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연재소설
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18] 맛있는 빵을 먹을 자격
당신이 끝난 자리에서 나는 시작했다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26 06:30:16
 
 
커다란 나무들도 푹푹 쓰러지는데 저렇게 작은 몸으로 태풍에서 살아남았잖아요. 이 아이는 맛있는 빵을 먹을 자격이 있어요.”
 
새에게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며 젊은 여자가 말했다. 외모를 꾸미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에 화장기 없는 해쓱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와 말투는 부드러우면서도 거부할 수 없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눈앞에 있는 굴뚝새를 황새라고 우겨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네요.”
 
주인 여자가 웃었다. 굴뚝새도 그들의 의견에 찬성한다는 듯 머리를 까닥이고는 젊은 여자의 발밑으로 다가가 당당하게 제 몫의 빵을 쪼아 먹었다. 나는 굴뚝새와 여자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커피를 마시던 여자의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여자는 눈길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나를 응시했다. 살짝 입술을 벌리고 있었는데 미소인 것도 같았고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하고 묻는 것도 같았다. 여자는 내 머리 위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빨간색 숄더백과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한 뒤 열어 둔 출입문 밖으로 나갔다.
 
빵 부스러기를 모두 주워 먹은 굴뚝새도 여자를 따라 깡충거리며 뛰어나갔다. 새는 이내 작은 날개를 펼치고 멀리 날아가 버렸다. 여자는 새가 날아간 방향을 쳐다보았다. 바람이 여자의 머리카락을 나부끼게 했다. 여자는 컵을 화단 가장자리에 내려놓고 머릿결을 다듬어 손목에 두르고 있던 끈으로 상투처럼 높이 올려 묶었다.
 
스키니 진과 회색 니트 스웨터를 헐렁하게 입은 여자의 몸은 지나치게 말라 보였다. 정수리 가까이 동그랗게 말아 올린 머리 모양 때문에 드러난 목은 기린처럼 너무 길고 가늘었다. 곰국이든 보약이든 해 먹여 여자를 토실하게 살찌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샌들을 신은 여자는 맨발이었다. 한여름이었지만 태풍이 지난 뒤였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발이 시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아내였군요.”
 
하운은 조금 전 내게 보였던 쓸쓸한 미소 대신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건 마치 하루 종일 뭐 하고 놀았는지 종알거리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미소 같은 거였다. 나는 영락 철없는 아이처럼, 그 미소에 속아 또 신이 나서 말했다.
 
인연인가보다 했어요.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결혼했죠.”
 
아내가 굴뚝새의 편을 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날 점심부터 저녁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신이 공개 입양되어 키워졌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내에게선 조금의 그늘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운이 좋았으며 태풍이 지나고 나를 만난 것도 행운인 것 같다고 웃을 때 이 여자라면, 하고 내 가슴은 기대와 설렘으로 두근거렸다.
 
내가 결혼의 끝에 도착했을 때, 당신은 출발점에 서 있었군요.”‘
 
하운이 말했다.
 
출발역과 종점은 종종 같은 자리니까요. 그날, 태풍이 쓸어간 건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물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58
좋아요
15
감동이에요
3
화나요
0
슬퍼요
1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새문안로 26 청양빌딩 7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조정진, 편집국장: 고동석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