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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상흔 찾아 삼만리 장성구 명지춘혜재활병원장
16개국 참전비 ‘자전거 답사’ 4년… “헌신·희생에 늘 감사”
코로나 때부터 주말·휴일이면 참전비 순례… 뜻깊은 대장정
우방 청년들이 흘린 피 덕분에 오늘의 자유대한민국 ‘우뚝’
“설마리 전투 기념비는 英참전용사가 건립” 역사까지 훤해
장혜원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6-10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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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맨 윗줄 왼쪽에서 부터 시계 방향으로) 경기 파주 영국군 설마리전투비, 강원 춘천 이디오피아 참전 기념탑, 경기 가평 호주 전투기념비 , 경기 수원 프랑스 한국전 참전 기념비. 장성구 원장 제공
  
6·25 전쟁을 공부하며 평화자유의 가치를 몸소 느꼈다는 장성구 명지춘혜재활병원장은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020년 초부터 4년 동안 전국 16개국 참전비를 자전거로 찾아다녔다. 전공의 시절부터 6·25 참전 용사들의 재활 치료를 하며 불가역적 부상과 장애를 입더라도 국토를 수호한 이들의 자긍심과 애국심으로부터 의사의 삶에 가치를 부여받았다는 장 원장. 그의 버킷리스트는 전국에 세워진 6·25참전비의 역사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코로나19가 터져 외부 활동이 극도로 제한됐던 당시 그의 유일한 삶의 활력소는 자연스럽게 자전거 참전비 투어가 됐다. 오랜 소망이 코로나19라는 악재가  호재가 된 것. 이후 4년 주말과 휴일에는 자전거를 타고 전국 곳곳에 건립된 참전비의 흔적을 찾았다. 코로나19가 끝난 현재에도 몸에 배어든 습관처럼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전적지와 참전비 투어를 지속하고 있다.
 
▲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6·25 전쟁기념비’를 탐방하고 있는 장성구 명지춘혜재활병원 병원장이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명지춘혜재활병원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며 미소짓고 있다. 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장 원장은 지난해 가을에는 양평 지평리 프랑스군 참전비와 강원 춘천의 에티오피아 참전비 그리고 평택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비를 다녀왔다최근에는 파주 적성면 설마리의 영국군 참전비를 자전거로 다녀왔다고 소개했다.
 
장 원장 소개대로 전국에는 유엔군 및 국가별 16개국 참전비가 기념비 형태로 건립됐다. 미국군 참전비(1975·경기도 파주시)영연방 참전기념비(1967·경기도 가평군) 캐나다 전투기념비(1983·경기도 가평군) 프랑스군 참전기념비(1974·경기도 수원시) 호주 전투기념비(1963·경기도 가평군) 뉴질랜드 한국전쟁 참전기념비(1988·경기도 가평군) 터키 참전기념비(1974·경기도 용인시) 그리스군 참전기념비(1974·경기도 여주시) 필리핀 참전기념비(1974·경기도 고양시) 타일랜드 참전기념비(1974·경기도 포천시) 남아공 참전기념비(1975·경기도 평택시) 이디오피아(에티오피아) 참전기념비(1968·강원도 춘천시) 네덜란드 참전기념비(1975·강원도 평창군) 콜롬비아 참전기념비(1975·인천시 서구) 룩셈부르크·벨기에 참전기념비(1975·경기도 동두천)의료지원단 참전기념비(1976·부산시 영도구) △유엔군 초전기념비(1982·경기도 오산시) 등이다.
 
▲ 노르웨이 참전 기념비는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는 기념비다. 한국전쟁 때 참전한 노르웨이의 공을 기리기 위해 1972년 건립한 기념비로 경기도 동두천시 하봉암동에 있다가 2002년 12월 이곳으로 이전했다. 장성구 원장 제공
 
장 원장은 정부가 세운 참전비 외에도 민간에서도 참전비를 세운 사례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노르웨이는 의무부대만 파견한 국가인데 소요산역 근처에 참전비가 있다며 노르웨이 의무부대에서 일하시던 한국인들이 1970년대 초반에 세웠다고 했다. 이어 가평에도 미군 참전비가 따로 있는데 40사단 주둔지였던 곳이라 미군 40사단과 2사단을 기리는 미군 참전비라고 덧붙였다.
 
장 원장은 참전비 앞에서 ‘6·25 전쟁당시의 현장을 떠올리며 먹먹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억눌러야만 했다고 밝혔다. 국제군의 뜨거운 선혈 위에 지켜진 자유대한민국의 진정한 가치를 거듭 떠올린 것이다. 그는 한국 전적비가 세워진 곳에서 한강의 기적이 시작된 곳이 많다일례로 지평리 양조장 건물을 프랑스 참전용사들은 대대본부로 사용했는데 그 건물에서 막걸리 만들던 분의 자손들이 계속 막걸리 만들면서 지금의 지평막걸리가 됐다고 했다. 이어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욥기 87절 성경 구절 말씀이 우리나라의 산 역사가 아니겠느냐고 덕담을 건넸다.
 
▲ 프랑스 한국전 참전 기념비는 한국 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대대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로 경기도 수원시에 있다. 북수원 인터체인지에서 의왕시로 가는 길목에 1989년 3월16일에 세워졌다. 장성구 원장 제공
 
계속해서 장 원장은 “‘6·25 전쟁 당시 군을 진두지휘했던 백선엽 장군은 30세였고 정일권 32·장도영 27세 등 장성으로 참전할 나이가 안 됐다면서 김석원 사단장 아들은 장교 박정희와 일본육사 동기로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군으로 전사했다고 국군 장성의 노고를 기렸다. 미군 장성 아들들이 현역 군으로 참전한 6·25 전쟁에서 한국군 장성들의 나이도 그에 못지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밴 플리트 장군의 아들은 실종됐고 아이젠하워·워커·패튼 장군의 아들들은 군인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고 부연했다. 한국과 미국의 피 끓는 젊은 군 장교들의 자유주의체제 수호를 위한 전 방위 전투가 전국 곳곳에서 이어진 것으로 풀이 된다.
 
▲ 6·25전쟁에서 산화한 필리핀 장병들의 영혼을 추모하기 위해 1974년 건립한 참전비다. 기단 높이가 4.5m, 비의 높이는 17m, 조각상 높이는 3m에 이른다. 장성구 원장 제공.
 
▲ 유엔군의 일원으로 파병된 호주군 보병 제3대대가 가평천을 따라 서울로 향하던 중공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여 중공군 1만 명 이상을 사살했고 호주군 32명 전사·59명 부상의 피해를 당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63년 4월 24일 유엔한국참전국협회에서 기념비를 건립해 관리해오다가 1983년 12월 27일 가평군에서 재건립했다. 장성구 원장 제공
 
6·25전쟁은 국제전이었다. 당시 전쟁 발발 이틀 만인 1950627일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국제평화와 한반도 안전을 위해 한국에 군사원조를 제공하기로 했으며 77일 유엔 회원국 군대를 통합지위 할 유엔군이 창설됐다. 유엔 창설 이래 처음으로 유엔기를 앞세워 21개국이 6·25 전쟁에 참전한 세계사적 순간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이 전투 병력을 파견했으며 5개 국가가 의료지원을 보냈다. 40여 개국은 물자를 지원했다. 전쟁 기간 이들 다국적군으로 참전한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지도 못한 사람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전장이나 후방에 파견됐다. 6·25전쟁 인명피해 총 776360명 중 154881명에 달한다. 휴전 이후 정부는 이 같은 유엔군 참전용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부산 유엔 기념공원을 비롯한 전국에 69개 유엔 참전 기념 시설물을 건립했다.
 
유엔군뿐만 아니라 현장비 등의 투어도 마다치 않은 장 원장은 “6·25 남침 당시부터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이뤄지고 휴전까지 이어지는 그 3년의 전쟁 기간 휴전으로 매듭지어지며 우리나라는 형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모여 맹목적 목적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이곳에서 희생당했다고 다시금 역사적 의의를 살폈다. 그는 수백 명의 양민들이 북한 인민군에 단지 남한국민이라서 학살당한 현장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고 밝혔다.
 
▲ 2006년 경기 양평 양근4리에 세워진 이 현장비는 6·25 양민학살은 1950년 6·25사변 당시 9월 하순경 인천 상륙작전으로 패색이 짙어지자 북한군은 양평지역 600여 명의 양민들을 양근대교 밑 강변으로 끌어내 집단학살한 사건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건립됐다. 장성구 원장 제공.
 
장 원장의 뇌리에 또렷하게 박힌 기념비는 양평 자전거길에서 발견한 ‘6.25 양민학살현장비였다. 힘없는 민초들이 북한군의 모진 집단 학살을 견뎌야만 했던 비극의 역사를 기록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담담한 표정으로 장 원장은 “1950925일 한가위 전야 양평읍 떠드렁산 백사장에서 9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600여 명을 양평 6·25 참전 백사장에서 무차별 학살한 것으로, 대부분 반동분자로 낙인찍힌 이들이 이유도 모른 채 학살당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장비에 통곡의 그날이라는 시비가 당시의 경위를 말해주는 데, 극도의 공포 속에서 양민들이 백사장의 큰 구덩이에 빠진 후 죽창과 몽둥이로 맞아 죽는 장면이 떠올랐다고 했다.
 
▲ 파주 영국군 설마리전투비(坡州 英國軍 雪馬里戰鬪碑; 영어: Gloucester Hill Battle Monument)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한국전쟁 당시 설마리전투에서 전사한 영국군들의 넋을 기리고자 건립된 기념비이다. 2008년 10월1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407호로 지정되었다. 장성구 원장 제공 
 
202210월 경기도 파주 적성면 설마리 영국군 참전비도 소개했다. 장 원장은 기념비를 만든 이가 당시 6·25 참전 병사였던 아널드 슈워츠만(Arnold Schwartzman) 감독이라며 “1957년에 미술대를 졸업하고 정전감시단 경계병으로 파병됐던 영국인 슈워츠만이 3일 동안 이곳에서 중공군의 훈련을 막아 낸 글로스터셔 연대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설마리 전투 기념비를 건립했다고 밝혔다. 이곳은 20144월 국가보훈처와 경기도가 지원해 추모 공원으로 꾸며졌다.
 
장 원장은 이 분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다큐멘타리 대량학살(genocide·1982)로 오스카상을 받은 영화감독이 됐다고 소개했다. 장 원장은 참전 당시 21세였으나 현재는 세계 디자인계 거장이자 산업디자이너이자 아카데미상 수상 감독으로 슈워츠만 감독의 2007년 인터뷰 기사를 인용했다.
 
▲ 이디오피아 참전 기념탑(지도상 표기는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비). 1968년 건립 당시 이디오피아 황제가 참석했다. 장성구 원장 제공
 
슈워츠만 감독이 참전한 기간은 1956·1957년에 걸쳐 11개월로 미군 면세점에서 8촬영기를 구매해 파주 적성면 일대의 군부대와 마을을 촬영한 조용한 아침의 나라’ 15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시상식을 위해 방한했을 당시 인터뷰 글이었다
 
인터뷰에서 슈워츠만 감독은 영국은 한국전 발발 후 군부대를 파견해 19577월 철수하기까지 총 87000명을 파병했으며 이 가운데 1108명이 전사하고 2674명이 부상했다“50년 전 인천항에 도착했을 때 진흙에 빠져 고생했는데 세계 어디에서도 50년 만에 이렇게 변한 나라는 찾아볼 수 없으며 이 기적은 한국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 설마리 추모공원은 6·25전쟁 시기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영국군 글로스터셔연대가 1951년 4월22~25일 나흘간 파주 설마리 일대 제235고지 등에서 중공군 제63군 등에 맞서 격전을 치른 '설마리 전투'(글로스터 고지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2024년 4월 준공된 곳이다. 장성구 원장 제공
 
세계 의학 역사를 한 층 끌어 올렸던 현장도 외상환자가 너무나도 많아 외과 수술을 무궁무진하게 할 수 있었던 전 세계 임상 수술의 산 공간도 6·25전쟁 당시였다. 장 원장은 존스홉킨스 일반외과 레지던트 등 세계 명문 의대에서 한국군에 군의관으로 파견됐다팔과 다리가 절단될 뻔한 사람들을 외국 군의관이 다량의 혈관이식 수술을 거듭 계속하며 살려냈다고 했다. 이어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논문을 내고 세계 유수 명문대학교 외과 주임교수가 됐으며 세계적 외과 집도 명의가 엄청나게 많이 배출됐다고 소개했다.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에 있는 6·25전쟁 때 가평지구 전투에 참전한 미군을 기념하는 비와 공원. 장성구 원장 제공.
 
한국 의학도 전쟁으로 발전했음을 강조한 장 원장은 한국의 자랑이자 명의 중 명의인 이용각 교수도 마찬가지로 경성의전(경성 의학전문학교)을 졸업하고 일본군 군의관으로 입대해 의대 위생학 교실에서 조교로 일하다 6·25를 맞아 미군 군의관으로 참전하고 장진호 전투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휴전 후에 미국에서 외과 수련 받고 귀국하셔서 한국 최초의 신장이식 수술을 집도하셨고 가톨릭대학병원장과 인하대 병원장을 했다당시 한국에 온 군의관들이 전쟁고아에 다친 군인과 양민까지 총탄에 맞은 이들, 지금으로서는 꿈도 못 꿀 외과수술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장 원장은 전후에 이를 기반으로 논문도 쓰고 의술 기법도 발전시켜서 의학이 정말 많이 발전했다당시 6·25 전쟁에 참전했던 군의관들이 모두 세계적 명의로 성장했다고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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