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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앞뒤 안 가리고 한 대 때리고 보는 게 이득인 시절이 있었다. 시비가 붙었을 때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을 ‘반응적 공격’이라고 한다. 반응적 공격은 동물적 수준의 공격이다.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다. 이를 ‘주도적 공격’이라고 한다. ‘빡 돌아서’ 바로 맞받아치기보다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공격하면 여러 수를 내다볼 수 있어 승률이 올라가게 된다. 높은 인지 능력이 필요하기에 인간만이 가능한 공격이다.
인류는 반응적 공격 시대에서 주도적 공격 시대로 진화해 왔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 과정에서 분노를 통제하고 스스로를 ‘길들인’ 결과 생존에 성공했다. 미국 생물학자 리처드 알렉산더의 ‘평판 가설’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평판이 좋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인류는 반응적 공격을 자제하고 ‘신사’ ‘양반’이 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한쪽을 누르면 반대쪽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 인류는 반응적 공격이 줄어든 대신 주도적 공격 레벨은 무한대로 상향된 시대를 살게 됐다.
가장 효과적인 주도적 공격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의 연합 공격일 것이다. 전쟁·학살·노예제·약탈이 대표적인 예다. 처형이나 숙청 같은 사회적 처벌 역시 주도적 연합 공격의 결과물이다.
주도적 연합 공격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개인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됐다. 누구에게도 원한이 없고 누구와 시비를 붙은 일이 없음에도 갑자기 지붕으로 포탄이 떨어지거나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근대 이후 세상은 연합과 동맹을 통해 힘의 균형을 유지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이탈리아·일본의 동맹에 맞서 영국·미국·구(舊)소련(소비에트연맹)·중화민국이 연합해 싸웠다. 냉전 시기엔 구 소련과 미합중국이 대결 구도를 형성했고, 현대에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갈등 구도가 형성돼 있다. 이들 국가 간의 긴장감은 양국을 넘어 세상의 정치와 경제를 움직이는 수준이 됐다.
하버드대학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인 리처드 랭엄은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을유문화사·2020)에서 “인류는 아직 수천 년간 지속된 평화를 누리지 못했다. 그리고 핵의 세계에서는 그 강도에 비해 폭력의 빈도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며 억압된 공격성의 가공할 위력을 경계하고 있다. 그냥 한 대 때리고 마는 시대가 좋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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