장래 희망란에는 선생님이 단골로 들어갔다. 선생님들 또한 사도(師道)로 뭉쳐 있었다. 성적이 떨어진 아이는 방과 후에 따로 가르쳐 주셨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수업료를 못 내는 제자들에게 얼마 안되는 월급을 털어 주셨다.
 
역사적으로도 가장 존경받는 분들도 선생님이다. 지폐에 새겨져 있는 퇴계와 율곡도 선생님이다. 한국인의 스승이다. 우리는 이분들을 관직명이나 지위로서 기억하지 않는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스승이 계시는 게 반갑다. 100세가 넘은 김형석 선생님이시다. 20대 때 선생님이 쓰신 철학에세이를 즐겨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영상을 통해 뵙는 선생님의 모습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소박하다. 부드러운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학문과 인격을 갖춘 스승이시다.
 
중국 당·8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한퇴지)는 사설(師說)’이란 명문장을 남겼다. 스승은 도()를 전하고 학업을 주고 의혹을 풀어 주는 일을 하는 분이며, 도가 있는 곳이 스승이 계신 곳이라고 했다. 따라서 스승의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서 나보다 늦게 세상에 왔어도 나보다 먼저 도를 들었다면 스승으로 삼는다고 했다. 도란 무엇인가. 인간에게는 인간다움이며 부모에게는 부모다움이며 자녀에게는 자녀다움·공직자에게는 공인다움이다. 스승은 우리에게 자신의 역할에 딱 맞는 도를 일깨우며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서 중용의 길을 제시하는 분이다.
 
만약 스승이 도가 아닌 자신을 신성시한다면 이미 스승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우상화의 마음을 지닌 스승에게선 도란 것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도를 지니지 못한 사람은 스승이라 할 수 없다. 그는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스승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도를 구하는 사람인지, 사람들에게 한 점 의혹을 남기지 않는 사람인지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한퇴지는 평생교육도 주장했다. 자녀에게는 스승을 두어 가르치지만 본인은 배우기를 부끄러워한다면 이는 바보짓이라 하면서,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은 점점 현명해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점점 뒤처진다고 했다. 100세를 넘어 120세 시대를 향하는 지금 인생 2모작·3모작에 나선 선배들을 종종 본다. 이 분들은 새로운 분야·하고 싶었던 일을 끊임없이 공부하며 누구에게든 묻고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분들이다. 본인이 이미 선생님이면서 열심히 또 스승을 찾는다.
 
한퇴지는 세상의 여러 분야에도 눈을 돌렸다. 기술을 지닌 장인들, 즉 무당·의사·약사들은 서로서로 스승으로 대우하며 배우고 익히는데, 당시 지식인인 사대부들은 지위를 가려 낮은 지위의 사람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김을 개탄했다. 유교문화권의 도가 사랑과 중용의 도임을 떠올리면 인간답게사는 것을 배우고 연습하고 연구하는 것은 죽을 때까지 지속해야 할 배움이다. 이 배움은 장인의 기술처럼 절차탁마(切磋琢磨) 과정을 혹독하게 거친다. 현대사회에서는 기술적 지식과 인간다움, 두 가지 모두 평생 배워야 할 일이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서로에게 선생이 된다. 관공서에서 민원인이 공무원을, 공무원이 민원인을 불러 주는 선생님이란 호칭 속에는 그런 뜻이 모두 담겨 있다. 서로에 대해 깊이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마주하는 상대는 내가 배울 어떤 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란 것을 전제로 한다. 인류의 스승 공자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세 사람이 함께하면 그 안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선생님이란 말은 참으로 무섭다. 각자의 인생길을 가면서 스승의 품위를 지키고 제자의 겸손을 놓지 말 것을 다짐해 본다. 대한민국 사람은 모두가 선생님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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